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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입으로 첫사랑을 말함
좋은 계절에 던진 화두가 너무 화려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지요.
님들 얘기 끝에 꼬리 하나 달려 했더니 별응대가 없어서 뒤늦게나마 점찍으려 합니다.
나의 첫사랑은 둘도 없는 내 친구의 미팅 파트너였습니다.
내가 살던 지방에 추석 성묘차 왔던 그가 청하여 나간 미팅이었는데
우리는 곁눈질로, 자신의 친구를 서로 시샘하고 있단 걸 알았습니다.
헤어지는 시간, 어찌 된 일인지 그의 친구는 어느새 사라지고
그와 난 그의 파트너, 곧 내 친구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둘만 남게 되었는데
나를 데려다 주겠단 거였습니다.
우리 집까지는 10분 남짓 걸어야 했는데
그와 함께 걷는 길이 내심 좋았던 나는
우리 집 앞까지 도착해서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우리 집을 지나치면 곧바로 내가 여학교를 오가던 꽃길 시작.
때는 바야흐로 중추가절,
휘영청 달빛 흐르는 꽃길엔 마침, 인적은 드물고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만 만발해 있었습니다.
별말 없이 우리는 온몸에 달빛을 받으며 그 길을 하염없이 걸었습니다.
기껏해야 한 50미터 정도였을 꽃길이었지만
걸음걸음마다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시간이었기에 아주 긴 순간들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일순,
그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하얀 꽃잎 하나를 따서는 내게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찢어질 듯 밝은 달빛에 그 꽃잎, 파르르 떨렸을 겁니다.
그 정지된 순간은 우리 둘의 기억 속에 젊은날의 이미지로 깊이 각인되어 버렸죠.
그는 아랫지방에서 낮에는 일하고 밤엔 야간대학을 다니는 가난한 고학생이었고
나는 보수적인 가정에서 자라는 여대생이었던 탓에
메일도 없고 손전화도 없던 시절, 우리의 만남은 연중행사 정도로만 만족했습니다. 3년 동안.
첫사랑이란 으레 그렇듯, 우리 또한 그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입대, 나의 상경.
서울생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나는 그의 간절한 손짓을 매정하게 외면했더랬습니다.
몇 번의 엇박자가 우리의 운명을 영원히 갈라놓았고.
뒤늦게 결혼하여 살아온 지 벌써 15년.
삶의 길목에서 아주 가끔 그의 기억은 내 가슴을 파고들어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전,
어찌어찌 해서 나의 주민번호를 알아낸 그는 컴퓨터 조회로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아냈습니다.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었기에 불경이란 이름으로 내가 그를 피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하여간 그렇게 만나 서너 시간 옛날 얘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두어 해가 흐른 뒤 느닷없이 전화해서는 안부를 전하곤 하기를 두어 번.
바로 며칠 전에는 귀가길이라면서 전화해온 그.
길가에 만발한 코스모스 때문에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어 전화하노라고,
다시 태어나면 너를 놓치지 않을 자신 있다며 훌쩍이는 그의 얘기를,
마침 남편이 출장중이어서 오랫동안 들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젠 불혹의 나이 탓이기도 하지만 이 정도 일로 죄의식에 빠지진 않습니다.
오히려 나에게로 보내오는 마음의 온기로 인해 여운이 오래 갈 뿐...
추억은 때로 삶에 윤활제가 되기도 하죠.
아직도 나를 기억해주는 옛사랑에 대한 감동은
앞으로 더 열심히 살고 남편에게 더 잘해주겠단 각오를 이끌어내기도 하니 말입니다.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편하고 나름대로 즐겁습니다.
설혹 첫사랑에 성공해서 결혼했다 한들 이보다 더 만족하며 살진 못했을 거란 자평도 해봅니다.
나, 불경스런 사람인가요?
1. 강금희
'03.9.22 11:40 PM (219.250.xxx.31)우씨, 음악을 올리는 특별한 비법이 필요한 사이트인가여?
긴 수다, 노래 들으며 읽으시라고 하렸더니.....
정석대로 했구만.2. 김혜경
'03.9.22 11:46 PM (218.237.xxx.55)금희님 html문서 제가 막아서 그래요. 제가 수정했구요...노래가 두개이길래 제가 하나는 지웠어요.
3. 강금희
'03.9.22 11:49 PM (219.250.xxx.31)html문서를 막는다는 게 뭔말인지?
노래가 안 오르길래 다른 것도 자꾸 올려 보는데, 어느 게 올라가는지 모르니까 마저 지워주세요.
이쁜 사람 노래만 올려주나요? 흑흑.4. 김혜경
'03.9.22 11:54 PM (218.237.xxx.55)아, 그게 아니구요, 음란물 집중공격을 받은 후 html은 안되고요, 사진은 업로드로 2장 올릴 수 있었요. 오늘 처럼 금희님 경로 지정해놓으시면 제가 발견즉시 html로 수정해서 노래 나오도록 해드립니다. 사진도 되구요. 아님 쪽지함에 유저 리스트에 제가 있을 때 쪽지로 html 열어달라고 하면 열어드려요...이쁜 사람만요? 금희님 얘기군요.호호...
