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토(아이들이 노는 토요일을 이렇게 표현하더군요)오전은
제게 즐거우면서 동시에 괴로움을 안겨주는 시간입니다.
가끔 그래서 도망가고 싶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 날인데요
일단 레슨을 마치고 나면 그래도 좋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아마 도망가고 싶은 마음보다 이제는 조금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진 시기가 되었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아침이었습니다.
메트로늄을 받고 그대로 연습해야 하는 것에 저항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역시 그 사이에 저도 모르게 박자감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것을 보니 일정정도 능력이 생길 때까지는
외부에서의 규제가 필요한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어린 선생의 연습곡 let it be가 이주일만에 상당히 완성이
되었더군요.
그래서 마지막으로 연주를 듣고 수업이 끝났습니다.
언제 나는 이런 곡을 자유롭게 칠 수 있을까 한숨이 나오기도 하지만
세월이 필요한 것이라고 마음을 먹고 나니 조금은 힘이 나네요.

어제 호암아트홀에 바로크 시대 작곡가의 연주를 들으러갔습니다.
솔로 바이올린연주였는데요 이상하게 음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기분이 드네요.그래서 everymonth에 올라온 비버의
파사칼리아를 틀어놓고 고른 화가가 르동입니다.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이 그림에 손이 간 것은 제목때문입니다.
오르페우스의 머리라니,
마침 철학강의에서 피타고라스 학파에 관한 것을 듣고 있는
중인데 피타고라스학파가 오르페우스교에 영향을 받아서
다른 학파와는 달리 종교와 철학을 겸하는 종파(학파개념보다는)가
되었다는 설명이 있더군요.
오르페우스교는 영혼과 육체의 이분법을 처음 내세운
종파라는 설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서 설명하면서 육체는
어째 영혼에 비해서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서양에 뿌리깊은 생각의 기저가 된 점은
그 이후의 역사에서 상당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그런데 실제 생활에서 몸이 얼마나 우리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인가를 깨닫고 나면
그런 사고가 과연 합당한 것인가 의문시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느낍니다.

삶의 마지막까지 제대로 보듬고 가야 할 존재인 육체
그것에 대해 소홀히 하면서 살아온 후유증을 느끼는 요즘
소중한 것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매기면서 살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게 되는 중이라 이런 이분법에 대해 더 저항을
느끼는 것일까요?


르동,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화가였는데 모마에서 찾은
그의 그림은 거의 낯선 작품들뿐이네요.
놀랍고 반가워서 찬찬히 들여다보는 중입니다.


그림속으로 바이올린의 솔로 선율이 녹아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 토요일 낮시간,조금 느리게,이런 선율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