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새롭게 읽기 시작한 책이 the ways of seeing인데요
그 책은 사실 BBC방송에서 먼저 방영되고 나서 요청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후속작업인지 모르지만
책으로 나온 것이라고 하는군요.
자전거님이 goggle.com으로 들어가서 비디오를 클릭하고 저자 이름을 적으면
방송이 뜬다고 하길래 오늘 아침 들어가보니 그 방송이외에도 아는 이름을 적어넣어보자
파워 오브 아트도 그 저자가 한 역사강의도 다 올라와 있네요.
아니 이럴수가 즐거운 마음에 아침에 집을 나서기 전에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정작 제대로 보아야 할
ways of seeing는 다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얼마나 즐겁던지요.

오늘 진도나갈 분량을 미리 혼자서 읽었지만 여럿이서 내용을 자세히 이야기하면서 보는 맛에 비하면
도대체 무엇을 읽었나 의아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룹스터디를 계속 하겠지요? 그 맛에
가장 먼저 이야기된 것이 우리가 언어로 먼저 생각하는가 이미지로 먼저 생각을 하게 되는가에 대한
것인데요,이 책의 저자는 말보다 보는 것이 먼저란 입장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대상을 보는 것이 과연 객관적으로 보는 것일까,객관적인 진리나 객관적인 대상이 있는가
이런 질문은 요즘 철학에서 만나고 있는 주제와 비슷해서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야기를 펼치면서 보여준 두 그림중의 하나가 바로 프란스 할스가 그린 집단 초상화인데요
한 점은 찾을 수가 없네요.아직
당시 80대였던 할스가 너무나 가난한 상태로 지내던 중 연료가 없어서 얼어죽을 수도 있던 상태에서
자선단체로부터 토탄을 조금 받아서 동사를 면한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자선단체로부터 집단초상화를 그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그린 그림중의 하나가 바로
위에서 소개한 그림인데요,이 그림에 대해서 전후사정을 모르고 처음 보았을 때부터
제겐 늙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 그림중의 한 점이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이 그림에 대한 다양한 해석중에서 그가 선택한 한 저자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데요
우리가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라서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집에 들어와서 할스의 그림을 찾아보게 됩니다.

빈민에 해당하는 삶을 살던 화가앞에 앉은 초상화를 위촉한 사람들,그들에 대해서 갖고 있는 화가의 마음이
그림속에 드러나서 쓰라린 감정으로 그린 그림이 아닌가,그래서 마치 어떤 인물은 술취한 사람처럼 그려진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만약 술취한 모습으로 이 그림을 그렸더라면 위촉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오히려 당대의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마치 그들이 지금 우리곁에 살아있는 사람인것처럼 느끼게
특징을 잡아서 잘 표현한 작품이 아니겠는가하고 지적을 하고 있더군요.
우리는 이미 지난 시대의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사실은 상상을 할 뿐이지 제대로 안다고는 할 수 없겠지요?
그래도 화가의 눈을 통해서 보여지는 인물들에 대해서 우리가 갖게 되는 인상은 어떤 경우
지금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어렴풋이 아는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그림의 경우에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보는 것,보여지는 것,안다고 생각하는 것,실제로 아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 안다고 생각했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어 그 때의 내가
지금의 나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가 의심이 나는 순간의 기억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시간,

할스의 그림으로 after를 하면서 이런 생각을 조금 더 발전시켜가면서 살아야겠구나
어느 순간 받아들인 생각을 화석화시켜서 그것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가치를 배척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어디까지 나는 말랑말랑한 정신으로 살아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수요일 오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