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친일 언론으로써 반민족적 행위를 한 것이 사실인가?.....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조선일보의 "반일 논조로 인하여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는 주장은 사실인가?.....이것도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약간 어리둥절하겠지만 사실은 사실입니다. 특히 두번째 주장은 조선일보가 당당하다고 외치면서 늘 하는 주장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 저희 어린 시절에는 교과서에 일제하 민족지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수록이 되어 있었지요. 하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이 글에서 일제 하에서 조선일보가 당한 수난을 중심으로 그 시점과 그 시점이 갖는 의미를 조명해 그들 주장의 허구성을 밝혀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제하 4번의 정간에 관하여...>
우선 조선일보가 '민족지'임을 주장하기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일제 하 4번의 정간"과 그들의 '연혁'에 등장하는 대표적 필화를 각 사건이 일어 난 시점의 경영인 등 인과관계와 시대적 상황을 연계시켜 살펴 보겠습니다.
1. 창간(1920. 3. 5) - 1920. 8. 13 (친일파 조진태-예종석 체제가 경영하던 기간:앞의 '조선일보의 창간..'과 '조선일보의 뿌리'참조)
"1920년4월28일 영친왕과 日 왕족 方子의 강압적 결혼을 비판하는 기사로 창간 4호만에 첫압수"-(조선일보 연혁)
"(1920년)6월1일자부터 3·1운동에 대한 탄압과 잔혹성을 폭로한 ‘골수에 깊이 맺힌 조선인의 한’을 연재. 결국 6월10일자 10회로 중단되고만 이 시리즈로 인해 경영진이 사퇴압력을 받아 결국 부사장 예종석과 기사를 쓴 최국현 방한호 등 3명의 기자가 축출."(조선일보 2000. 3. 5 '날카로운 필봉으로 일제-독재 이겨내')
위 영친왕과 관련된내용은 당시 왕세자 이은과 일본왕족 이방자의 혼인에 대하여 보도하면서 이은과 먼저 혼약이 있었던 민규수가 파혼돼 약혼반지를 되돌려받은 사연과 함께 민 규수댁 탐방기사를 실은 것을 말합니다. 이런 내용의 기사가 과연 저들이 말하는 '영친왕과 日 왕족 方子의 강압적 결혼을 비판하는 기사'인지에 대해서는 아래의 인용문을 참고하여 각자 판단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조선일보와 같은 실업 본위의 것(상업지라는 뜻:필자 주)과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까지도 발매금지 또는 경고를 받는 형편이다." (독립신문-상해 임시정부 기관지- 1920. 6. 1)
아래 '골수에.......'기사에 대해서는 사실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었지만 일단은 사실대로 믿기로 하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시기에 조선일보의 반일기사는 이 기사 뿐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솔직히 이것도 미심쩍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김동민 교수(한일장신대 신방과교수)의 다음과 같은 글을 보면 그 내막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이 친일 신문이 아니라 오히려 항일 민족지라는 인식을 심어줌으로써 독자를 확보하여 경영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20년대 초 총독부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나가는 것을 방치했다. 이를 두고 그들은 항일 민족지였다고 강변하고 있다."('역사가 말하는 조선일보의 진실')
2. 배(반)일파인 권병하-유문환 체제 기간(1920. 8. 15 - 1921. 4. 8)
"1920. 8. 27.자 서울을 찾은 미국 국회의원단 일행을 환영하는 조선 민중을 탄압한 일본경찰의 처사를 비난한 사설 '자연의 화'로 인해 1차 정간조치"
"1920. 9. 5. 1차 정간이 풀린 이틀 후( 9. 5.) "총독부 당국은 무슨 이유로 우리 일보를 정간시켰나뇨"라는 논설로 무기한 정간조치(2차 정간)" (이상 '조선일보 연혁')
특히 두번째 논설은 "....조선일보라는 간판하에 민족적 양심을 버리지 아니하는 한 이를 참을 수 없으므로 철두철미하게 배일신문이 되는 소질을 발휘할 수 밖에 없다."라는 용기있는 내용으로, 당시 총독부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조선일보는 친일파인 조진태-예종석체제에서 배일파인 권병하-유문환 체제로 바뀐(1920. 8. 13) 후 인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동아일보'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창간 이래 신문사(조선일보) 내부에서 이른바 친일파와 배일파가 대립해 있다가 배일파의 입지가 상대적으로 강해진 것이다."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시련과 단련')
3. 송병준 체제 기간 (1921~1924)
............... 매국노 기간이니.... 쩝쩝쩝......
