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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성찬
오늘 숙직이라서 못보는데 아이들 보고 싶다고 직장에 왔다고 가라고 하네요
그러면서 라면끓여주겠다고,,
남편 직업은 일종의 관리직인데 말단입니다
시험쳐서 정식채용된지도 얼마안된 늙은 신입사원인셈이지요
그래도 예전 다른 회사 다닐때처럼 힘들어도 잠수타거나 그러지 않고 성실히 잘 다녀서--;
월급적어도 고정으로 들어오니 참 좋다고.,,그러고 지내요
미래에 대한 생각을 하면 답답해서 뭔가 제 자신의 전환점이 필요한 시점인것같아서
요즘 이래저래 생각이 많았습니다
많이 뒤쳐진것 같았고 이제 올라갈 여력이 없다는것을 인정할 시점인가..하고..
그래서 남편이 먹는 타령하고 옷타령하고 힘들다고 하면 솔직히 미웠습니다
아이들 앞에서 티격태격도 자주 했었지요
나도 너무 힘들고 지친데 남편은 아무것도 도와 주지 않고 서로 말안통할때는
갑갑하여 망망대해 떠있는 심정일 때도 많았어요
그래도 아이들 보면 세상 시름 다 잊는 듯 웃는 남편의 미소를 믿어서 살아가는 거였지요
비좁은 버스를 타고 남편의 직장으로 가는데
둘째는 업혀서 늘어져서 잠이 들고
첫째는 아빠직장에 간다고 좋아서 들떠서 주체할수없이 까불더군요
처음 들어가보는 남편의 직장
기계음과 화학약품의 냄새와 열기가 있는 곳을 지나서
사무실 안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숙직실을 겸하는 작은 사무실은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었어요
동그란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남편이 끓인 라면을 올리고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는데
그릇은 종이컵,,네 개에 반찬 한가지씩 담은
김치,오징어채무침, 오뎅볶음, 두부조림...제가 싸준 밑반찬인데
그렇게 담아놓으니 또 다른 사람 반찬 같은 네 개의 소박한 반찬들
끓인 라면을 먹는데 큰아이는 평소에 라면 잘 안주니까
오늘은 맵다면서도 참고 한 그릇 다먹고
작은 아이는 조금 맛만보다가 맴매라면서 물달래서 먹고
남편과 저는 한 그릇씩 먹고 밥말아 먹으래서 시키는 대로 또 먹고 커피 한 잔 타줘서 또 마셨어요
작은애가 많이 어질러서 가야겠다고 하고 일어서서 집에 돌아왔지요
큰아이가 문득 생각에 잠긴듯이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네요
'엄마,,,아빠가 그렇게 시끄럽고 덥고 힘든 곳에서 일하시는데
그리고 잠도 못잔다는데 ..
엄마..아빠가 엄마 조금 귀찮게 해도 좀 이해해줘'
이러네요
양말 한 짝도, 바지도, 안찾아주면 못찾아 입는 남편때문에 많이 귀찮아 했는데
저희 딸 눈에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그렇게 보였는지...
딸 앞에서 오히려 부끄러워졌지만
아이의 눈을 통해서 제 인생, 조금씩 익어가는 기분입니다
1. ㅇ
'10.9.21 1:35 AM (121.130.xxx.42)마음이 맑아지는 수필 한 편을 읽은 기분이예요.
따님 나이도 어릴텐데 어찌 그리 속이 깊은지...
지금보다 더 사랑하고 더 행복하세요.2. 미소
'10.9.21 1:38 AM (121.138.xxx.43)원글님...제목도, 글도 참 잘 어울리게 쓰시네요. 읽으면서 정말로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어요.
우리네 사는모습이 다 거기서 거기지요?
숙직하시는데, 아이들 보고 싶다고 직장으로 불러서 남편께서 하실수 있는 최선을 다해 차리신 성찬.. 맛있었을거 같아요.
글중에, "아이들 보면 세상 시름 다 잊는 듯 웃는 남편의 미소를 믿어서 살아가는 거였지요" 부부간의 가장 큰 믿음 아닐까요?
피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으로 만나서 나와 남편의 정확하게 반씩 받아 태어난 아이들.
부부를 이어주는 끈.
출장간 아빠 보고싶어하는 우리 아이들도 생각나네요. 정작 아빠라는 사람은 집에 오면 자는 아이들 얼굴 한번 제대로 안들여다 보는구만요.ㅎㅎㅎ
큰아이의 말도 어쩜 그렇게 철든 소리를 하는지...몇살인가요?3. 별헤는밤
'10.9.21 1:43 AM (112.149.xxx.232)교과서에 나오는 소설속의 부부같아요
닉네임도...
늦은 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어느 부부의 행복을 기도합니다^^4. 봄비
'10.9.21 1:43 AM (112.187.xxx.33)아마 따님에게는 오늘의 일이 참 즐겁고 따뜻하고.....왠지모르게 가슴 뭉클한
추억으로 자리잡을 것 같아요 (둘째는 어리니까 기억 못할 가능성이 크고...^^)
나중에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질풍노도의 급류에 휩쓸리게 됐을때도
오늘의 일이 문득 떠오르면서 따뜻한 중심을 잡아줄테지요?^^;;;;
어디 주부 대상 수기나 수필 공모하는데 응모해보셔요.
