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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수집병(?)

moon 조회수 : 1,384
작성일 : 2003-10-28 16:05:46
저희 친정아버지는 목각, 조각상 수집광이십니다.

일 때문에 해외 출장이 많으셨던 아버지의 트렁크에는
항상 두세 개의 조각상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비싸거나 아름다운 것들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배불뚝이 조각상, 소변보는 소년상, 그로테스크한 가면상....
하지만, 아버지는 그것들을 포장한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옷 사이사이에 끼여 넣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하게 가지고 오셨습니다.
화려하고 형형색색인 외제 쵸코렛과 젤리에 눈을 뜬 저에게 있어서
아버지의 그런 취미 생활은 정말 불필요하고 이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수집광적인 모습이 저한테도 있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릇, 주방소품, 문구류, 촛대........
그래도 아버지의 수집은 목적과 계획이 있는 것들이었고,
저의 수집은 무계획, 무목적, 아무생각없이 이루어진
병이었습니다.

다행이 경제적으로 엄청난 대형사고(그릇을 제외하고 ^ ^; )를
치르기 전에 증세를 자각해서 치료를 단행했습니다.
가장 먼저 치료에 들어간 것이 볼펜, 만년필 류....
글쓰는 사람도 아니고 왜 볼펜과 만년필을 보면 마음이
동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글쓰는 사람을 평소 너무
동경해서 그런가 봅니다. 초기에 발견해서 다행이지
중기나 말기에 이 증세를 발견했더라면 경제적으로 큰 일이
날 뻔했습니다.

두 번째가 촛대...
"예쁘다. 어~싸네." 이렇게 해서 사들인 촛대가 40개가 넘는다니
이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일단 자리를 너무 차지하고
특별히 쓸 일도 없는 것이라 단호히 치료에 들어갔습니다.
이 수집병은 재발할 가능성이 있어 다소 강한 처방전을
썼습니다. 40개가 넘는 촛대들을 거의 다 선물했습니다.

사진의 촛대는 특별한 추억이 있는 것하고 선물로 받은 것
들입니다. ( 선물로 다 주었는데 다시 선물이 들어오더군요. 쩝)

우리 신랑 말처럼 저의 수집병이 보석 류, 가방, 신발, 옷
등에 의한 감염이 아니었으니 망정이지.........
어째든 쓸데없는 수집병은 모두 치료해서 완치되었고,
책, 저널, 음악 등의 수집병은 더욱 악화되기를 바라고
있으며, 단 하나 그릇에 대한 수집병은 아직 치료중입니다. ^ ^;;

친정아버지는 지금도 외국에 나가시거나 주변에서 특이한
조각상이 있으면 사 오십니다.
그렇게 모아오신 조각상의 수가
어느덧 작은 갤러리를 열어도 될 만큼이 되었습니다.

" 이놈(조각상)은 말이지, 내가 로마에 갔을 때 사온 것인데
그 당시에 ~~~~ 또, 저놈은 발리에서 나랑 눈이 맞았지~~~~"

연신 조각상을 닦으시며 말씀하시는 아버지를 뵐 때
아버지 곁에서 노년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나누는 것이
이 조각상들뿐인가 싶어 마음 한구석이 싸해지다가도,
홍조까지 띄우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그것을 살 때의
에피소드를 말씀하시는 모습을 뵈면

'음....이렇게 추억을 수집하는 수집병은 조금 앓는 것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IP : 61.85.xxx.80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새벽달빛
    '03.10.28 4:43 PM (211.219.xxx.58)

    매니아가 있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도 모르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거 같아요
    moon님도 그렇고 engineer66님도 그렇고 참 멋지세요..
    덕분에 안목을 넓히고 있습니다. ^^

  • 2. 무소유
    '03.10.28 4:53 PM (211.251.xxx.129)

    저는 반대로 무엇이든 필요보다 많은걸 못견딥니다.
    일단 바닥에 살림살이는 3개이상 놓여있으면 안되구(치울일이 귀찮아서) 여분이라는걸 두질 못해요. 언젠가 무슨 글에서 보니 책도 책장 하나가 넘으면 남에게 주거나 기증하고 꼭 책장 하나분량만 가지고 있으란 얘기를 듣고는 증세가 더욱 심해졌습니다.
    전 취미생활도 무엇을 만들어서 결과물 내는건 절대 안합니다. 그냥 악기연주나 영화, 연극을 보거나 이런 수동적인 것만요.
    이런증세로 많이 맞았죠. 주는것도 못챙기는 바보취급도 당하고~
    근데 저 가운데 3개짜리 촛대는 저도 있습니다. 유럽연수중에 동료들이 하두 기념품이나 물건을 안사니까 급기야는 좀 이상하게 수근대서(뭐 나쁜말은 아니구요) 마지막 출발지 로마에서 떠나기 하루전날 하나 산거죠. 이런것도 다른것과 조화를 이루어야지 떨렁 하나만 있으면 진짜 안어울려요.
    이래서 있으면 자꾸 모으게 되고 없으면 계속 없게되고....
    제 증세도 뭔가 치료를 요하는듯.

  • 3. 치즈
    '03.10.28 4:58 PM (211.169.xxx.14)

    moon님^^
    근데 ""병""은 없네용^^....

    춥다.

  • 4. 톱밥
    '03.10.28 5:19 PM (203.241.xxx.142)

    콜록콜록..

  • 5. jasmine
    '03.10.28 6:45 PM (211.204.xxx.223)

    저두 , 쓰지도 않는 만년필, 필기구(몽블랑, 파카, 워터맨 보면 죽었습니다) 수집했는데요.
    책, 저널, 음악은 계속 수집하세요. 주변에서 본 바로는, 그것들이 님의 말년을 풍요롭게 할겁니다.

  • 6. 서영엄마
    '03.10.28 7:25 PM (61.104.xxx.230)

    저희 친정아버지는 담배 안피우셔도 여행지에서 꼭 재덜이 사오셨더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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