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의 카드가 없다"는 정운천 장관의 말과 "신뢰 문제로 고시 후 서명"을 해야 한다는 김종훈 본부장의 언급으로 마침내 정부는 옷을 벗어던졌다. 붙으려면 붙자는 것이다. 보아하니 전처럼 몰매맞을 것 같지는 않고 소원했던 자기 편도 웬만큼 집결한데다가 자신들의 잘못을 두고 일어나는 사단이 아니라 좌와 우의 싸움으로 몰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듯 하다.
이른바 선전포고다.
이제사 생각하니 청와대 뒷산에서 촛불의 바다를 보며 행했다는 자책의 내용은 "국체를 위협하는 저 시위"를 미리 미리 짓밟지 못한 자책이었다.
겸손해지겠다는 다짐일랑 100만의 국민이 모여 외치고 손 흔들고 팔 내뻗고 물대포 맞으며 절규로 지적했던 오만함 앞에서 촛농처럼 녹아 버렸다. 정말로 죄송하지만 YTN 사장은 내 특보 출신이 해야겠고, KBS도 내 수족으로 메워야겠으며 뼈저리게 반성하는 바이기는 하지만 무조건 쇠고기 고시는 해야겠으며 그게 꼴사납다면 더 이상 할 말 없으니 글러브 끼고 링 위에 오르라는 것이다.
시민들의 의사를 깔아뭉개고 모욕했던 신문들의 광고주에 항의하는 것은 용서 못할 폭력이지만 백주대낮에 50대 여인을 피켓으로 두들겨 패는 건 정당한 응징이라서 품에 안겨 줘도 어영부영 풀어 어 줄 일이다.
촛불을 들고 청와대로 가자는 것은 국체를 뒤흔드는 선동이지만 의병이 모여 그 '천민'들을 진압하자는 것은 이성과 지성에 기반한 호소가 된다.
망치 들고 경찰 버스를 부순 이는 지구 끝까지 찾아가 콩밥을 먹일 요량이지만 개스통에 불붙여 화염방사로 활용하는 것은 조금 과한 듯 싶지만 소리없는 다수의 정당한 분출로 가늠받는다.
부팅조차 못하는 사람이 인터넷의 유독함을 소리 높여 논하자 경찰의 독수리는 이미 날개 소리 요란하게 날아올라 썩은 고기를 찾고, 법무부장관의 한 마디에 검찰은 민사재판의 판례를 가져와서 형사 처벌에 응용하겠다며 서슬 시퍼런데, 서울 관악구청은 가게 앞에 나붙은 쇠고기 수입 반대 플래카드조차 눈 뜨고 볼 수 없다고 처벌대상이라고 으르댄다.
87년 6월 박종철의 죽음을 추모하며 검은 리본만 가슴에 달아도 불법 부착물 부착 혐의로 전경에게 멱살 잡히던 시절이 어느 사이엔가 우리 곁에 왔다. 살금살금 그러나 성큼성큼 왔다. 이런 판국에 대통령 대변인은 자기들더러 '공안정국 운운하는 건 80년대식 발상'이란다. 선전포고를 하면서도 평화를 사랑한다고 우겼던 저 많은 전쟁광들의 심리 상태가 그러하였으리라.
나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정부의 편안한 임기와 종생을 바란다. 어수선한 통에 100일 잔치도 못 치른 정부를 믿고 따라 보자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될성부를 떡잎은 커녕 이 정부는 끝내 칼집 없는 칼을 내민다. 그들은 칼집을 버렸다. 그리고 그 칼은 누군가를 베지 않고는 칼집을 얻지 못할 것이다.
따르라. 그렇지 않으면 죽음이라는 것을 대통령의 사과의 배경으로 펼쳐진 늙은 군복들의 살기와 검경의 방울소리와 MB 직속 공수특전단의 산개로 적나라하게 비춘다.
나는 그 칼에 맞고 싶지 않다. 그리고 굳이 거리에 나가 그 칼에 목을 들이대지 않는 한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어느 국회의원이나 열 두 살 난 아이처럼 닭장차 구경을 할 일도 없을 것이다. 참전하지 않는 자에게 무슨 두려움이 있을 것인가. 전쟁은 어차피 인터넷으로 생중계된다. 무섭지 않다. 두렵지 않다. 신경을 쓸 일이 아니다.
그러나 무섭다. 100만의 촛불도 "초장에 밟아버릴 것을....."이라고 자책했을 것으로 (그 후의 행적으로 미루어) 추정되는 이와 그 정부의 초토화작전이 두렵다. 100만의 파도조차 물쩡 넘어버린 이 윈드서퍼들의 앞길에 무슨 거침이 있을 것인가. 과연 그들에게 무서운 것이 무엇이겠는가. 저들의 기세가 저토록 등등하고, 반성의 비읍자도 드러내지 않고 하늘 아래 무서운 것이라곤 오뉴월 눈송이만큼도 보이지 않을 때 가장 비참해질 자들은 누구이겠는가.
맛있는 찐빵집이 있었고, 달동네 야학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있었고, 114번 버스에 고단한 몸 실었다가 고갯길 십리 길을 올라야 집 턱에 닿는 고단함이 그득했던 난곡이 상전벽해를 이루었다. 그러나 원래 그곳에 살던 사람 가운데에 그 변신의 땅에 주민등록을 둘 수 있는 이는 열 명 중에 한 명일 뿐이다.
뉴타운에 들떠서 747 비행기를 탔던 사람들이여. 고만고만한 월급으로 마누라와 아이들 꾸리는 주제에 일단 경제가 살아야 한다며 비즈니스 프렌들리에 박수 치는 사람들이여. 대운하 때문에 땅값 오른다고 환호한 시골 사람들이여. 비참해질 것은 당신들이다. 그리고 나다. 그리고 우리들의 아이들이다.
전쟁은 시작되었다. 싸우고 싸우지 않고는 개인의 자유다. 그리고 누가 이기든 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싸움의 결과의 책임은 싸운 자와 싸우지 않은 자에게 공히 지워질 것이다. 싸우지 않았다고 천민이 의병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싸웠든 그렇지 않든 이 싸움의 결과는 우리의 이마에 손오공의 테로 남을 것이다.
출처 : 하종강의 노동의 꿈(http://www.hadream.com)/ 김형민의 썸데이서울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선전포고(펌글)
용수철 조회수 : 190
작성일 : 2008-06-26 12:53:31
IP : 58.29.xxx.66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광화문
'08.6.26 12:58 PM (218.38.xxx.172)제 삶에서 전쟁이라는 일이 있을줄 몰랐는데 나라가 국민들을 전쟁터로 몰아요...
☞ 로그인 후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