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 거창하지요?
인류애라니...
그런데 갈비찜에 얽힌 이야기 한 자락을 펼치려니 인류애 라는 말이 딱인듯 하여...
믿거나 말거나 인스탄트 팟 안에서 익고 있는 것은 갈비찜입니다.
명왕성에서는 갈비찜을 배달시키거나 사먹을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다행히도 갈비 고기를 사다가 인스탄트 팟에 조리하면 그럭저럭 먹을만한 갈비찜을 만들 수는 있지요.
하지만 명왕성에 처음 와본 사람이 갈비찜을 만들려고 한다면?
어느 마트에 가서 무슨 고기를 사야할지, 드넓은 마트 안에서 마늘은 어드메 있고 양파는 어느 구석에 있는지, 알기가 쉽지 않아요.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이 고기고기고기한 갈비찜! (달디달디달디단 밤양갱! 이 아니라요 :-) 이었다면 그냥 포기할 수도 있지만, 내일이면 수 천 킬로미터 거리로 헤어져야 하는 막내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이 갈비찜이라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죠.
<달디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내가 만든 밤양갱>
무작정 마트로 간 엄마는 다행히도 한국사람 같아 보이는 아줌마 한 명을 발견합니다. 저 꼭대기 선반에서 파를 골라서 카트에 담는 걸보니 한국인이 틀림없다 생각했고, 또 이 동네 마트를 잘 아는 사람같으니, 몰래 따라다니며 한국 음식 재료를 사기로 했습니다.
명왕성 아줌마가 눈치채지 못하게 살살 뒤따라가보니 당근, 감자, 양파... 갈비찜에 넣을 재료를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핵인싸인 남편이 마트 반대편에서 음료를 고르다가 엄마가 미행하던 명왕성 아줌마에게 말을 걸지 않겠어요. 미행하던 것을 들켜서 조금 민망했지만 남편 덕분에 명왕성 아줌마와 인사를 했어요.
<82쿡에서 배운대로 파기름을 만들어 부친 계란말이>
그렇게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막내딸을 저희 동네 대학교에 입학시키고 한국도 아닌 아프리카 대륙으로 돌아가야 하는 부모와 알게 된 것이죠.
저는 살다가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한국인은 처음 만나 보았어요. 참 신기했죠.
상상만으로 미동부와 아프리카 대륙의 거리를 떠올려봐도 까마득히 먼데, 실제로 아이만 남겨놓고 떠나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찡했을까요. 그 마음에 빙의되어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고, 아이 걱정은 마시라고, 응급사태가 생기기라도 하면 제가 언제라도 돕겠다고 했어요.
<6개월째 변함없이 맛있는 김장김치>
다행히도, 제가 나서서 도와야 할만큼 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저는 간간이 문자로 학생의 안부를 확인하기만 했어요.
해마다 김장을 하면 어차피 나눠 먹는 김에 학생에게 김장 김치를 가져다 주었고 한국음식이 고프겠다 싶을 때 만두나 잡채를 만들어서 가져다 주기도 했어요. 어차피 우리 아이들 먹이려고 만드는 김에 쬐금 더 만든거라 별로 힘든 일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그 학생의 부모는 제게 무척 고맙다며 지역 특산품인 커피를 보내주곤 했어요. 아프리카 대륙에서 재배한 커피는 아프리카의 햇빛과 토양을 머금은 맛이었어요.
커피를 먿어 먹었으니 보답으로 김치 한 번 더 갖다 주고, 만두 한 번 더...
그러는 와중에 이 학생은 명왕성 생활력이 자라서 스스로 김치를 담아 먹게 되었어요.
대학 졸업반이 되고나니 신입 한국학생들에게 (신입이~ 이래가지고 밥빌어먹고 살겠나~ ㅎㅎㅎ) 김치를 만들어 먹일 정도의 내공을 쌓았죠.
<브로콜리 강회와 오이무침>
마침내 학생의 대학 졸업이 다가왔고 졸업식 참석차 명왕성에 오신 학생의 가족들을 저희집으로 초대했어요.
진수성찬을 차리고 싶었지만 학년말이라 바빠서, 그리고 먼길 오신 손님들에게 정말로 엄마가 차린 집밥 음식이 속을 편하게 할 것 같아서, 위의 모든 사진속 반찬을 만들어 함께 먹었어요.
제게 김치를 얻어먹던 어린 학생이 이제 직접 김치를 담아서 자기보다 더 어린 학생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니 얼마나 흐뭇하던지요.
인류애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어요.
그러고보면 82쿡에서 매달 음식 봉사하시는 분들도 이런 차원에서 인류애를 장려하시는 것 같아요.
수많은 엄마밥 먹지 못하는 아이들 중에서 고작 몇 명의 아이들에게 정성 가득한 음식을 차려주시는 거지만, 매달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그 모습을 기록으로 담아 나눠주시니, 그 봉사 후기를 보는 사람들의 마음에 '나도 좋은 일을 해야겠다' 하는 생각을 심어주시니까요.
실제로 자료조사를 한 것은 아니지만, 봉사 후기를 보시는 분들 중에는 작으나마 실천으로 옮기는 분들이 계실거라고 저는 믿어요. 그러니까 이 봉사의 혜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누리고 있을거에요.
<인류애 전달의 화룡정점, 순진짜참기름!>
저희집에서 식사 초대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신 아흔살의 학생 할머니께서 손수 농사지어 충청도 어느 방앗간에서 짜서 충청 교차로 신문지로 꽁꽁 싸서 보내주셨어요.
영롱한 참기름의 빛깔은 제가 난생 처음 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깡통에 든 오뚜기 참기름에 비하면 아주 밝은 색이더라구요.
이렇게 귀한 상을 받았으니, 혹시 다음에라도 누군가에게 의지가 될 수 있다면 손을 내밀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일 모레 모두들 모여서 추모할 자스민 님도 발상의 전환님에 따르면 인류애를 뿜뿜 하셨던 분이더군요.
내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a.k.a. 남)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위로와 격려를 주시는 분...
그 정신을 이어받아 82쿡 회원님들은 또 그렇게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겠지요.
제가 오랜만에 와서 사실은 업로드 해둔 사진이 더 있기는 한데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치고 다음에 또 올께요.
(이거 어쩐지 드마라 막판에 카페베네 광고 자막 같은 너낌... ㅎㅎㅎ)
저 이제 방학해서 시간 많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