4. 이상재-신석우-안재홍 등 민족주의자 체제 기간 (1924 - 1933)
"1925. 9. 8자 "조선과 노(러시아)국의 정치적 관계"란 사설을 통해 일제의 조선통치에 대한 불만을 부추겼다는 이유로 3차 정간"
"1927. 1. 25자 "보석 ? 延의 회생"이라는 사설에서 일제의 감옥제도와 고문 등 비인도적 처사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발행인 안재홍과 백관수 편집인이 구속"
"1928. 5. 9자 일본군의 산동출병을 비난한 "제남사건의 벽상관"이라는 사설로 인해 무기한의 4차정간 및 안재홍 주필이 재수감"(이상 '조선일보 연혁')
이 기간 동안 조선일보는 치열한 반일노선을 걷습니다. 월남 이상재-신석우-안재홍으로 이어지는 경영진들이 민족주의자들 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기간 중 조선일보는(정확히 표현한다면 당시의 조선일보 경영자들은) 신간회의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합니다.
5. 방응모 체제 기간 (1933 - 1940:조선일보, 1935 - 1945:조광)
"1936. 3월25일 한-일학생간의 교육기회 차별을 비판한 사설 '교육조선의 비극'게재로 '교육필화'수난" ('조선일보 연혁')
방응모가 운영하던 기간 중 그들이 대표적 필화라고 연혁에 소개한 단 하나의 사건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알기 쉽게 정리해 보겠습니다.(괄호 안은 경영기간을 뜻합니다)
1. 친일파 조진태-예종석 체제 기간 (약 5개월) : 없음
2. 배일파인 권병하-유문환 체제 기간 (약 8개월) : 정간 2차례
3. 매국노 송병준 체제 기간 (약 3년) : 없음
4. 이상재-신석우-안재홍 등 민족주의자 체제 기간 (약 9년) : 정간 2차례, 발행인 구속 2차례 등
5. 방응모 체제 기간 ('조광' 포함 약 12년) : 없음
이제 이해가 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반일운동의 근거라며 내 놓는 '정간 4차례'의 비밀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 정간 4차례는 모두 배일파나 민족주의자들이 경영하던 기간 중에 있었던 일인 것입니다. 더구나 방응모가 인수한 후부터는 일제 하 조선일보(조광포함) 역사의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12년 간이라는 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차례의 정간도 없었던 것입니다.
정간은 커녕 열렬한 천황의 신민이 되어 우리의 재산을 수탈하는데 앞장서고 우리의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로 내보내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조선일보의 폐간에 관하여.....>
이제 그들이 '민족지'임을 주장할 때 내세우는 또 하나의 근거인 '조선일보의 폐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조선일보의 폐간에 대한 것도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에게 유리한 내용이 아니면 제대로 기술해 놓은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그들이 써놓은 글을 한번 봅시다.
"1940년 8월10일 일제에 의해 지령 6923호로 폐간, 창간후 20년 5개월 5일 동안 정간 4회, 500여회의 압수"(조선일보 '연혁')
"일제가 대륙침략에 본격적으로 나선 39년 12월 총독부는 조선일보에게 폐간하라는 방침을 통고해왔다. '자진폐간하느니 차라리 강제폐간을 당하겠다.' 결국 지령 6923호로 40년 8월 10일 강제폐간당했다." (2000. 3. 5자 조선일보 '할말은 하는 신문')
가만히 읽어보면 마치 항일운동의 결과로 폐간 된 것같은 뉘앙스를 풍기려 무진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일제에 의해....정간.....압수.....강제폐간...... 그런데, 아래의 글을 한번 읽어봅시다.
"조선일보는 신문통제의 국책과 총독부 당국의 통제방침에 순응하여 금일로써 폐간한다...... 지나사변(중일전쟁) 발발 이래 본보는 보도보국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고 더욱이 신동아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이게 바로 문제의 '조선일보 폐간사(1940. 8. 10)'입니다.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국책과 방침에 순응', '보도보국의 사명과 임무에 노력', '신동아 위업성취에 협력'.....한마디로 그동안 일제에 적극 협력하였으며 이번에도 국책과 방침에 협력하는 의미로 폐간에 순응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겠습니다.
그런데 총독부는 이렇게 고분고분 말 잘 듣던 조선일보를 무슨 이유로 폐간시켰을까요?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조선일보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버금갈 정도의 친일 논조를 폈지만 당시 총독부의 창씨개명, 조선어 말살 등 황국신민화 정책과 전시하의 물자절약 차원에서 1940년 8월 10일 강제 폐간당했다."(민족문제연구소)
그렇습니다. 당시는 전쟁 중이라서 모든 물자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일제는 종이 한 장, 잉크 한 방울이라도 아끼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80만원이라는 거액의 보상금을 주고 폐간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이 '조선일보 폐간'의 진실인 것입니다.