이 내용으로요...ㅎㅎㅎ
원글님네 가정에 좋은일들이 많이 생기셨으면 합니다.5. 미소
'10.9.21 1:49 AM (121.138.xxx.43)원글님 글 읽으면서 .. 제 어린시절 기억도 떠오르네요.
여자문제로 늘 엄마 속을 썩이던 아빠...그날도 아마 회사에서 늦게 오신다고 하셨었나봐요.
엄마는 저와 동생 둘..막내는 어려서 업을 정도였으니까, 제가 고작해야 6~7 살 되었을 무렵이었던거 같아요.
아빠가 일하는 회사 담장 뒤에서 .. 동생들이 칭얼거리자, 복숭아 꺼내서 먹이시면서 아빠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던 엄마와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마음이 너무 많이 아픈 제 유년의 기억들이 오버랩되네요.
기억은 생각보다 오래 가더라구요.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을 추억을 많이 만들어줘야겠어요.6. 다시꿈꾸는오늘
'10.9.21 2:00 AM (58.227.xxx.70)눈물이 터져버렸어요 전 너무 잘한것이 없는 것같네요...큰아이에게 말이죠...
이제 9살인데,,안정되고 좋은 환경이었다면 제 아이 저런 말 했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뭔가 마음속에 상실감을 겪은건 아닌지..좋은 추억 좋은 기억...에서 저도 무너지네요.....7. ^^
'10.9.21 2:35 AM (111.118.xxx.22)아빠가 일하는 곳을 가서 아빠가 차려주는 성찬을 온식구가 같이 나눠먹은 기억..분명 좋은기억이 될꺼에요 아빠를 이해하고 더 많이 감사하고 사랑하는 계기가 될것 같아요
따님이 엄마에게 한 말속에서도 좋은 기억이었고 아빠와 가족을 더 생각하는 맘이 묻어나네요
현명하고 착한 딸을 두셨네요
서로 사랑합시다 가족밖에 없어요^^8. ...
'10.9.21 2:48 AM (58.143.xxx.87)뭔가 모르게 묵직해지면서 뭉클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9. 어휴,,
'10.9.21 3:30 AM (93.104.xxx.71)마음이 정화되는 글이네요.
눈물이 글썽 했어요. 슬퍼서가 아니라 아름다워서....10. 유지니맘
'10.9.21 4:26 AM (112.150.xxx.18)행복한 가족 .
꼭 너무 많이 행복해시실겁니다 ^^
화이팅 ......... !!11. 화이팅
'10.9.21 4:57 AM (180.71.xxx.194)저또한 반성하게 하는글 잘 읽었습니다.
자기의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는 엄마들! 아빠을! 그리고 우리 아이들!!
힘내요, 열심히 살아가자구요!!12. ㅇ
'10.9.21 5:24 AM (110.11.xxx.244)글을 너무 너무 잘쓰시네요
마음을 움직이는 글..13. -
'10.9.21 5:27 AM (84.112.xxx.55)행복하세요
14. .
'10.9.21 7:54 AM (119.203.xxx.19)내용은 참으로 행복한 가정의 소박한 일상인데
안정적이 가정 환경이면 9살 딸 아이가 그런말을 안했을것이라는
댓글을 읽으니 눈물이 왈칵 솟네요.
경제적인 안정만이 안정적인것은 아니지요.
부부가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모습 보여주는게
아이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아닐런지요.
참으로 속깊은 예쁜 따님이예요.
시커먼 아들 거북이 등딱지 같은 마음을 보여주는
아들 둘을 볼때 가끔 내가 전생에 뭔 죄를 많이 지어
아들 둘을 키우나 싶을때 있어요.
정서적으로 벽이 딱 막혀 있을때....15. .
'10.9.21 7:56 AM (119.203.xxx.19)아참, 이글 라디오 여성시대나 최유라 그런 프로그램에라도
응모했음 좋겠어요.
우선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이고,
방송되면 선물도 푸짐한더라구요.^^16. ...
'10.9.21 2:09 PM (112.159.xxx.48)따님을 아주잘 키우셨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이는 모르겠지만... 참 속깊은 아이네요.
너무 행복하실거 같아요.
저도 가슴이 뭉클해지네요 ^^17. 글쓴이
'10.9.21 11:13 PM (58.227.xxx.70)어제 감사하고 고마운 댓글들을 읽으며 포근한 마음으로 그리고 속죄한 양인양 곤히 잠들었답니다 딸아이 말을 듣고 보니 제자신이 많이 부끄러웠어요. 그래도 격려해 주시니....ㅜㅜ 여기 이글 안지우고 잘 남겨서 흔들릴때마다 한 번씩 들여다 보고 싶어요 님들 가정에도 사랑의 열매가 단단하게 영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