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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화는 지는데"(8-8)

... 조회수 : 327
작성일 : 2009-01-09 00:06:15
목련화는 지는데"

제 8부



아내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나니, 항상 가슴에 무엇이 체한 듯한(우리 시골에서는 "얹혔다"라고 한다) 느낌이 들었다. 답답하고 가끔 한숨이 나왔다. 산책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까 싶어 공원으로 나왔다. 그 순간 가장 부러운 것은 손을 잡고 걷는 부부였다. 나와 같은 경험이 없는 사람은 두 연인이나 부부가 팔짱을 끼고 가거나 손을 잡고 걷는 것이 얼마나 부러운 것인지 아마 잘 모를 것이다. 정말로 눈물 나게 부러운 것이 그 모습이었다.

나는 매 주말 마다 아내의 무덤을 찾아 갔다. 그렇게 하는 것은 아내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나를 위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내를 찾아가는 빈도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내에 대한 생각은 1년이 지나니 조금 줄어들었고, 2년이 지나니 급속도로 줄기 시작했다. 3년이 되었을 때, 아내에 대한 생각은 하나의 추억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그때서야 비로소 아내를 내 마음에서 보내 줄 수 있었다. 사람이 죽었을 때, 옛날 사람들이 3년 상을 치른 것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아내가 저 세상으로 간지 몇 달 후에, 아내의 퇴직금 5천만원이 나왔다. 돈을 보니 애써 잊었던 눈물이 또 났다. 어떻게 할까 한참 생각했다. 아내가 살았다면 그 돈을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 보니 해답이 나왔다. 그 동안 우리와 함께 살며 집안 일을 도와주었던 가운데 처제에게 2천만원을 주었다.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가장 가슴 아파했었을 아들에게, "이것은 어머니가 너에게 주는 돈이다."라고 말하면서 천만원을 주었다. 딸을 키워준 장모님에게 5백만원을 드렸다. 나머지 천 5백만원은 큰 처제, 작은 처제, 우리 어머니, 누님, 큰 형님, 작은 형님 등 모든 친척에게 2~3백만원씩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하고 보니 마음이 편했다.  "당신에게는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해. 당신에게는 나의 마음과 우리의 추억을 줄게."라고 아내가 빙긋이 웃으며 나에게 말하는 듯 했다.

그 해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 개학이 되었다. 학교 직원 조회 시간에 나는 여러 선생님 앞에 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 선생님들, 그 동안 여러 모로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들께 꼭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본인이나 가족 중 누군가가 몸이 이상하다고 생각될 때, 그리고 의심이 갈 때는 한 병원에만 가지 마시고 다른 병원에도 꼭 가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해야만이 저처럼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눈물이 나서 말을 끝내지도 못하고 중간에 그만두었다.



세상에는 나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나보다도 훨씬 더 불행한 경험과 추억이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내 한 사람이 아니라, 가족 모두를 잃고 본인까지도 불구가 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내를 잃고 그 슬픔을 극복해 오면서 내가 느끼는 것은 본 글의 제 1부에서 말했듯이,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작은 것으로 만족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별 문제만  없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더 바라면 바랄수록 공허감은 그만큼 커진다. 욕망을 줄이면 만족하기가 그만큼 쉬울 것이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안이 없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럽기도 하고 불행스럽기도 하다. 이것은 인생 최대의 서스펜스요 스릴이다. 천년 만년 살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어느 순간, "당신은 죽습니다"라는 천명(天命)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아내가 병에 걸린 후 언젠가, "1년만이라도 병없이 훨훨 살아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한 달만이라도 마음대로 살고 싶다."라고 말했다. 급기야 "일주일 만이라도 병없이 건강한 몸으로 여행한 후 죽고 싶다."고 했다. 결국은 그 소망조차도 이루지 못하고 아내는 죽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단 일 분 일 초도 더 허락하지 않는 것이 죽음이라는 천명이다.

지금 누구를 만나고 싶다면 당장 만나야 한다.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싶다면 지금 당장 그래야 한다. 지금 일 주일 여행 가고 싶다면 당장 떠나야 한다. 속담에 있듯,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Time and tide wait for no man)." 어느 날 갑자기 아무 것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날이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용기있는 자만이 미인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무엇을 할 때인지를 아는 것이 인생 최대의 깨달음이다."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젊은 사람에게나 노인에게나 이 말은 항상 적용될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중 몇 분이 저에게 위로의 메일을 보냈습니다. 이런 편지를 받아 고마운 일이지만, 저에게 한 때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지 제가 지금 슬프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어렸을 때 당신 가난하게 살았으니 지금 당신 불쌍해서 어쩌나?"라고 하는 것과 마찬 가지일 것입니다. 저는 지금 가난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습니다. 영어 표현에 있듯이 오늘날의 나는 과거의 내가 아닙니다. 단지 인생의 한 때, 그것도 11년 전에, 그런 경험을 했을 뿐입니다. 저는 아무런 문제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아마 모르면 몰라도, 그런 편지를 보낸 분보다도 현재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제가 글을 너무나도 "리얼(real: 사실적)"하게 써서, 그 독자가 글에 심취되어, 잠시 글과 현실을 혼동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저의 작문 실력에 대한 칭찬으로 알고 고맙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 "목련화는 지는데"라는 글을 쓰는 순간만은 저도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갔고, 그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여러 대목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봅니다. 아마 눈물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과거에 모든 슬픔을 눈물로 내보냈기에, 오늘날의 "눈물없는 나"가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도 눈물을 흘릴 일이 있으면 저는 언제든지 눈물을 펑펑 쏟을 것입니다.


처음에 이 글을 덜컥 시작해 놓고, 어떻게 전개하여 어떻게 끝내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이런 글을 시작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주제가 너무 무겁기도 하고, 저의 부끄러운 면이 노출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당장 그만두고도 싶었습니다. 또한 이 글이 자칫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고, 글이 잘못 흘러 소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을 비유하여, 제목을 "목련화는 지는데"라고 정해놓고 글을 써 내려갔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목련화는 피는데"가 제목으로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마다 봄이 오면 "목련화는 피는데", 아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 슬픔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하여튼 별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이 글을 마감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이 글은 짧게 쓰면 4부 정도로, 길게 쓰면 30부 정도는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사연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누가 이런 글 30부작을 읽겠습니까? 우선 저부터도 읽지 않을 것입니다. 하여튼 이제 이 일을 다시 들추어 내어 글을 쓰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정도에서 "목련화는 지는데" 시리즈의 막을 내립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 저에게 메일을 보내 주신 분께, 저의 홈페이지에 댓글을 올려 주신 분께, 그리고 이 글을 읽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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