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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남편, 이해 못하는 제가 이상한가요?
제 남편은 전자 분야 대기업 연구원입니다.
우리나라 수재들이 모인 곳에서 박사까지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자리는 더 불안하고 경력과 노하우가 그리 빛을 발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나라 이공계 사람들에 대한 냉대를 생각하면 솔직한 현실입니다)
오랜 시간, 전직을 호소했습니다.
지방대 교수 자리라도 가라, 국가연구기관에 들어가라, 다 접고 변리사 공부라도 다시 하자..
그러나 남편은 자기 자리에서 승부를 보고 싶어 했습니다.
저도 느낍니다. 이 사람..천상 엔지니어구나.(물론 변화가 두려울 수도 있겠죠)
그래서 포기했습니다. 열심히 하라고 했죠.
비록 하고 있는 일이 회사 내에서도 빛을 보는 분야는 아니지만,
회사생활 7년하고 기업 관련 프리랜서 생활 9년한 저도 빤히 다 아는, 회사 내 부조리도 너무 눈에 들어오지만,
(그게 회사 생활에 신물이 날 정도의 사안이 아니라는 게 사실 이상하기는 합니다.)
이 사람에게는 성실이 있고, 열정이 있고, 창조적 아이디어가 있으니까요.
또 개인적으로는 회사에서도 나름 인정받고, 몇 푼 안되지만 숨은 계약도 해주고 있으니까요.
매일 밤 12시~1시에 들어옵니다.
11시 넘어까지 일하고, 1시간 거리의 집까지 오면 그 시간입니다.
아침에도 7시면 튀어나가야 하죠.
인정합니다. 요즘 대기업 분위기상, 오랜 기간의 연구와 투자가 필요한 R&D 분야에서도 '단발적, 즉각적'인 결과물을 요구하는 통탄의 현실이지만, 하기로 했으니 해야죠.
그런데 그 조직에 술이 없겠습니까. 1주일에 한번 정도 회식을 합니다.
전 술 마시는 걸 뭐라 하는 게 아닙니다. 스트레스 푸는 한 잔, 저도 좋아합니다.
문제는 새벽 3~4시까지라는 거죠. 전화를 걸어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습니다. 남편, 술 잘합니다. 하지만 매일 밤 12시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도 일하고(웬만하면 토요일에 회사 가서 개인적 공부나 정리 하라고 합니다. 일때문에 나가는 경우도 많지만, 아무래도 당장의 일 이외에 '자기 시간'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을테니요), 일요일에는 지쳐 쓰러져 잠이나 자는 사람이 술을 이기지 못하는 건 당연하지요.
직접 보지는 못했습니다만, 술을 깨려고 혼자 밖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허참.. 나이 40 넘어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술을 깨고 있다...
세상 흉흉해 뻑치기도 많고 정신못차리다 무슨 변을 당할지 모르는데...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남편은 '12시까지 일하는 사람은 술도 못 먹냐?'합니다.
그러나 술을 먹는 방법의 문제죠.
믿을 것은 몸뚱이 하나인데(정말 이 생각까지 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생각납니다),
앞날을 고려하지 않는 몸의 혹사가 어떤 파장을 미칠지 전혀 생각 못하는 게..
'여러가지 상황을 전략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열심히만 살았던 시댁을 보는 것 같아 더 괴롭습니다.
시아버지, 군인으로 경찰로 열심히 살았지만 막판에 주식으로 돈 말아먹고 깡통찼죠.
내가 먹여 살리고 있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더 나은 삶을 가족에게 주어야겠다는 욕망이 있다면 못할 짓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아이들 겨우 초등학생, 유치원입니다.
받을 재산이라도 있다면, '그래, 젊어서 고생 열심히 하는 것 좋아!' 좀 마음 여유롭게 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믿을 것. 남편의 실력뿐입니다.
더 치사하게 말하면, 남편의 몸뚱아리뿐입니다.
(저 그게 무서워서... 저도 프리랜서로 일 많이 하며 아이들도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가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병이 될 때도 있을 만큼요.)
