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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원치와 운봉 황산전투

| 조회수 : 1,454 | 추천수 : 1
작성일 : 2018-11-22 18:12:32


백두대간 고남산( 46 m)에서 바라본 남원시.


멀리 왼쪽은 곡성읍,우측 교룡산성 뒤쪽 멀리가 순창군,보이는 시가지는 남원시.

왼쪽 멀리 봉우리는 만복대서 흘러내려온 지리산 서쪽의 마지막 지능선.

곡성읍과 마주하면서 사이에 섬진강이 흐르고.

이쪽 고남산 정상은 만복대~정령치서 내려온 백두대산길


남원이라는 지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핵심은 남원은 지리산에 의지한다는 것. 

또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에 의해 정확히 동서로 양분된다는 것.

남원시는 대간을 기준으로 서쪽(윗사진)은 평원지대를,동쪽(운봉,인월)은 분지를.

지리산은 천왕봉을 기점으로  30 여키로 서진하다 노고단을 기점으로 북진해요.

즉 노고단~성삼재~만복대~정령치~고리봉~여원치~고남산( 846 m)으로 진군하며 남원을 갈라버리죠.

그리고 갈라진 남원을 동서로 넘나드는 고개가 바로 여원치(477m).

여원치는 작게는 남원을 동서간으로,

크게는 경상,전라를 연결시켜주는 작지만 아주 큰 교통로가 된다는.

여기에 남원의 아이덴티티가.


여원치 마애불(고려말)


옛 88고속도로,지금은 광주~대구간 고속도로가 정확히 동서를 연결합니다.

이전 부터는 24번 국도가 그 역할을 했죠.

24번 국도는 순창~남원~운봉~인월~함양을 지나는데 남원과 운봉 사이에 여원치(여원재)가.

높지도 않아요,,,해발 477m.

여원치는 남원을 동서로 나누고,백두대간이 남북으로 이어지는 교차로 같은 곳.

예전 경상도 주민들이 전라도 쪽으로 갈 때는 반드시 넘어야하는.

그래서 정유재란 때 왜병들은 사천,삼천포에 상륙한 뒤 진주~산청~함양~인월~운봉을. 

그리고 여원치를 넘어 남원성을 포위했어요.

4.19 혁명의 기폭제가 된 마산항쟁의 주역 김주열.

 남원에서 태어난 그는 남원에서 여원치를 넘어 마산으로 갔습니다.



1. 여원치(女院峙)


그런 여원치니 만큼 숱한 삶에 역사가 어려있을 터.

그 상징이 바로 고려말 이성계 왜구 토벌.

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로 임명된 이성계는 개경을 떠나 남원을 지나 이곳 여원치에서 야영을.

꿈에 한 노파가 나타나요.

그리고 왜구 관련 정보를 알려줍니다.

이성계는 그 정보를 활용해 황산전투에서 대승을.

그런데 꿈 속 노파는 30여년 여원치에 오픈한 주막의 주모.

당시는 왜구 준동 시기로 경상남도 해안 일대를 노략질하다 밀리면 지리산으로.

어느날 주막에 들어온 잔존 왜구는 주모 오른쪽 가슴을 부여잡았고,,,

수치감에 주모는 부억 칼로 자신의 오른 가슴을 베었다는,,,,그리고 사망.

이성계는 황산대첩을 거두고 다시 여원치를 넘을 때 주모가 꿈속의 노파임을 알았어요.

그는 여원치에 사당을 짖고 사당 이름을 여원(女院)이라,,,그리고 매년 제사를 지내게 했습니다.

바위에 추모상도 새겼고(사진).

이후 주민들은 고개 이름도 여원치(女院峙)라 불렀다는.


 

오른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가리고 있는 그  이유를 아시겠죠?

마애불 우측으로 1901년에 운봉현감이 새긴 명문이 음각되어있고.

태조가 군사를 이끌고 남원을 떠나 운봉으로 향하던 중 여원치를 넘는데

노파가 태조의 꿈에 나타나 황산대첩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해줬고

태조는 감사 마음으로 불상을 만들었다는 그런 내용.


고남산(846)


산신제를 지내던 고남산 석축 흔적


이성계가 운봉의 왜구토벌을 나서며 산신제를 지내던 그 석축.  

지금은 그 위쪽에 산불감시초소 등이 들어서 있고. 

