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풀과의 며느리밑씻개
이 꽃의 특징은 줄기에 나 있는 억세고 날카로운 가시이다.
왜 하필 며느리밑씻개라는 이름이 붙었을까?
밑씻개라면, 오늘날의 화장지 정도에 해당하는데
하고 많은 이름 중에 그런 지저분한 이름을 얻게 되었을까.
전설에 의하면 얄궂은 시아버지 때문이랜다.
그런데 어느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만
온통 가시 투성이인 이 풀의 줄기를 걸어놓고 닦도록 했다는데
나로선 이해가 되지 않은 대목이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이쁘기만 하던데..
시아버지가 아니라 시어머니가 아니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고초당초 맵다한들 시집살이보다 더 할소냐..
시집살이가 얼마나 힘들고 지겨웠을지는 안 봐도 뻔한 비디오다.
그래서 그런지 이 풀은 사람이 지나가면 어떻게든 그를 따라 도망가려는 것처럼
밑으로 향한 가시를 이용해 옷에 잘 달라 붙는다.
행여 자기를 떼어놓고 가는 무정한 사람을 책망하듯 팔을 할퀴고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행여 자기를 떼어놓고 가는 무정한 사람을 책망하듯 팔을 할퀴고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색상이 좋으면 꽃술이 시원찮고
꽃술이 좋으면 색상이 시원찮고.
둘 다 좋으면 뒷 배경이 션찮다.
군락지에서 모델을 찾느라 많이도 할키었다.
스쳐지나가는 자국마다 쓰리고 따갑다.
시집살이가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시집살이가 오죽이나 힘들었으면
이런 이름을 지니게 됐을까 하는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는 야생초다.
세상에는 쓸모가 없는 것이 하나도 없듯 이 식물도 여러모로 쓰인다.
꿀벌들에겐 소중한 밀원이요,
삼각형의 잎은 생것으로 먹어도 되는데
약간 신맛이 나면서 달콤한 맛도 조금씩 우러난다.
우리의 꽃이름 중 "며느리"가 붙은 것에 슬픈 사연을 붙여 둔 것은
그 옛날 여인들의 한을 아련하게나마 알리고 싶어서일까?
그 옛날 여인들의 한을 아련하게나마 알리고 싶어서일까?
밥이 익었나 보려고 먼저 씹어보다가
맞아죽은 며느리밥풀꽃의 여인네도 슬프기는 매한가지다.
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며느리 눈칫밥을 먹는 요즘과 비교한다면
아주 딴 세상 일인 것 같다.
또닥거리다 보니 이쁜 며느리가 생각난다.
만나기만 하면 팔짱끼고 이곳
저곳 놀러다니고,
카트도 같이 밀고 다니며 시장도 본다.
서툰 솜씨로 내 입에 맞는 음식 해준다고 주방에서 땀을 흘리던 모습..
추석이 몇밤이나 남았나?
그때 또 팔짱끼고 놀러 다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