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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화는 지는데"(8-7)
... 조회수 : 269
작성일 : 2009-01-08 23:58:35
"목련화는 지는데"
제 7부
병원에서 매일 조금씩 죽어가는 아내를 계속 바라보는 것은 정말 피를 말리는 일이었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정신적으로는 더욱 힘들었다. 저녁이 되면, 나는 아내가 잠들기를 기다려, 한강으로 자주 나가 강바람을 쐬었다. 거기에서 강을 따라 잠실 선착장까지 걸어갔다. 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 데이트 하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들이 마치 꿈 속에서 사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유람선에서 쌍쌍이 술을 마시거나 차를 마시는 사람이 더 이상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무 생각없이 한참을 의자에 앉아 있다가 다시 병원으로 터벅터벅 걸어왔다.
**병원 6층인지 8층인지에는 야외 공원이 있었다. 나는 아내를 데리고 늦은 오후나 저녁에 그곳에 갔다. 우리는 과거의 우리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했다. 처음 우리가 만났을 때의 이야기와 결혼 전 어떤 문제로 헤어질 뻔 했었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 아들의 이야기도 많이 했다. 시작도 끝도 없고, 결론도 없는 그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만남도 몇 번 하다가 그쳤다.
어느 날 아내는 나에게 종이 쪽지 한 장을 건네 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재산 목록이었다. 거기에는 깨알 같은 글씨로 어떤 통장이 있는지와 어느 증권회사에 얼마의 주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 적혀있었다. 나는 그 쪽지를 대강 읽고 주머니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아내를 다시 바라 보았다. 아내는 몸과 얼굴이 많이 상해 있었다. 아내의 얼굴을 똑바로 본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내의 눈동자도 옛날의 눈동자와 많이 다른 듯 했다. 그리고 무엇에 쫒기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정신이 조금씩 희미해져 가는 듯 했다.
그날 밤 회진시, 아내는 죽는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의사에게 물었다. 본인이 죽는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죽는지 알고 싶었던 모양이다. 언제쯤 돌아다닐 힘이 없어지고, 언제 쯤 정신이 없어지고, 그리고 죽는 순간에 정신 상태는 어떻고 하는 것들이 알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는 별 말이 없이 돌아갔다. 아마 의사도 모를 일이고, 죽었다가 살아나온 사람이 아닌 이상 알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아내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위와 식도에서 전이된 암덩어리가 다른 장기를 압박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통증을 덜어 주고자 의사는 아내에게 마약을 투여했다. 마약을 투여받은 아내는 곧 잠이 들었고, 얼굴은 평화로워 보였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일단 마약의 취기에서 깨어나면, 무조건 그 약을 다시 투여해 달라고 했다. 마약이 몸에 좋지 않으니, 좀 사이를 두고 맞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내가 말했다. 아내는 갑자기 화를 내면서, "너 잘 났다. 너 그리 똑똑하냐? 다 집어 치우고 당장 의사에게 가서 주사 놔달라고 해."라고 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다. 마약이라는 것의 효력이 얼마나 강하면 저렇게 행동할까 두려웠다. 그러다가 결국은 본인이 직접 간호실로 가서 간호원과 싸웠다. 간호사는 간호사대로 마약 투여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의사의 지시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다음 날 나는 담당 의사를 만났다. 마약을 투여하지 않으면 환자를 살릴 수 있는지 물었다. 의사는 어떤 방법으로도 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죽는 순간까지 편하게 살다 죽도록, 환자의 소원대로 계속 마약을 투여해 달라고 말했다. 의사는 한 참을 생각하더니 그러겠다고 말했다. 의사의 말에 따르면, 마약을 투여하면, 모든 고통이 다 사라지고,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그날부터 매일 하루에 두 번 정도 마약을 투여했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아예 포도당 주사에 마약을 넣어 하루 종일 마약을 투여했다. 이 마약의 도움으로 아마 아내는 괴로움에서 해방되었을 것이다. 이때쯤부터 아내는 정신을 잃었고, 일어날 수도 없었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루 종일 눈을 감고 있었다. 또한 독약으로 인해 간이 더욱 악화되어, 복부에 복수가 차기 시작하여 몸이 점점 뚱뚱해져 갔다.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알아듣는지, 어떤 말을 하면 발가락을 움직였다.
더 이상 어쩔 수가 없었던지 의사는 남산만하게 부어 오른 아내의 배에 있는 복수(腹水)를 주사기로 제거했다. 그러자 급속도로 아내는 죽음의 길로 접어들었다. 의사가 나를 부르더니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나는 무엇을 준비하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 말했다. "친척들 오셔서 마지막 모습을 보라고 하세요."
나는 누나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 동안 어머니에게는 비밀로 해두었던 것이다. 속 썩이는 것이 걱정돼서다. 하지만 어머니는 왜 지금 그런 일을 이야기하는지 원망을 했다. 정신이 있었을 때 며느리와 한 마디 말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이제야 이야기하다니 내가 정신이 있는 사람인지 어떤지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한다고 그렇게 했지만, 어머니 말을 들어보니 어머니 말이 옳은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못했다. 훗날 생각한 것은 모든 일은 숨기지 말고 자연스럽게 알리는 것이 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어머니와 다른 친척들이 병원으로 와서 시체나 다름없는 아내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아내는 수 많은 주사 바늘 자국과 수술자국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암덩어리와 통증으로 가득찬 육체를 떠나, 한 많은 이 세상을 뒤로 하고, 고통없고 걱정없는 하늘 나라로 철새처럼 훨훨 날아 갔다. 아이와 나 둘만 남겨둔 채, 대중 가요에 나와 있듯,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그렇게 갔다.
헤어지기 섭섭하여
망설이는 나에게
굿 바이 하며 내미는 손
검은 장갑 낀 손
할 말은 많아도
아무 말 못하고
돌아서는 내 모양을
저 달은 웃으리
<검은 장갑>
IP : 121.134.xxx.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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