남원 일대는 당시 황산대첩과 관련 지명,전설이 많다는.


 

지리산 서북능선 바래봉서 바라본 운봉읍.


여원치~고남산 저 능선길이 백두대간 길.

600여키로 백두대간 길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지역이죠.

사진에서 보듯 운봉은 전형적인 분지(400미터)로 대간 길 바로 너머 왼쪽이 남원시.



 

반대 방향인 고남산에서 운봉읍 전경

뒤쪽 능선이 지리산 서북능선


이제 여원재를 넘어 24번 국도를 따라 운봉읍으로 떠납니다.

남원은 통일신라 때는 소경(小京)으로 남원경이,

고려 태조 때는 남원부가 되어 인근 5현을 관할,

조선시대 1413년에는 남원도호부로 승격되어 1부1군9현 지금의 광역시가 됩니다.

(황산대첩으로 특혜를 받은 것.)

그리고 담양·곡성·창평·구례·순창·임실·무주·진안·장수를 관할하는 명실상부한 일대 중심이 되고.

전라좌도에서 전주와 더불어 쌍벽. 

운봉도 운봉현이라는 독립적인 행정구역이 되고.

지금은 운봉을 아는 이가 거의 없지만 예전은 대단했다는 얘기.


남원시 운봉하면 3가지.

1.고려말 운봉(황산)전투 대승을 통해 조선왕조 탄생 계기.

2.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로 ' 우리 소리'의 본향 .

3. 전봉준,손화중과 더불어 농민군 3대장 김개남의  여원치 전투.


그런데 위 세가지 모두 운봉의 독특한 지리적 특성과 연관이 되네요.

먼저 운봉은 지리산 서북능선(바래봉)과 백두대간 길 사이의  분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십승지(十勝地)로 많은 아웃사이더들이 들어왔어요.

그리고 분지라는 생태환경으로 운봉은 자급자족이 필연적.

지리산에서 흘러온 물이 풍부했고 

지리산이 만들어준 충적 토양으로 비옥했으며

약초,나물에 땔감도 풍부해 비상시 지리산은 피난처가 되었다는.

그래서 "운봉에서 배고파서 죽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가.

남원 추어탕이 생겨났고 운봉 청국장,운봉 여름김치가 유명(요즘은 고랭지 채소에 화회가)

유기도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렸는데 철생산을 자급자족할 정도. 

이런 지리적 이점 때문에 고려말 진포에서 최무선의 화포로 대패한 왜구들은

뭍으로 도피하면서 지리산 변 운봉을 최후 농성지로 활용합니다.

그런데 이게 조선 개국 계기를 만들었으니 역사의 아리러니.




2.이성계 황산대첩(1380년)

황산대첩비에 대한 이미지 검색결과  

황산대첩비지(荒山大捷碑址)


고려말은 왜구가 창궐한 시기로 고려 말 왜구 3대대첩이 있어요.

최무선의 진포(군산)대첩,

이성계의 운봉(남원)대첩,

최영의 홍산(공주)대첩.

1380년 왜선 500여척이 진포(현 금강 하구 군산)에 진을 치고는 세곡선등 해안을 닥치는대로 약탈을.

최무선은 화약을 이용한 화포로 왜선을 침몰시키니 이게 바로 진포해전.

수천의 잔당들은 옥천,영동,상주,합천,함양 등 

뭍으로 거슬어 올라 충청,경상 내륙을 초토화시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지리산 변 남원 운봉에 모여들었죠.


 

왜 운봉일까??

당연 지리산 변 운봉이 주는 지리적 이점 때문.

농지가 비옥하고,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지리산을 배수진으로 활용 가능하기에.

고려 조정은 이성계(1335 ~1408)를 삼도순찰사(三道巡察使)에 임명.

그리고 운봉(황산)전투에서 대승을.

국궁 이성계는 왜장 아기발도 투구를 맞추고,

여진족 아우인 이지란은 그틈에 목을 꿰뚫었다는.

이를 계기로 고려말 왜구는 급속도로 쇠퇴.



황산에서 바라본 운봉읍


앞 길이 24번국도로 사진 우측이 여원치,,,,좌측이 인월,함양 방향입니다.

앞산이 지리산 서부능선의 지능선으로 왼쪽 끝봉우리가 바래봉.

왜구는 고려군이 여원치를 넘어 운봉분지로 들어서자 이곳 황산과 맞은편 능선에서 농성에 들어감.




