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하루 종일 루브르에 있을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니 배가 슬슬 아파옵니다.아마 며칠간 주로 빵을 위주로 한 식사에 위가 일으킨 반란인
모양인데요,참고 나가기엔 아무래도 위험하다 싶어서 한 시간을 끙끙거리고 나니 몸속은 해결이 되었지만
땀이 나면서 몸이 이상하네요.잠깐 누워있는다는 것이 일어나니 벌써 열한시,어찌 하나 고민하다가
일단 집을 나섰습니다.
루브르에 들어가기 전에 스타 벅스가 보이네요.커피 한 잔 하러 들어가니 빈 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동양인인데 한국인인가,일본인인가 잘 모르겠는 여성이 혼자 앉아 있는 자리에 합석을 부탁했더니 좋다고 하네요.
커피를 마시면서 보니 그녀가 편지봉투에 글씨를 쓰던 중인데 서울시라는 글씨를 그리고 있더군요.
순간 한국인은 아닌 모양이다 싶어서 물어보았더니 일본인이라고 하더군요.
글씨 대신 써줄까 물었더니 고맙다고 하면서 편지봉투를 내미더군요.
글씨를 쓰고 나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본인이 보사노바 가수라고 소개를 하길래 보사노바 가수란 무슨 노래를 부르나 순간 잘 알지 못해서
그러냐고 사실은 잘 모르겠는데 한국에서도 활동하는가 물었습니다.
한국과 대만에서도 일년에 한 차례는 공연을 한다고 하면서 갑자기 송영훈을 아느냐고 묻네요.
첼리스트 송영훈이요?
그렇다고요,그와 함께 공연한 적도 있다고 해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그러고보니 어울림누리에서 아침에 하는 콘서트에 그가 라틴 음악으로 참여한 것이 기억나더군요.
그의 연주가 첼리스트로서 베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아도 ,(사실 연주자로서는 그보다 연주를 잘 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요) 말을 잘하는 덕분에 그가 방송을 맡았을 때는 자주 들은 적이 있노라고 대답을 했지요.
그러자 그녀가 이루마는 아는가라고 몰어보네요.물론 그의 연주도 가끔은 듣고 있다고 하면서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영어와 일본어를 섞어가면서 한 시간 정도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모자랄 것 같아서 일어서면서
혹시 한국에 공연하러 오면 알려달라고 서로 이메일 주소를 교환하고 헤어졌는데 그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녀에 대해서는 (EBS SPACE 공감에서 공연했다는 말에 조금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잊고 있었는데요 나중에 남부 프랑스에서 만났을 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캐롤님은
그녀의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노래가 마음에 들어 음반을 두 장 사서 한동안 들었다고 하면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애석해하더군요.(아,그러고 보니 이런 사연을 담아서 이메일을 써야겠네요)
이번 여행에서 드라마속에서가 아니라 일반인을 그것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다양한 이야기를 한
경험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그래서일까요?
돌아와서 일본어 공부하는 일에 조금 더 탄력이 붙는 느낌이네요.금요일 나들이에서 드디어 전자사전을 구해서
오늘 번역준비를 하면서 뜨내기 공부가 아니라 전면적으로 해보는 공부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한 시에서 여섯시 제게 주어진 시간은 다섯시간,무엇을 볼까 고민하다가 리슐리외관 전부와 나머지는
회화를 중심으로 보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이 작품 저 작품 기웃거리다간 시간만 낭비할 것 같아서요.
메소포타미아 지방에서 생겼다 사라졌던 다양한 국가가 남긴 유물들을 우선 본 다음
프랑스 역사 초기의 이야기를 알 수 있는 그림,조각,문양등을 보고 나서 바로 그림을 보게 되었지요.
역사 책속에서 만났던 인물들을 수없이 만나면서 앞으로는 역사책의 글이 조금은 활기를 보여줄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들었습니다.
모나리자도,니케도,다 물리치고 회화에 집중한 결과 새롭게 느낀 사실은 그 동안 루브르에는 볼만한 회화가
별로 없어라고 생각한 것이 얼마나 웃기는 착각이었는가였지요.
피나코텍에서 시작한 네덜란드 그림만나기가 르부르에서 절정에 달해 새롭게 눈뜬 작가들이 여럿 속출했고
특별히 샤르댕의 그림에 마음이 활짝 반응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들라크로와와 앵그르의 몇 작품,코로의 몇 작품,이렇게 손으로 꼽자면 한이 없지만
그래도 이 방 저 방 돌아다니면서 그림을 보다가 시대를 달리하는 그림들,지역을 달리하는 그림들속에서
예술사의 줄기를 파악해가는 기분이 들기도 한 날이었습니다.

로코코 시대 화가라고 하지만 그의 그림에서는 다른 로코코 화가와는 다른 맛이 물씬 풍기지요.
그래서 우리가 시대를 구분해서 그 안에서 화가를 이해하려는 것이 무리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화가가 바로 샤르댕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번에 루브르에서 느낀 것중의 하나는 미술사에서 소개하는 화가들만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눈으로
보고 감동을 받거나 반감을 느끼거나 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만나는 경험이 소중하다는 것이고
그것이 늘 고정된 것은 아니란 것이었습니다.제겐 루브르가 세 번째 가는 곳이지만 이번에 가장 그 곳과
내밀하게 만난 기분이 들었고 과감하게 포기하고,과감하게 선택해서 본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느낌이기도
했습니다.다음에 한 번 더 기회가 온다면 이번에 못 본 곳,그 중에서도 이전에 눈길을 주지 못했거나 보았어도
무엇을 보았는지 잘 모르는 곳에 가보고 싶어지네요.


캔버스속의 그녀가 너무 강렬한 느낌이라 화가 이름은 몰라도 그녀를 한 번 본 사람은 잊기 어렵겠다고
제 나름으로 생각하는 인물인데요,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바로 코로입니다.'
미술사적 평가와는 별도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가라서 그의 그림을 만나면 즐거운 마음으로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그런 화가중의 한 명이기도 합니다.


코로의 그림을 검색하다가 눈이 번쩍 떠지는 그림 한 점을 발견했습니다,코로가 여행을 자주 다니면서
자신이 간 곳을 그린 그림이 여러 점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아비뇽을 그린 작품이 있네요.
아비뇽을 이번에 직접 가보았다고 그 그림에 눈길이 가는 것이 신기합니다.


이것은 유혹을 부르는 장소 플로렌스로군요.보볼리 정원이란 제목이 붙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다시 르네상스에 관한 책을 읽는 중이라 자주 보게 되는 성당도 눈에 들어오고요.

곰브리치인지 반 룬인지 두 사람중의 한 사람의 글에서 본 이 그림을 바로 루브르에서 보았습니다.
다시 만나니 공연히 반가워서 자꾸 바라보게 되는군요.

다섯시간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어도 27일의 루브르는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것 같은 좋은 시간,알찬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