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단지
바람이었을까 ,
일시에 숲을 흔들어
모든 나무들이 몸을 굽히고
모든 잎들이 뒷면을 보이며
은회색 꽃다발인 양
한꺼번에 절을 했을 때 ,
단숨에 그 절을 받으며
화르륵 숲을 밟고
지나서 갔던 그것은
오직 바람뿐이었을까 ,
바람을 타고 함께
어떤 기운이 지나서 갔기에
숲은 그를 알아차리고
나무를 온몸으로 나부끼며
빠르게 통과하는 그를 반겼기에
그 무엇이 지날 때
심해에 빛이 들 듯
거대한 숲은 스스로 쪼개져
일순간 길을 내었다가
다시 곧 닫았던 것이 아닐까
거기에 있던 모든 존재가
맛보았던 예기치 못한 감동 ,
잊을 수 없고 해독 불가한 아픔 .
흔적 없는 그 무엇이 사라지며
남겨놓은 표현 못할 어떤 기억 ,
그것은 단지 바람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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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방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