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cook.com을 즐겨찾기에 추가
login form

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일어나거나 그냥 자거나

| 조회수 : 7,872 | 추천수 : 34
작성일 : 2011-02-22 17:16:43
엊그제, 일요일은 K에게 방학 마지막 날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녀석의 잠자리 뒤끝이 길다.
잠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못 일어나고 끙끙거린다.

“K야 일어나라”를 외치던 H씨 나보고 깨워보란다.
8시가 넘었다며 “일어날 수 있지?”하고 물으니 절래절래 고개를 흔든다.
“그럼 더 잘래?” 물으니 또 고개를 절래절래.
“그럼 일어나”하며 이불 밖으로 나온 녀석의 발을 주물러 주었다.
일어나긴 해야겠는데 잠은 안 깨고 맘과 달리 몸은 무거운가보다.

발이 거칠거칠하다. 뒤꿈치엔 각질도 제법이고.
용천혈이란 곳을 힘껏 눌러주자 아픈지 움찔움찔하면서도 다른 발을 내민다.
이렇게 발 주물러주는 것도 어릴 땐 한없이 사랑스럽더니 이젠 좀 징그럽다.
더 이상 조막만한 발도 아니고 발가락은 또 어찌나 긴지.

“일어날 수 있지?”라며 H씨 아침 준비 거들러 나오니 벌써 끝나있다.
요즘 H씨가 아침 준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손이 빠르다.
K가 좋아하는 양념간장 뿌린 생 깻잎과 말린고구마줄기버섯들깨탕에 밤밥과 미역국이다.










식탁에 차려놓고 “밥 먹자.”불렀으나 K는 여전하다.
“놔두고 그냥 먹읍시다.”며 H씨와 식사를 마칠 무렵 K가 방에서 나왔다.
본래는 아침식사 끝나면 K는 독서실가고 우린 조조할인 영화를 볼 생각이었으나
아침이 늦기도 했고 어쩌겠냐고 H씨 묻기에 “그냥 갑시다.” 했다.

K에게 미역국과 밥을 퍼주고 나와 영화를 봤다. 만추.
“너무 뻔한 이야기, 지루했어. 시애틀 풍경이라도 좀 보여주던가.”라고 H씨는 불평했고
나는 “늙었나봐. K에게 ‘사랑이라고? 그깟 것에 목메지 마라’ 이런 얘길 해주고 싶은 영화였어.
그래서인지 그냥저냥 볼만하던데. 영화에서 교훈도 찾고 ㅋㅋㅋ” 했다.

‘그 놈의 사랑, 그깟 사랑에 기대지 말고 살면 안 되겠니! 얼마나 사랑에 기대다 넘어져야 정신 차릴래.
제발 온전한 삶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은 안타까움 마저 들게 했던 탕웨이와 현빈의 얘기.
길게 잡힌 엔딩신 때문에 ‘아 엠 쏘리, 내가 아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아 엠 훈’ 하는 엔딩 대사가 나올까
살짝 조마조마하기도 했던 영화.
‘만일 엔딩 대사가 정말 그랬으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것들로 기억에 남을 영화다.

-------------------------------------------------------------------------------------------


K에게
오늘 아침은 잘 일어났니?
방학에 늦잠 자 버릇해서 힘들지나 않았는지…….
엄마한테 듣자니 어젯밤에도 새벽 1시 넘어 잔 모양인데.
항상 잠이 모자라는 네게, 고3인 네게 “일찍 자라.”는 말은 “공부해라”보다 짜증나는 말일 거 같아.

일요일 널 깨우며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잘 받아들이면 좋은 습관이 되고 인생을 살며 덜 괴로워 할 수도 있는 팁이기도 한데.

‘인생은 선택’이란 말이야.
아침에 또는 네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는 거? 그냥 일어나면 돼.
일어날지 말지, 5분 더 잘지 말지, 이런 거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일어나 버리면 돼. 아니면 그냥 자든지.
그걸 순식간에 선택하고 실천에 옮겨 버리면 아침에 일어나거나 그냥 푹 자기가 덜 괴로워.
설사 푹 자서 지각이나 벌점을 받는다면 그건 푹 자고 난 다음의 일이니 그때 책임지면 돼.
괜히 비몽사몽 자고 나중에 허둥댈 필요는 없다는 말이야.
가뜩이나 힘든 고3인데 결론과 답이 확연한 문제에서 괜한 고민으로 자신을 더 괴롭히지 말고
‘순식간에 선택’ 해버리는 거 괜찮지 않니. 어떻게 생각해?

살다보면 쿨하게 선택하면 될 걸 괜히 이것저것 따지고 혼자 괴로워하고 복잡하게 만드는 일들이 종종 있어.
어떤 것을 선택하든 스스로 책임지고 상처주지도 받지도 않는 삶을 산다는 마음만 있다면
나쁜 선택, 잘못된 선택이란 없는 거 같아.
왜냐면 그런 사람들은 무엇을 하든 충분히 행복할 수 있으니까.

고3, 딸에게 푹 자도 된다니 무슨 아빠의 흰소린가 하려나?
아니면 공부하라는 말보다 더 무섭다 하려나?
둘 다 아니야. 살면서 갖추면 괜찮은 마음가짐에 관한 얘긴데. 어떻게 생각해?

오늘도 행복하렴. 배정된 기숙사 방은 어때? 바꿨니? 룸메는 누구야?




