어느 사보 청탁받아서 쓴 글인데, 한번 읽어나 보세요.
매일 서생원처럼 살짝살짝 엿보기만 했지 내 정보는 하나도 준게 없어서 얼마나 죄송한지...
김샘 더운데 건강하세요...
그리고 참, 조만간에 한번 뵈야 하는데....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남자가 있다. 음식을 만들 줄도 아는 남자와 먹기만 하는 남자. 요즘이야 남자가 음식 만드는 게 그리 큰 일도 아니지만, 멀지 않은 지난날까지도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불알 떨어진다는 지청구가 그대로 뒤통수에 꽂히지 않았던가. 그래서 '감히' 설거지 한 번 안 하고 장가든 남자가 무릇 몇이며, 방걸레질 한번 하지 않고 여자와 한 살림을 차린 남자는 또 무릇 몇이었던가 말이다.
며칠 전부터 둘째 아이가 "하면 된다"는 말을 자꾸 한다. 둘의 대화중에, 아니면 다른 사람과의 전화로라도 내가 좀 하기 어렵다는 말을 잠깐이라도 비추면 대뜸 "아빠, 하면 된다고 생각해" 하며 나에게 주먹을 쥐어 보인다. 참 가당찮아 보인다.
그런데 우습게도 "기껏해야 내가 할 수 있는 건 설거지뿐"이라는 신조로 살았던 내가 요리를 좋아한 건 나도 해보니까 된다는 걸 깨닫고 난 다음부터였던 것 같다. 요리를 하는 계기가 좀 밋밋하다. 그럼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내가 음식을 만드는 데 재미를 붙인 건 내가 만든 음식을 먹다가 아내가 씨익 웃는데 치아 사이에 빨갛게 끼어 있는 고춧가루를 보고 난 다음부터다."
음식을 할 때도 그렇지만 음식을 먹을 때도 준비가 필요하다. 삼계탕이야말로 준비가 필요한 음식이 아닐까 싶다. 일가 친척의 결혼식 때였다. 때는 바야흐로 무더운 여름. 게다가 결혼식장에 참석하기 위해서 양복까지 입었다. 그래서 숨을 쉬려고 하면 콧속이 너무 뜨거웠고, 숨이 턱턱 막혔다. 얼굴을 찡그리고 나서야 간신히 한 모금 공기를 목구멍에 넣을 수 있었는데, 마치 고량주 첫잔을 들이켤 때 그 액체가 혀에서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걸 확연하게 느끼는 것과 같이 뜨거운 공기가 그렇게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걸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결혼식이 12시쯤이었으니 피로연장이라고 마련된 '그 집'에 들어선 건 12시 30분에서 1시 사이였던 것 같다.
놀랬다. 우리 일행들은 다들 입을 벌리고 닫지 못했다. 대개 피로연장이라는 게 얼마나 시끄러운가. 우는 아이들에, 바쁘다 바빠를 외치면서 음식을 휙휙 던지는 서빙하는 아줌마에, 그 더운 여름 정오 즈음에 벌써 얼굴이 불콰하게 술을 마시면서 떠드는 아저씨가 한 프레임에 들어 있는 것이 피로연장 아니던가. 그날의 피로연장 역시 이 프레임에서 빼고 보탤 것이 없었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피로연 음식이 바로 삼계탕이었다는 것이다.
'삼계탕이라니, 이 더위에!'
괜히 삼계탕으로 짜증이 넘어갔다. 삼계탕 뚝배기에서 올라오는 뜨거운 김이 마치 악다구니처럼 느껴졌다. 사람들 표정을 보아하니 나와 다르지 않은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은 너무 많고 식당은 좁아서 양복도 벗지 못하고 우리 일행은 삼계탕 그릇을 앞에 두고는 젓가락으로 삼계탕 국물을 깨지락깨지락 젖기만 했다. 그리고 빠져들어야 하는 고뇌!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물론 전쟁을 치르듯 삼계탕을 먹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 우리 일행은 10분쯤 앉아서 땀을 흘리다가 그냥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곧장 집으로 내달았다. 차에서 누군가 말했다.
"집에 가면 국수 끓여 먹자. 잔치국수!"
