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1 때 잘못
얼마전 여기 링크된 중학생 폭행 동영상을 봤다.
분노감이 일어 처음 몇 분 밖에 볼 수가 없었다.
내 감정과 비슷한 답글이 오히려 위안이었다.
그제 9시 뉴스에 이 동영상이 나오는 걸 봤다.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으니 어떻게든 합리적인 방안들이 강구되길 바란다.
20년도 더 전 일이다.
고1 때 1학기 중반쯤 병 때문에 2년 동안 휴학했다가 복학한 학생이 우리 반에 왔다.
말수도 없고, 약간 어눌하고,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학생이었다.
애들이 말을 붙여도 별 대꾸도 없고,
이름을 부를 것인지, 언니라고 할 것인지 호칭도 그렇고
17살인 우리들이 20살인 그 언니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애매해서 말 붙이기도 좀 그런 상태였다.
왜 그런 교수법을 썼는지 지금 생각하면 한심스럽지만,
그 때는 조원 중에 한명이 틀린 답을 하거나 잘못하면 조원 전체가 불이익을 받는 수업형태가 많았다.
그 언니는 학기 중간에 들어와 예전에 공부한 내용을 모르니 불이익을 만드는 조원 중에 한 명이 되곤 했다.
그 언니는 그런 일이 생길때마다 난처해하고 곤란해하고 미안해하는 모습이었지만, 이렇다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선생님들께 그 언니가 수업 받은지 얼마되지 않았다고 이해시켜드리는 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날 배울 내용을 미리 숙제로 해 와서 번호대로 돌아가면서 발표하는 화학 시간이 있었는데,
화학 선생님은 발표만 시키고 학습내용을 따로 판서해주거나 가르쳐주지 안는 분이었다.
그 언니 차례가 돌아왔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웅얼거리며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발표하는 그 언니가 얄미웠고,
질문시간이 되자 작정하고 이미 발표한 내용을 물어봤다.
우박의 단면이 투명과 불투명 얼음구조로 되어있는데, 왜 그런지를.
그 언니는 역시나 우물쭈물했고, 난 참으로 나쁘게도 그런 모습을 반 친구들이 다 보게 하는 게 목적이었을 것이다.
과학실에서 였는지, 그 수업이 끝나고 교실에 와서 였는지 그 언니가 운 것 같다.
다른 사람 가슴에 비수를 꽂고도 이제는 가물거리는 기억이 되었다니...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일주일 쯤 후(이 기간도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쉬는 시간에 그 언니의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이 오시고
복도에서 한 참 얘기를 나누시더니, 담임 선생님께서 교실로 들어오셨다.
그 언니는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교탁 앞으로 나가 우리들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갔다.
종례시간에 선생님은 우리랑 공부하기 어려워 그 언니가 자퇴를 하게 됐다고 했다.
그 언니는 공부가 아니라 우리랑 생활하는게 어려워 자퇴를 선택했을 것이라는 것을 그 때도 알았었다.
우리반 애들과 나는 그 언니가 있었던 1달 덜 되는 기간(3주 였던 것 같기도 하고, 더 길었을 수도 있고, 이 기억도 정확하지 않다)이 짧아서였는지,
별 교류가 없었던 그 언니에 대해서 너무도 쉽게 잊었다.
중학생 폭행 동영상을 보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 언니한테 했던 내 잘못이 기억이 났다.
긴 병치레 기간을 어렵게 넘겼을 사춘기 여학생이 나였다면 그 언니만큼이나 노력했을까 싶다.
내 손이나 발을 쓰지 않았을 뿐이지, 나는 그 언니를 때린 것이 분명하다.
혹시나 그 언니가 82cook에 머무르고 있어 이 글을 본다면,
마음에 늘 아픈 기억으로 갖고 있었을 그 시간과 나에 잘못에 대해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때려놓고 미안하다면 다야?”라는 말이 가슴을 후빈다.
미안하는 말 이외에 더 깊은 사과를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언니, 미안해!
이제야 기억해서 미안해. 이제야 사과해서 미안해.
언니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왔고, 살길 바래.
언니,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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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1때 잘못 - 중학생 폭행 동영상을 보고
그러지말걸 조회수 : 1,067
작성일 : 2009-03-07 10:49:35
IP : 203.130.xxx.21
7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그러지말걸
'09.3.7 10:51 AM (203.130.xxx.21)맞춤법과 띄어쓰기는 아래 사이트에서 도움을 받았지만, 아래아한글에서 타이핑한 본문에는 빨간 밑줄이 쳐진 단어들이 여전히 있습니다.
미처 거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이해해주십시요.
http://164.125.36.47/urimal-spellcheck.html2. 음?
'09.3.7 10:54 AM (114.203.xxx.197)굳이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대해 걱정하시는건.. ..........
3. ㅠ.ㅠ
'09.3.7 10:56 AM (211.52.xxx.201)원글님의 진심이 느껴져서인지 눈물이 핑도네요.
4. 그언니
'09.3.7 10:59 AM (119.70.xxx.187)이 글을 꼭 보셨으면...
아픈 상처가 지금이라도 서로의 기쁨으로 커질 수 있기 바래요^^5. 저도 그런 경험
'09.3.7 11:30 AM (121.130.xxx.144)초1때, colostomy를 했던 아이를 놀렸던 기억...
그 수술은 아마도 그 아이가 항문에 이상이 있어서 했을 겁니다.
사실 그 아이에게도 아무 냄새도 안났는데.... 군중 심리로....
대학때 그 것을 배울때 아~내가 정말 그때 잘못했구나 하고 알고 그 이 후고 많은 죄책감이 들었죠.
그 아이에게 정말 미안하고..... 평생 큰 짐을 지고 사는 아이가 가여워요........6. **
'09.3.7 3:11 PM (203.130.xxx.247)정말 가슴아픈 사연이군요.
인간은 왜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고 잘못한걸 알게될까요?
원글님을 비난하는 게 절대 아니고요.
모든 이들이 그렇다는 거예요.
저를 포함해서요.7. 눈물나네요.
'09.3.7 3:23 PM (124.50.xxx.21)원글 님의 반성이 눈물 나게합니다.
저도 기억나진 않지만
남에게 말로 상처 준 일이 많았을꺼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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