현재까지도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민족지'론의 근거로 일제하 4번의 정간과 폐간을 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 본 대로 정간은 방응모를 뿌리로 하는 지금의 조선일보가 당한 수난이 아니며 폐간 또한 일제에 적극 협력하는 의미의 폐간이었던 것입니다.
필요한 부분은 억지로라도 끌어다 극대화 시키고 조금 불리하다 싶은 부분은 철저하게 누락, 왜곡시키는 그들의 비상한 재능이 사실은 이런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 오면서 터득한 지혜인 셈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합니다.
지나간 과거를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뭐냐구요...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미래를 향하여 나아가자구요... 정말 청산되지 못한 과거가 미래를 여는 힘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조선일보의 청산되지 못한 과거는 현재에서도 계속 국민을 속이면서... 진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확실한 증거가 여기에 있지요.
2006년 3월 86주년 조선일보 창간 기념사에서 방상훈사장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제하 <조선>이 주도했던 신간회 정신을 되살려, 빈부·지역·세대를 뛰어 넘어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길을 열어달라" 라구요...
방상훈과 그 일당들... 어디에 걸거를 걸어야지..... 민족주의자셨던 월남 이상재 선생님께서 주관했던 신간회를 감히.. 지들에게 건다고 합니다. 국민을 늘 속이고... 국민은 늘 속아주고.... 국민을 그런 존재로 보는 조선일보가 과연 사회의 목탁이요.... 무관의 제왕인... 언론이라 말할 수 있는지요?
또 올해 3월 88주년을 맞았다고 주장하는 창간 기념일에는 뭐라고 썼는지 아십니까? 한번 보십시요.
제목이 이렇네요.
<건국 60년… 역사의 현장마다 조선일보가 있었다. >
역사의 현장마다 조선일보가 있긴 있었습니다. 삼선 개헌을 열렬히 찬양하고 유신독재을 <평화통일을 위한 신체제>라고까지 표현하면서 독재정권에 철저히 아부와 복종을 일삼었었지요.
또 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어떠했습니까? 전두환을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이라며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구테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을 구국의 영웅으로 찬양하는 부끄러운 작태을 보였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이런 사실을 다 잊어 먹었나 봅니다. 자신의 추한 과거 모습에 반성하고 엎드려 용서를 구하지는 못할망정.. 과거의 행태를 은폐와 왜곡으로 일삼은 조선일보.. 국민을 무시하는 그 작태에 이제 철퇴를 가할 때가 왔습니다.
다행히 신문대금에 결정권을 쥔 우리 여성들이 조선일보의 본질에 대하여 똑바로 알았습니다. 그들의 힘이 조선일보를 폐간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다시는 이명박 같이 국민을 물로 보는 이를 대통령으로 뽑는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위의 조선일보사의 과거사는 안티조선 사이트 물총닷컴의 추수님 글을 참고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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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랄한 조선일보사의 추악한 역사 현장
지리산 사랑 조회수 : 595
작성일 : 2008-06-17 00:13:21
IP : 125.128.xxx.222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나도안티
'08.6.17 12:26 AM (125.118.xxx.35)청산되지 못한 과거...누구는 잊고싶겠지요. 잊어주기를 엄청 바라겠지요.
현정부는 과거사 청산 관련 기관들을 아주 없애버릴 작정인가봅니다.
예산을 주지않고, 빈자리에는 사람을 임명하지 않는다는 기사를 본것이 생각나네요.
우리나라의 가장 큰 비극은 일제부터 지금까지 청산되지 못한 잘못된 과거가 너무 많다는거네요.
과거사 청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같은 과오를 범하지 않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2. 그놈이
'08.6.17 12:29 AM (125.178.xxx.15)우리를 물로라도 보면 다행인걸요....
3. ..
'08.6.17 12:33 AM (124.53.xxx.14)제대로 청산하지 못하니 자꾸 불거져나오고... 자꾸자꾸 들으면 심드렁해지고 아직도 타령이냐는 소리나오고... 슬픕니다.
제대로 청산하고 미래를 달려나가고 싶습니다. 기반이 흔들리면 아무리 높은산도 무너진다 생각합니다..4. 프랑스는
'08.6.17 12:46 AM (211.49.xxx.203)국민이 나치들을 끝까지 다 족쳐버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프랑스가 있습니다.
지금도 혹 나오는 끈질긴 나치가 있으면 또 족칩니다.
국민들은 죽어라 족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간단히 방망이 하나 들고 있다가 대가리 내밀면 사뿐히 쳐줍니다.
그럼 게임 끝~
오늘 우리의 상황이 만약 프랑스라면,,, 이정도의 촛불이 켜진다면....
사르코지, 쪽팔려서 바로 내려 옵니다.
왜? 명분이 없어서.
어디다 배후를 드리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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