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만나더라도
우리 다시 만나더라도
그 계절 가로수 아래 개벽하듯이,
아니면 긴가민가 스쳐 지날지라도
우연이 아니라고 고집하지는 맙시다
과분한 우연을 먼 바다처럼 서서
말없이 우선 허리를 꺾읍시다
안녕하세요
묻지는 맙시다
그렇게 묻는다면 내가 슬플 것입니다
천천히 걸어서
동네 어린이 놀이터 낮은 그네에 앉읍시다
공연히 흔들리고 조용히 흔들립시다
헤어질 때 악수는 하지 맙시다
이따금 지나가는 소슬바람결
그 바람에 물결치는
뱃고동 소리를 들읍시다
발 밑에
‘뚝’ 하고 나뭇잎이 떨어질 때
하필, 오늘, 바로 지금
떨어지는 잎새를
온 마음 기울여
잎새 하나 주웁시다
노을이 곱군요
곧 밤이 찾아오겠지요
밤은 또 얼마나 그윽하고 멀까요
늦은 봄 푸른 밤
아름다운 그 꿈을 가슴 깊이 품읍시다
-----------이향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