잔치국수 육수는 다시마, 멸치, 통마늘, 표고버섯 등을 넣고 팔팔 끓이면 된다(여기 사이트에 잔치국수 국물 내는 비법이 가득하더군요). 거기에 잘 삶은 국수를 넣고 고명을 얻는데, 이 고명이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우리집은 계란 지단과 함께 호박 채 썰어 볶은 것을 많이 넣거나, 김장김치(김치냉장고에 아직도 많다)를 송송 썰어 볶아서 넣는데(두 가지를 함께 넣어도 맛있다), 어른들 국수에는 빠지지 않고 청양고추를 더 넣는다. 왜냐구? 내가 매운 맛을 좋아하니까... 매운 맛에 입이 얼얼하고, 땀은 삐질삐질 흐르지만 더위를 한방에 날리기에는 그만이다.
사실 음식이란 것도 좀 생각하면서 먹어야 맛이 있다. 정신 쏙 빼놓을 정도로 어지러운 음식점에서 먹는 음식에 맛이 있을 턱이 없다. 결혼을 한 당사자들이야, 손님 접대한다고 삼계탕을 내놓았겠지만 한번쯤은 날씨도 생각했어야 실수가 없었을 터였다. 이열치열 아니냐고? 그 복작대는 음식점에서의 삼계탕이 이열치열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라.
여름철 화기를 활활 날려버릴 음식으로 삼계탕을 많이 꼽는다. 그런데 닭 뱃속에 이것저것 우겨넣지 말고 그냥 편하게 만들면 이 요리는 더 재미있다. 이걸 백숙이라고 하나? 아무튼 나는 아주 간편하게 만든다. 황기와 밤, 대추, 마늘, 생강, 대파(이건 반 단 정도)를 넣고 한 6개월 된 닭과 푹 끓인다. 대파는 익으면 먼저 건져낸다. 대접에 닭과 다른 재료들을 담고 소금, 후춧가루를 곁들여 내는 게 보통인데 그것들 대신 고추장을 내놓아봐라. 그 고추장에 미리 건져낸 대파와 고기를 함께 찍어먹으면 참 맛있다. 나는 퍽퍽살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삶은 대파와 퍽퍽살을 고추장에 찍어먹으면 정말 맛있다. 먹기만 할 줄 아는 남자는 편하다. 반면에 요리도 할 줄 아는 남자는 항상 즐겁다. 맛있다며 즐겁게 먹는 여자들을 항상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요즘 여자들은 요리할 줄 아는 남자를 더 좋아할 것 같다.
참, 장어보양탕이니, 추어탕이니, 낙지연포탕이니, 보신탕이 여름철 보양식으로 꼽히는 모양인데, 나는 이런 건 만들지 못한다. 그럼 어떡하냐고? 어떡하긴 뭘 어떡하나, 사먹으면 되지.
오늘 저녁에는 백숙이나 해볼까 한다... 에구 냉동된 닭 해동시켜야지...
* 김혜경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3-07-26 09:58)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아, 잔치국수와 삼계탕!
이성수 |
조회수 : 3,507 |
추천수 : 35
작성일 : 2003-07-25 17: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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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김혜경
'03.7.25 5:31 PM잘 봤습니다. 아직 책 덜됐다면서요? 아까 황성원씨랑 통화했는데....
2. 오이마사지
'03.7.25 5:37 PM이성수식감자요리의 주인공이신가 보네요.. 감자요리 자알~먹고 있습니다..(인사)
3. 빈수레
'03.7.25 5:38 PM초복때, 아파트라인 어르신들 모시고 삼계탕집에 갔었습니다.
거기서 초간장을 달라해서 찍어 드시더만요.
먹어보니...이게 또 별맛...이더이다. 히~~죽.4. 채여니
'03.7.25 5:52 PM저희집도 간장이요 진간장. 찍어서 먹음 넘 맛있어요
그래서그런지. 삼계탕집가면 소금주는데 맛이 떨어지는것 같애요5. 채린
'03.7.26 11:43 AM하하 저희집엔 먹기만 하는 남자 하나와 음식을 만들줄도 아는 남자가 다 있네요...먹기만 하는 남자가 젤루 좋아하는 음식이 잔치국수랍니다. 멸치다시만 내면, 오늘 잔치국수하냐고 좋아하지요...오늘 점심도 이 글보고, 잔치국수로 먹었답니다....* 조금 더 살면 먹기만 하는 남자인 남편도 요리할 날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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