  

24번 국도 변  피바위

  

 바위가 붉게 보이시나요?

사망한 왜구의 피로 강이 물들어서 .

포획한 말만 1600여 필,,, 용비어천가에도 나오는 얘기.

남원 추어탕의 유래도 황산전투에서.

전투 중 논두렁에서 미꾸라지와 피라미 잡아서 풀시래기 탕을 해먹으며 군량미를 보충 했다는. 

인근 인월의 인월 장도 당시 군수물자 조달 에서 유래.


조선 중기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에는 당시를 이리.
/운봉(雲峯) 팔량티(八良峙)에 피바위[血巖]가 있는데,
이것은 태조가 왜장 발도(拔都)를 쳐 죽인 곳으로 돌 위에 얼룩진 피가 지금까지 생생하다 /   

그리고 이성계는 진안, 전주를 거쳐 개경으로 귀경하하는 데

지나는 곳마다 관련 전설이 많이 전해지고 있고.

전주 한옥마을 인근에 오목대,이목대가.

오목대는 태조 이성계가 남원에서 황산(운봉)대첩을 거두고 귀경하던 중,  일가친지를 불러 잔치를 벌인 곳.
이목대는 태조의 고조부 목조 이안사가 전주를 떠나기 전까지 거주한 곳.      

이때 목은(牧隱) 이색(李穡)은 이리 찬사를.  

/적을 소탕한 참장수여! 썩은 나무 부러뜨리듯 삼한의 기쁜 소식 공에게 있네 .../    

이성계는 운봉전투 대승으로 최영을 제치고 명실상부한 최고 실력자가 .



어휘각


1년 후 이성계는 운봉을 들러요(?)

그리고 자신과 휘하 지휘관의 이름을 세기죠.

그러나 일제 강점기 때 총독부는 비밀명령을 통해 정으로 글자를 파해쳐버립니다.

정으로 찍어낸 흔적들 보이시죠?



 

그리고 다시 200년이 .


 선조 때 황산대첩을 기념하는 승전비인 황산대첩비 를 세우죠.

 처음 비석을 세울 당시에는 비각과 별장청 등의 건물로 비석을 보호했으나,

이 또한 일제강점기 때 기념석을 파괴하고 땅에 뭍어버리고.

현재 파비각이라는 전각 안에 깨어진 비석들이 보존되어 있고 .

지금의 비는 탑본을 바탕으로 다시 제작한 것.



부숴지고 정으로 글자를 뭉게버렸네요.



3.동학농민군 여원치 전투(1894년)


그리고 또 300년이 흐릅니다.

1894년 11월 겨울 김개남이 이끄는 1만여 농민군은 운봉으로 진출해요.

그때까지 운봉은 농민군이 요구한 집강소(농민군 자치행정기구) 설치등을 거부하고 있었고.

그리고 운봉에는 이미 농민군에 넘어간 구례,순창,임실 출신 지주들이 도피해 있었던 상황.

또 함양,산청 경상도 쪽 지주,토호들의 지원하에 관군과 함께 방어막을 여원치에서 치고 있었네요.

이때 총대장이  운봉의   지주  박봉양.

농민군은 결국 백두대간이라는 지리적인 현실을 극복못하고 대패합 니다.

당시 농민군은 전라,충청,황해도는 석권했으나 경상,강원,함경도는 미비.

 이는 결국 백두대간을 넘을 수있는 전력이 부족했다는 의미겠죠 .

1894년 11월 공주 우금치전투(牛金峙戰鬪)와 더불어 여원치전투 패배는 갑오농민전쟁 실패의 서막.

박봉양이 농민군에 맞서 민보군을 조직한 것은

당시 지주 중심 토호 들의 '죽기 아니면 살기 식' 저항이 컸다는 의미.

(요즘 한국적 상황 보면 이해가 쉬울듯)

소설 '토지'의 동학군 지도자 김개주가 실제 동학군 지도자 김개남!

당시는 실제로 윤씨 부인이 머물던 연곡사까지 동학군이 들어왔고.

 김개주 겁탈로 김환을 태어나게 한 근거도 이런 역사적 사실에 기인합니다 .

윤씨부인이 몸을 푼 곳은 천은사,,,둘 다 지리산에 있는 사찰로 남원과는 지척 .