이런 걸 다 계산해서 술마시면 술 맛 안 난다는 것 압니다.--::
단 이제 겨우 인생에 반 왔는데, 앞으로의 인생도 녹록치 않을 것이니 좀 더 정신무장하여, 좀 더 전략적 고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순간순간이라도 한다면... 전 그렇게 행동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입만 살아서 궤변 늘어놓는 상대 출신보다(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 절대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구요. 제가 만나본 사람들이 그랬다는 겁니다.ㅎㅎㅎ), 과묵하고 자기 일 열심히 하고 순수한 열정이 있는 공대생들을 더 후하게 여겼습니다. 아이들도 아빠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러나 긴 미래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 없이 그냥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이... 이 거지같은 나라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이공계 엔지니어들의 면면이라면, 그 불평등은 자신들이 초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 문제는... 그 불평등을 불평등으로 안 받아들인다는 거죠. 가족들만 속상해 합니다.
(언젠가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가 엔지니어들을 '말 잘 듣는 착한 공돌이들'이라 말하더군요. 엔지니어에 대한 기업의 인사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죠.)
누구는 오늘의 행복없이 내일이 행복하느냐 말하겠지만..
전 내일을 계획하며 그걸 하나하나 이루고자 열심히 사는 오늘을 행복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어젯밤, 새벽 3시까지 일하면서 전화도 잘 안 받고, 술 취해 자기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는 남편과 통화한 여인네의 하소연이었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 제 생각인데요
'09.2.27 11:02 AM (211.177.xxx.252)님의 속상한 맘은 알겠어요. 하지만 남편분의 지향점과 생각하는 방향도 다르신 것 같은데 무엇보다 자기가 자신있고 잘하는 일도 다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전혀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푸쉬하는 것은 결국 현재의 기반도 잃을 수 있는 무리수가 될 수도 있어요. 가능하면 남편분의 뜻을 존중해주시는게 좋지 않을까 싶네요.
2. 희망
'09.2.27 11:02 AM (119.196.xxx.24)저 젊을 적(?? 불과 5,6년 전)과 많이 비슷해요.
저도 남편도 가방끈으로 남부럽지 않지만 그에 비해 평범한 직장생활하는 남편, 애들 때문에 프리랜서로 근근이 버티는 젊을 적 저...
세월이 흐르면 달라져요. 지금도 미래가 완전히 보장된 것은 아니지만 큰 사고만 없으면 무난하겠다 싶구요.
살다보니 기회가 생기더만요. 우선 바탕이 있으니 기회도 온 것 같아요. 우연찮게 이직하게 되고 열심히 일하다보니 지금은 외국계 회사에 최연소 이사가 되었어요. (이것도 별거 아닐 수 있지만요.) 제 남편, 님 남편과 비슷한 분도 대기업에서 배운 것으로 나와 프리랜서로 대기업 교육다니고 뭐 하시는 데 월 이 천 이상 버시구요.
문제는 본인이예요.
프리랜서만 하다 사정이 생겨 일 이년 쉬니 이제 일이 없어요. 경제적으론 힘들지 않으니 안주를 하다보니 더 큰 위기에 처한 것 같아요. 이러다 사고로 내가 벌 상황이 온다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 이미 규모가 커진 경제 상황에 저 혼자 감당하긴 힘들 것 같아요. 이것도 젊을 적 위기감 못지 않네요.(엊그제도 술먹고 늦길래 짜증을 많이 냈어요. 인사불성 되서 추운 겨울에 사고날까봐 걱정되니 더 화가 나요. 젊을 적엔 멀쩡했는데 나이들수록 술을 못 이겨서요 ㅠ.ㅠ.)
남편 걱정은 놔두시고 본인 걱정을 더 하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대기업서 열심히만 하면 언젠가는 기회가 옵니다. 집에서 애키워주고 살림해주는 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님이 자기계발하고 빨리 애 키워서 독립시키고 일 하세요. 그럼 걱정이 덜 하는 것 같아요.3. 에휴
'09.2.27 11:09 AM (117.20.xxx.131)어쩜 제가 하는 고민이랑 이리 똑같으세요..ㅠㅠ
우리 신랑도 대기업...스텝부서에요. 근데 일이 정말 엄청 많아요.
그래서 어제도 제가 너무 속상해서..자게에 글 올렸어요.
