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아침 눈을 뜨고 보니 아직도 밖은 조금 어둑어둑한 느낌입니다.
아래로 내려가보니 아직 6시 반이라고요. 호텔 프런트를 지키고 있던 직원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일행이 가고 싶다고 마음먹고 있는 장소와 과연 문을 여는 날이겠는가 물어보니 미술관은 거의 확실히
문을 닫을 것이고 성당은 문을 열어 두니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요.
그렇다면 지도에 표시를 해달라, 그리고 지하철 노선도 표시해주면 더 좋다고 하니 친절하게 표시를 해줍니다.
인사하고 돌아서다 보니 호텔 (밀라노에서만 2박 중급 호텔에 묵었거든요 ) 로비에 예술계 소식을 알리는
소책자가 있습니다.아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모란디 특별전, 이슬람 문화에 관한 것, 이집트에 관한 전시, 마티스, 티치아노, 카라바죠, 마음은 가득하지만
시간은 밀라노에서 겨우 이틀, 그러니 가지치기를 해야 하는 것이고, 거리와 동선 ,그리고 입장료에 따라서
조절을 해야할 상황인데 더 안타까운 것은 크리스마스에는 미술관이 휴관이란 점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조사해간 자료에는 브레라 미술관은 휴관이란 표시가 없어서 그렇다면 25일에는 브레라를
26일에는 암브로시아를 이렇게 나누어서 보면 되겠다고 미리 계획표까지 세웠지만 인생은 늘 계획표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식당문이 열리길 기다렸다가 아무도 없는 식당에서 넷이서 마치 며칠 굶은 사람들처럼 든든히 차려 먹고
두오모에 갔지요. 크리스마스라서 옥상에 올라갈 수 없다네요.아하 이런 ,그렇다면 그 경치는 포기하고
성당 외부부터 자세히 보기로 했습니다.


큰 청동문 한 조각 한 조각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는지요!! 신앙이 일상속에 녹아 들어있었을 중세
그럼에도 글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았을 사람들에겐 바로 그 문의 조각들이 성경책 역할을 했었겠지요?

한참 사진을 찍다보니 만일 오늘 밤 도착하는 outreach님 부부를 만났을 때 충전기를 못 받으면 더 이상
찍지도 못하는데 싶다가 어차피 하루 이틀 차이인데 마음 동하는 대로 하는 것이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에라 모르겠다 마음이 끌리는대로 찍었답니다.


전공 공부를 위해서는 성서와 그리스 신화를 읽는 것이 필수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학시절 한동안 친구들따라서
교회에 다니기도 한 경력덕분에 그 시절에도 일단 무엇을 시작하면 불이 붙는 성격이어서 구약,신약 그 중에서도
신약 성서를 참 열심히 읽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덕분일까요? 유럽에 갔을 때 꼭 들러보게 되는 성당에서
벽면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혹은 벽화, 성화의 장면들이 상당히 친숙한 장면들이 많아서 도움이 많이 되더군요.
신앙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는 사람들과 같은 심정은 아니겠지만 몰라서 멀뚱 멀뚱하게 바라보다 의미를 모르면서
답답한 것은 피할 수 있다고 할까요?

성당문을 열기 전 군복을 입은 군인인지 경찰인지가 짐 검사를 시작했네요. 그런데 함께 있던 친구들과 생각한
의문,왜 우리 군복이랑 비슷한 걸까? 그러고 보니 군복의 무늬를 차용한 웬디 워홀의 작품도 있었는데 그렇다면
하고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되더군요.아직 정확한 답은 모르지만 자주 지나다니면서 그 무늬를 보게 되니
생각이 남아 있게 되네요.


이탈리아는 고딕 양식을 별로 받아들이지 앟은 나라였다고 합니다,.그러니 고딕양식의 밀라노의 이 두오모는
이탈리아에서는 특이한 성당에 속하는 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외부는 정말 놀랍도록 다양한 형상들이
조각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프랑스에서 본 고딕 양식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가
가득한 성당에 비하면 조금은 어두운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밤에 들어왔을 때 성당안에 그림이 가득해서 무슨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나, 그런데 본 적이 없는 화가의
작품인데 누구의 특별전이지 하고 궁금해했던 것의 정체가 아침에 들어와보니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1610년부터 두오모를 개축하는 일에 크게 앞장 섰던 추기경을 기리는 소식판이 여기 저기 다양한 그림과
더불어 세워져 있었습니다.

그 뒤에 작은 글씨로 써있는 uscita 이 말이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단어이지요. 파리에서 만난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글씨가 sortie였듯이 출구 입구가 역시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표시판 역할을 톡톡히
하더라고요.

고딕식이라고 해도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진 양식일리 없으니 두오모 안에서 볼 수 있는 그리스, 로마의
흔적이 여기 저기 눈에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처음으로 생겨난 것들은 얼마나 오래 축적된
'
사람들의 고뇌와 시행착오의 결과가 되는 것일까요?

성당안에서는 빛이 가득합니다 .촛불을 봉헌하고 그 앞에서 깊은 마음을 담아 기도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다른 때에는 촛불을 켜고 저도 기도했지만 이미 원서를 넣고 나서 기도하는 것이 역시 뻔뻔한 기분이 들어서
그냥 마음속으로 기원을 했습니다. 아 이래서 나는 신앙을 갖지 못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성당안을 둘러보는 중에 미시가 시작됩니다. 관광객은 그냥 구경하고 둘러쳐진 좌석 안에서 미사는 진행됩니다.
어제 밤을 가득 메웠던 신도들은 이미 자리에 없고 거의 가뭄에 콩나는 수준의 신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네요. 성탄 이브의 미사가 더 중요한 것일까요?


조용히 나오려고 하는데 관광객으로 보이는 두 모자가 눈길을 끕니다. 어머니는 앞의 미사 장면을 열심히 들여다
보고 있는데 지루한지 아들은 고개 숙이고 있네요. 어린 시절의 아이들이 생각나서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아마 저 어머니도 한 번 경험을 호되게 하고 나면 어른들 생각에 아무리 좋아도 그것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휴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것, 그러니 안배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까요?


밖으로 나와서도 바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덜 본 장면들이 많아서요.
그래도 조금 더 조금 더 하다가는 한이 없을 것 같아서 과감하게 다음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