남은 나물로 만든 비빔밥과 오므라이스 삘의 뭐. ---> 재료는 같았으나 마무리는 딴판이다.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커피야사랑해
    '11.2.22 6:45 PM

    집안의 따스한 온기가 여운처럼 떠나질 않네요 ~하여 얼마만에 로긴을 했는지요...
    저두 아이가 고3일때 ‘인생은 선택’이란 말이야 ... ' 라고 말할 수 있길 바래봅니다

  • 2. 열무김치
    '11.2.22 8:03 PM

    따님이 82쿡을 하기엔 너무 어릴까요 ? 고 3이니 너무 바쁠까요 ?
    나중에라도 꼭 따님에게 아버지의 글들을 읽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 3. 소년공원
    '11.2.22 10:26 PM

    그릇과 음식이 모두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듯, 좋아보여요.

  • 4. 雪の華
    '11.2.22 10:59 PM

    ‘그 놈의 사랑, 그깟 사랑에 기대지 말고 살면 안 되겠니! 얼마나 사랑에 기대다 넘어져야 정신 차릴래. 제발 온전한 삶을 찾으라고’

    이 말씀 찌릿합니다.

  • 5. 무명씨는밴여사
    '11.2.23 1:32 AM

    안보인다.........................ㅠㅠㅠ

  • 6. 쎄뇨라팍
    '11.2.23 12:29 PM

    ^^

    언제나 부러운, 공감하는 글입니다
    부모로서 오후에님을 닮아가고자 하는 저 쎄뇨라팍입니다..ㅎ
    잡곡밥이 항상 윤기가 나는게 혹 뭣으로 밥을 짓으시나요???

  • 7. 캐롤
    '11.2.23 2:38 PM

    K에게 해주시는 선택에 관한 명언...
    잘 새겨들었습니다.
    아침마다 제가 하는 고민이었거든요.
    그 선택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 날이면 연달아서 사과를 깎아 놓을까 말까 하는 고민까지
    하게 되는 불상사가 생기지만 매일 아침 풍경이 다르지 않네요.

    게다가 그런 고민을 한 날은 전철 놓치지 않으려고 10여분 거리를 뛰어야 하고
    또 빼곡한 전철칸에 발을 들여 놓아야 하는데 ......

    "그냥 일어나 버리면 돼 ..." 저에겐 촌철살인 같은 말씀이십니다.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입력 작성자 :

N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추천
33543 신안섬초 쿠킹클래스 허접 후기..ㅠㅠ 8 치즈켁 2011.02.22 6,688 33
33542 일어나거나 그냥 자거나 7 오후에 2011.02.22 7,872 34
33541 친구가 만든 프로급 홈메이드 돈코츠라멘... ^^;; - >.. 22 부관훼리 2011.02.22 15,316 62
33540 나물요리 1 돌고래 2011.02.22 4,720 33
33539 따라쟁이 시리즈... 5 셀라 2011.02.22 6,307 23
33538 일요일, 만두의 달인댁 가족 초대 했어요^^;; 55 마리s 2011.02.22 20,045 83
33537 신안섬초쿠킹클래스 참가자분들께 안내드립니다. 김종기 2011.02.22 2,624 38
33536 천연재료로 물들인 노랑, 핑크 단무지 13 무명씨는밴여사 2011.02.22 7,339 29
33535 면식수행, 그 기본은 무엇인가? 면발인가 국물인가? 5 소년공원 2011.02.22 5,294 39
33534 냉동실에든 절편처리하기 ~ 절편구이 & 절편어묵간장꿀볶이 3 기쁨맘 2011.02.22 6,748 30
33533 이렇게 해드시는분 계시나요? 20 브라운아이즈 2011.02.21 12,807 38
33532 커피-아침풍경, 아리랑-고전읽기 12 오후에 2011.02.21 8,078 32
33531 장조림하고 기다란 쏘세지 ㅋ + 무슨 이름이 긴빵... - &g.. 29 부관훼리 2011.02.21 14,148 44
33530 이거슨 진리 - 세상에 거저 얻는건 없씀 6 우화 2011.02.21 8,782 44
33529 엄마를 위한 딸의 생신상차림 외 저녁밥상들... 40 LittleStar 2011.02.21 36,266 75
33528 주말동안, 한식조리사 실기 연습좀 해봤어요^^ 19 가루녹차 2011.02.21 8,468 33
33527 늦은밤 누룽지에다 나박김치 너무 맛있답니다 ㅋ 2 기쁨맘 2011.02.20 4,574 19
33526 우리집 수삼 8 단팥빵 2011.02.19 6,677 18
33525 대보름나물로 만든 돌솥비빔밥 3 에스더 2011.02.19 7,873 33
33524 백만년만에 만들어 본 하이라이스와 멕시칸샐러드 33 jasmine 2011.02.18 20,198 80
33523 또 방학이라죠..ㅋㅋ 12 브라운아이즈 2011.02.18 8,919 26
33522 저희도 나물해먹었어요. 자급자족 고사리, 호박고지나물 만들었어요.. 2 꼬꼬댁 2011.02.18 6,587 30
33521 촌스런 밥상 20 들꽃과들꽃사랑 2011.02.18 11,125 53
33520 아빠를 보내드리고........ 37 minimi 2011.02.17 14,139 35
33519 정월 대보름 3 오후에 2011.02.17 5,664 38
33518 나를 위한 상차림... 4 셀라 2011.02.17 8,360 24
33517 어리버리 허둥지둥... 10 sylvia 2011.02.17 7,136 31
33516 애여사네 밥상입니다요^-^(스압 쫌 있셔요) 32 Ashley 2011.02.16 18,331 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