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하고도 아홉 해를 살아오면서
나는 나 자신이 가장 잘 하는 일과
나 자신이 가장 하고 싶어하는 일을 모른다는 것에
안쓰럽기도 하고 바보스럽기도 합니다.
지난 월요일 지인의 공방에서 그동안 하고 싶었던 도예를 시작했습니다.
민제...욕심도 참 많지요.
흙덩어리를 주물러서 만드는 핀칭기법부터 배웠습니다.
흙의 두께를 고르게 하지 않으면 마르거나 구웠을 때
금이 간다하셔서 정성께나 들였지만 역시나 마음만 앞섭니다.
이럴 땐
오랜동안 하고 싶었던 흙 만지는 일이니까... 즐기면 됩니다....
그런 기술적인 문제들은 시간이 다 해결해주니까요
나무를 만지는 일과 흙을 만지는 일이 비슷한 점이 많은 거 같습니다.
욕심부리면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거
기다려야 한다는 거
정직하다는 거
도예선생님이 잠시 손님을 맞는 사이
제가 딴짓을 좀 했습니다.
만들고보니 저 아이 표정이 참 기분 좋게 합니다.
잘 구워져서
누군가의 기분도 그렇게 따듯하게 안아주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목공소에서 동료들이 만들고 있는 작품들을 정리해두는 곳입니다.
오른쪽 젤 윗칸에 얹힌 나무 다리 두 개가 제가 만들고 있는
스툴입니다.
이 곳을 알게 해주고
늘 이것저것 간섭(?)해주시는 노루귀님의 공방이 오픈 하는 날
한짝씩 나눠가질 계획인 놈입니다.
키가 큰 놈은 키가 작은 제가 가질 거구요
키가 작은 놈은 키가 큰 그녀에게 줄 겁니다.^^
그리고 작품들을 정리해 놓은 정리대가 맘에 들어서
스툴이 완성되고 나면 거실에 저놈을 만들어서 서재로 꾸밀까 생각중입니다.
책장치고는 너무 무거워보이지 않아 좋은 거 같습니다.
세월아 네월아 하고 만들고 있으니
선생님이 안달이십니다.
사진 찍고 돌아다니고 있으니
저렇게 쓱싹...스툴 위에 얹힐 틀을 잘라내고 계시더군요.
ㅎㅎ
성질 급한 선생님 덕을 좀 봤습니다
요거...
드셔본 분이 계시나 모르겠습니다.
콩나물전이거든요.
콩나물을 살짝 데쳐서 부침가루 넣고 후딱 하나 만들어서 사진 한방 찍고 ^^
어머니 방에 넣어드렸습니다.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도 좋고
단백한 맛이 괜찮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구는 새벽부터 가을비가 옵니다.
토닥토닥...
비 떨어지는 소리와 간간히 들려오는 사람들 이야기 소리가
사람사는 동네 같습니다.
지난 번에 하려던 말씀 올릴까 합니다.
유행성 결막염에 걸려 고생하던 제게 어머니가 안겨주신 도라지 10키로...에 대한 결과 말이에요.
사실 함께 살면서 이것저것 소소하게 섭섭한 일이 생겨도
밥 먹으며 이것저것 흘리고
불편한 한 팔로 앉았다 일어설 때면 휘청거리시는 어머니를 볼 때면
-그래..그나마 난 성한 몸을 가지고 젊음을 가지고 사니까
어머니보다 좀더 많이 가진 내가 참고 사는 게 옳은 거야..
나 자신을 토닥거리고 말았어요.
근데 어제 또 남편을 대동하고 시골을 다녀오신 어머니는 suv차 트렁크 가득 감을 따오신 거에요.
상자 주워와서 감을 다 정리해놓으라고 하시고는 가까이에서 혼자 사는 시누이에게 전활 걸어
감 따왔으니 시간 날 때 와서 가져가라 하십니다.ㅠㅠ
장시간 앉아서 다녀오신 탓에 다리에 쥐가 난다고 못주무시길래
스치로폼 상자에 뜨거운 물 부어 족욕을 해드리고 잠자리 봐드렸어요.
그리고 오늘이군요...
얼마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성당에 가신 어머니를 모시러 나갔어요.
마침 비도 오길래...
-비온다고 왔나?
-네 어머니.난 비오는 날이 좋던데...
-불편하잖아
-불편한 거 조금만 감수하면 더 좋은 것들이 많아요 어머니...
비오는 냄새 풍경...커피...
이렇게 어머니랑 데이트도 하고..
그렇게 집앞 공원으로 모시고 가 커피 한잔 사이에 놓고 딴 이야기들을 좀 나누다가 말을 꺼냈어요.
