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너편 아파트에 내 첫사랑 살고 있다
그의 아내가 유난히 예쁘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베란다에 세워 둔 유모차도 보았지만
내가 딴 데 시집가서 아이가 열 명이 되더라도
나를 기다리겠다고 한 약속 잊지 않고 있다
흐리거나 비오는 날이면
목소리 가다듬고 가끔 건너편 아파트를 쳐다본다
나 아직 아이가 둘뿐이라고 소리쳐 줄까
그러다가 멈칫 앞마당을 내려다본다
웬 여자가 아이 둘을 양손에 잡고
내 남편의 방 쪽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창문을 드르륵 닫는다
밤바람이 사뭇 상큼하다
사랑이 식은 재가 칸칸이 담긴 탓일까
건너편 아파트 불빛이 납골당처럼 교교하다
- 민음사, 문정희 시집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