박경리는 김개남 농민군의 영향력이 지리산 서남쪽 하동까지 미쳤다는 사실에 의거 했다는.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이 변사또 생일 잔치에 지은 유명한 풍자 시 아시죠?

金樽美酒千人血

玉盤佳肴萬姓膏

燭淚落時民淚落

歌聲高處怨聖高  

농민군들은 이를 군가로 불렀다네요.

이는 사병들이 군가를 부르게 된 첫 사례 .



박봉양 비


여원재 아래쪽에는 박봉양을 칭송하는 '박봉양비'가 있어요.

일명 '갑오토비사적비' ,,,조선 왕조가 내린 것. 

 귀퉁이가 깨지고 암각된 비문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는데

후대에 주민들이 땅 속에 쳐넣어 버린 것.

도로공사 중 땅 속에서 발견되어 박씨 후손들이 기단부에 '박봉양 장군비'라고 새긴 후 다시 세웠고. 

박봉양은 외눈박이로 별호가 '일목(一目)' 

박봉양은 운봉의 대지주로 중앙의 권세가인 민영준에게 15만냥을 바치고 과거에 합격했다나....(?)

민영준?

 민씨 일파의 우두머리로 청나라 원세개에게  농민군을 진압해달라고 간청한 자.

훗날 민영휘라 개명하고 친일파로 변신하여 작위를 받았습니다.  




4,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 운봉 비전마을

(황산대첩비 앞에 마을이 있어서 비전(碑前) 마을)


송흥록 생가

송흥록 명창,,, 고수는 동생 송광록


물산 이 풍부해야 문화도 융성하죠.

당시 판소리는 조선 후기 문화의 트랜드.

한 시대의 문화 트랜드가 바로 이곳 지리산 골자기 운봉에서 싹이 텄다는 .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는 명창 송흥록(宋興祿,1801~1863)의 생가터가 있어요.

이곳에서 송흥록,광록 형제에 의해 동편제가 창시되었으니 운봉은 판소리의 탯자리 .

송흥록은 가왕 칭호를 받은 판소리 중시조( 中始祖) .

광록은 원래 형 흥록의 고수였는데 받는 돈이 형의 절반에 불과해 ' 솔로로 데뷔하겠다!' 며 뛰쳐나갔다네요.

결국 제주에서 득음 과정을 거쳐 명창이 되었습니 다.

아들 우룡(雨龍), 손자 만갑(萬甲)도 소리꾼으로

송만갑(1866~1939)은 판소리 계 카루소같은 존재.

박초월도 송만갑으로 부터 배웠습니다.

동편제 판소리는 종가의 내림으로 이어져 일제강점기엔

전설적인 여류명창 이화중선(1898 ∼1943)을 그리고  박초월( 1913∼1983)로 이어졌고 . 

(명창 조통달은 박초월의 조카 ,조관우는 조통달 아들)


당대 운봉은 소리꾼의 천국으로 

레슨 받으러 또는 마스터 클래스 참가를 위해 전국에서 창꾼들이 모여들었어요.  

독공(獨功) 아시죠?

리꾼들이 득음을 위해서 토굴이나 폭포 앞에서 피토하는 발성 연습. 

정령치 아래 구룡계곡의 구룡폭포가 이들의 독공을 하던 곳.

황산,황산대첩비,송흥록 생가,박초월 유택은 모두 지리산 둘레길 제2구간에 있 습니다.



판소리계 카루소 송만갑의 춘향가 중 '이별가'

1934년 녹음  

http://youtu.be/pBWbhDGEf4Q

힘차고 웅혼한 동편제 소리의 진수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5.흥부가 탄생지....그리고 변강쇠전 배경은 인근 함양군 마천 벽송사


/연재를 넘어 비전마을을 지나 팔랑재 밑에 당도 흥부집을 빙빙돌더니 저 제비 거동보소…/
판소리 흥부전의 일부입니다.
비전마을 ,팔랑재(인월~ 함양 고갯길)가 나오네요.
흥부가에 나오는 팔랑재 (인월~함양 고갯길) 는 남원시 동면 성산리.
이곳을 경계로 전라도 운봉과 경상도 함양에 많은 땅을 가진 박첨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느해 민란이 일어나 죽임을 당했다는 ' 박첨지 설화' 가 전해지고 있다는. 
이게 흥부전 모태라는 얘기죠. 


*이어서 피날레는 구산선문의 종가 실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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