일주일에 3~4번 회식한다구요..ㅠㅠ
일도 일이고 거기다 우리 신랑 회사는 회식도...딱 원글님네 회사처럼
술 한번 먹으면 정신도 못 차릴 정도로 마셔요. 3, 4시는 기본이구요...
우리 신랑은 이제 나이가 20대 후반인데 이미 몸은 50대 할아부지 비슷할거에요.
자기 관리를 못하니까요..술이랑 회식땜에 살은 엄청 쪄버리고
잠 못자고 폭음하고 과식하고...좋은거 하나 없네요.
저도 원글님처럼 여러가지 방법 다 써봤지만..안 통해요.
그래서 아예 무관심 해버릴까 생각중이에요.
아무리 옆에서 와이프가 몸 관리해라. 신경써라. 얘기해도 소용 없어요.
자기가 진짜 느껴서 컨트롤하지 않는 한..정말 불가능인거 같습니다.
남편들 입장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참..와이프들도 많이 답답하고 힘들죠.
같이 힘내요.......4. 원글
'09.2.27 11:15 AM (125.177.xxx.103)세 분 다 조언 넘 감사드립니다. 제 생각이에요님. 네, 맞습니다. 남편의 방향과 제 방향이 많이 틀려서...더 이상 그런 말 안 합니다. 의도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 욕심대로 밀어붙이는 것 안 된다는 것 알았거든요.. 그런데 '건강 관리' 부분은 저도 그냥 수수방관하기가 넘 힘들더라구요. 그 사람의 건강이 우리 가족의 생명줄인데.. 분위기라고 새벽3~4시까지 마시는 게 속이 다 타들어갑니다. 40이 넘으면서 이제 중년의 기품까지는 안 바래도 좀 넉넉한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일에 찌들어, 그게 아니면 술에 찌들어 추레한 모습을 보면... 너무 마음이 안 좋아요.
5. 원글2
'09.2.27 11:19 AM (125.177.xxx.103)희망님. 저도 제 걱정 심하게 하는 사람입니다.ㅎㅎㅎ. 작년까지 남편 월급만큼 더 벌었죠. 프리랜서로요. 그런데 프리랜서라는 직업이 어제 1천만원을 벌어도 오늘 0원을 벌 수 있는 구조죠. 특히 요즘처럼 기업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제 일은 좀 직격탄입니다. 게다가 제 일은 '축적형'라기보다 매번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 하는 '소비형'이거든요. 초등학교 간 아이 공부 챙기랴, 일하랴, 밤에 애들 재우고 글쓰랴, 남편 걱정하랴, 가족의 미래 고민하랴,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 공부하랴, 부모로서 부족한 부분들 공부하랴.. 제가 도닦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저 정말 이러다 제명에 못 살 것 같아요..T,T 암튼 응원 힘입어 더욱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6. 저도
'09.2.27 11:56 AM (203.170.xxx.242)원글님 말씀 너무나 이해가 가요
남편은 연구원,저는 잘나가는(앞은 모르는) 프리랜서..
지금 버는돈은 제가 더 많지만 남편은 프로젝트 있으면 밤새고
끝나면 술에 쩔어 들어오고..
요즘 82엔 개념없는 남편들 얘기가 많은데
남편이 조금이라도 늦거나 전화안받으면 온갖 이상한 상상에 시달리고..
게다가 저 임신중인데 신경무지 날카롭구요
조금이라도 그런얘기 비추면 자기 못믿냐고 펄쩍뛰고..
원글님 글보니 답답한 제맘을 보는거 같네요...7. 걱정많겠습니다
'09.2.27 12:11 PM (221.138.xxx.5)저도 늘 남편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제 남편은 프리랜서인데 생업을 위한 일도 그렇고
나름 자기가 활동하는 방면에서 인정을 받다보니
사회적인 활동도 점점 많네요.
하고싶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맡겨지는 일들 때문에
시간도 많이 뺏기고 스트레스도 많습니다.
그런데 사는게 생각만큼 만만치가 않아서인지
그렇게 바쁘고 힘들게 사는 것에서 벗어나기가 힘드네요.
다크 서클 벗기 힘든 남편 얼굴 보고 있노라면
사는게 뭔지...ㅠㅠ
이제 기운없고 몸도 부실해져서 술도 잘 못마십니다.
나이드니 여기 저기 망가져가는 몸에다가...
에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