5. 희망
'03.9.22 11:54 PM (211.221.xxx.41)그대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불경스럽다니요?? 이렇듯 자신을 잘 절제할줄 아는 이는 현명하고 행복한 사람이지요.
첫사랑....
전 돌이키고 싶지 않은, 인생에 있어서 지우고 싶은 점 이랍니다.
남편과 행복하시죠?6. 세연맘
'03.9.22 11:55 PM (211.215.xxx.108)코스모스꽃길과 이음악 분위기가 너무 잘 어울리네요. 불경스럽기는요? 천만예요. 추억을 추억으로 남겨두고 되새긴다는건 좋은것 같아요. 특히 첫사랑은 더더욱요. 아름다운 추억가지고 계시네요.
7. 푸우
'03.9.23 12:26 AM (218.51.xxx.47)맨입으로 잘들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커피 한잔 하면서,, 음악들으면서 이왕이면 경치 좋은 곳에서 ,,,
그렇게 듣고 싶네요..
전 우리 남편이 첫사랑이였어요.
아마 결혼을 안했다면 할 이야기 무지 많았을 것 같기도 한데,
같이 사니까 ,,, 무덤덤하네요...
첫사랑은 아니고, 아직도 한번씩 생각나는 남자는 3명 정도 있는데요,
한명은 전에 이야기 했던 것 같고,
나머지 2명 중 한명이 생각나네요.
친한 선배 언니 사촌 오빠였는데, 교포 였어요.
우리 친구들에겐 시애틀로 통했죠,,
그냥 선배언니랑 약속했는데, 같이 나왔더라구요.
그 다음날 관광가이드 좀 해달라고 해서 방학인데 잘되었다 싶어 ,,, 같이 며칠 다녔는데,
아주 적극적으로 나오더라구요,
사귀자는 둥, 결혼은 졸업하고 바로 하면 어떠냐는둥,,,
그때 제가 3학년인데,,,
그래도 선배언니 얼굴봐서 심한 소리는 못하고, 생각해낸것이 하루에 한통씩 편지를 100일간 보내면 사귀는 걸 생각해보겠다,,라고 했죠,
의대생이라 시간이 없다는 걸 이용해서,,
알았다며 약속을 꼭 지키라며 미국으로 갔어요.
근데, 정말 100일 동안 편지들이 쏟아지는데,,, 물론 매일 온건 아니었지만, 거의 이틀에 한통 수준으로 ,,
지금도 그 편지,, 스크랩해서 두었는데,,,
오늘밤 다시 읽어봐야겠네요,,
그런 사람도 있었네요,
그 사람,, 지금은 의사선생님이 되었어요.
그 사람이 편지에 쓴 글 중에서 "네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나에게는 장미보다도 아름다웠다" 라는 구절을 보고 우리 동생, 친구들 모두 토할려고 하고, 저두 닭살이라고 ,, 했었는데,8. 준서
'03.9.23 1:17 AM (218.37.xxx.65)금희님!아뇨.불경스럽지 않아요.내 친구 중엔 그리움 만든다고 하다 그냥 결혼한 친구도 있어요.
9. 신짱구
'03.9.23 9:41 AM (211.253.xxx.20)첫사랑과 음악이 이 가을과 너무 잘 어울리네요.
부럽습니다. 전 첫사랑이 없으니 추억도 없답니다.
그건 너무 슾픈것 같아요. 살다 힘들고 지칠때 한번씩
옛추억을 생각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쁜추억 고이고이 간직하세요.10. 호야맘
'03.9.23 10:00 AM (203.224.xxx.2)아침부터 한편의 아름다운 영화를 본듯한...
달빛아래 하얀꽃잎....
넘 아름답구요.
자기중심 잃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열심히 사시는 강금희님~~ 멋지십니다요...
저도 잊지 못할 첫사랑의 미대선배가 있었어요.
그와 주고받은 편지가 몇백통이 되고 서로 주고 받은 책과 시집이 몇십권이 되는데요.
전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다 모아두었어요.
연락을 하면 서로 연락할수 있지만... 그러진 않구요...
그래도 가끔은 제 마음안에서 그 첫사랑이 튀어나오기도 하죠..
전 그래도 그 첫사랑의 선배와 결혼하지 않고... 제 가슴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뭍어두고 살며..
지금 신랑과 시시콜콜한 것들에 싸우고... 화해하고... 낄낄거리며 사는게 더 좋네요~
추억을 가슴에 고이 고이 뭍어두고... 현실에선 아주 치열하게 살고...11. 나혜경
'03.9.23 3:02 PM (220.127.xxx.98)'손전화' 란 말이 가슴에 팍 꽂히는군요.
참 좋네요.12. 언젠가는
'03.9.23 11:37 PM (218.176.xxx.80)덕분에 야밤에 좋은 음악 잘 듣고 가슴 설레는 사랑 이야기도 잘 읽었습니다. 결혼한 지 10년, 30대 중반이 되었구만 찬 바람만 불면 가슴이 서늘하고 누가 유혹하면 넘어갈 것 같네요. 아,,,4월만 잔인한 것이 아니라 가을도 잔인한 계절이네요. 식욕은 하늘을 찌르고...
13. plumtea
'03.9.24 11:04 AM (218.237.xxx.94)걸음걸음마다 스타카토로 끊어지는 시간이었기에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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