-어머니...어머닌 살다가 이혼하고 싶단 생각 한번도 안하셨어요?
-너거 시아부지 자주 삐져서 그렇지 그런 생각은 안해봐따
-맞다...아버님은 어머니 맘고생은 안시키신 분이잖아...근데요 어머니...
전 혜원이 아빠랑 몇번 헤어져야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스무살에 만나 처음 남자랑 손을 잡은 것도 키스를 한 것도
섹스를 한 것도 남편이 처음이라 제게 남편은 하늘같은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이 남들 하는 거 다하데요.
직장 때문에 일년동안 안강에서 분가해 살면서 첫애 낳을 때도
스물 일곱살 새댁이 새벽에 양수가 터졌는데 남편은 술마시느라 연락도 안되고...
그렇게 혼자 대구와서 애 낳았을 때도 그랬고
술집 여자랑 자고 온 거 들켰을 때도 그랬고
8천만원 주식해서 날렸을 때도 그랬고...
근데 어머니 왜 안헤어졌냐하면은요...
헤어져도 아플 꺼 같고
함께 살아도 아프다면...
함께이면서 아픈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내 아이들의 아버지니까.
살면서 맨날 맨날 그런 일들이 떠오르진 않지만 가끔씩 힘들게 하면 그런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요.
-그래..그런 일들이 있었드나...
-네 어머니가 모르는 일들이지요.제가 말을 안했으니까 당연한 거에요.
근데 어머니께도 저 한번씩 서운한 일이 생기면...옛날 일들도 한꺼번에 생각이 나서...좀 서러웠어요.
형님과 석달 차이로 배가 부를 때...
7개월인 제게 시외 사는 형님네까지 시골서 가져온 유정란 갖다주라고 하셨을 때
부른 배를 안고 좀 누웠으면 싶어도 종일 부지런히 일하는 어머니따라
멸치 똥까고...나물 다듬어서 말려놓으면
형님이 와서 달랑 가져가 버린 일...
김장을 담아도
된장을 담아도
고추장을 담을 때도..그랬어요.
며칠전 열흘동안 눈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걸 ...친정엄마가 아시고.. 반찬을 해서 보내온 날...
어머닌 도라지 10키로 사들고 오셨잖아요...
-아이고 야야...내는 몰랐다아..
-네 알아요 어머니...어머니가 저 힘들게 하려고...골탕 먹이려고 그런 게 아니라
단순한 분이라서 그냥 티비에서 도라지가 좋다고 한 게 생각이 났고
도라지가 보였기 때문에 사온 거라는 거 알아요.그래서 참고 넘어간 거에요 어머니.
근데 어머니...
나중에 어머니...운신할 수 없을만큼 세월이 흘렀을 때..
제가 아버님 병수발 즐겁게 한 거 처럼...
어머니께도 그렇게 할 수 있게 따듯한 기억을 제게 남겨주시며 안될까요.
아버님 돌아가셨지만 전 지금도 갈등의 순간마다 아버님 말씀이 기준이 돼요.
-그래 내가 헛살았다..털끝만치도 니 고생시킬라꼬 그런기 아이다 내 때문에 니가 얼마나 고생하는데...내가 많이 미안타 야야..
그렇게 비오는 공원 한켠에서 훌쩍거리다...돌아왔어요.
저는 13년동안 어머니와 살면서...한번도 이렇게까지 진지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어요.
왜 그랬을까요.
그냥 어렵고 무섭고...낯설던 시어머니가...
언젠가부터...
아..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부턴가 봐요.
그냥 같은 집안에 시집온...여자같아 보이기 시작했어요.
남편 잃은..
게다가 사고로 양팔도 잃은...여자.
여기 82쿡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너무 무섭고 날카로운 말보단
그냥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여자로
같은 아픔에 아파하며 보듬어주고 살펴주는..
그런 따듯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두 주먹 불끈 쥐고 이게 정의야~
하고 살아왔던 진리들이...
지금와서 되돌아보면...
내 발등에 칼을 꽂기도 했으니까요.
어머니를 바꾸려고 시작한 대화가 아니었답니다.
70평생 살아온 습이...
오늘부터 싹 바뀐다고 생각 안해요.
그저 ...
여태 가슴에만 담고 살아오던...
제 서른 아홉된 습을 바꾸려고 시작한 대화였습니다.
-아니요.
싫어요.
어머니 제가 그렇게 말씀 드리더라도...
그건 어머니를 부정하거나 싫어서 그러는 거 아니라는 거...
한번 더 생각해주세요.
-오야~ 니가 싫은데 내가 왜 시키겠노.
그렇게 전 오늘 제 인생에 획을 하나 그었습니다.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