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반 룬의 책을 읽다가
렘브란트,미켈란젤로와 같은 반열에 고야를 넣는 것을
읽으면서 의아한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말할 수 있는 화가인가라고요.
그런데 요즘 자꾸 여기 저기에서 고야와 만나다보니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왜 그는 고야를 그렇게까지 평가했을까 하고요.
그러다가 우리가 아는 고야는 사실은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초상화까지 정도이고
그 너머 그가 귀가 들리지 않고
나라안에서는 프랑스의 왕조가 그들의 왕권을 넘겨받고
프랑스에 휘둘리던 시절,전쟁의 광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기를 살았던 그가 남긴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어려운 그림에 대해서는
사실은 눈을 감고 피하는 바람에
제대로 그를 파악하는 일이 어려웠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야의 유령을 읽다가
그 부분에 대해서 많이 보충이 되고
소설속에서 인물을 통해서 바라본 스페인의 역사가
조금 더 가까이 와닿고 아하,그래서 하고
이해가 되는 부분이 많이 생겼습니다.

카프리초스라고 이름 붙인 판화집의 내용을
그러고보니 제대로 본 적이 별로 없군요.
그래서 오늘은 그 작품을 찾아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그가 살았던 당시까지 스페인에서는 종교재판소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그림이 문제가 될 경우에는 비상한 각오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 그림을 가능하면 감추면서
당시의 상황을 응시하면서 그림으로 그렸다고 하네요.


그러고보면 스페인은 피레네 산맥을 경계로 프랑스와
접한 나라,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의
기운이 다른 나라로 퍼져가면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더 보수적으로 변해서 기존의
가치를 지키려고 했을 것이고
새로운 세상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변화의 물결에 동참하려고
시도를 했겠지요?
그런 격동의 한가운데서 살았던 그가
1792년 카디스에서 갑자기 귀가 들리지 않게 되고
그 이후 죽음에 이르기까지 들리지 않는 세상속에서
자신의 고독과 싸우면서 살아야했고
그 과정에서도 붓을 놓지 않고 시대를 응시하면서
그려낸 그림들은 한 장 한 장이 시대에 대한 증언이 되고
있는 것이니 한 권의 책만큼 한 장의 그림이 주는
울림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 여자가 무슨 일을 하는가 하고 그림을 잘 보면
남자의 목이 줄에 매달려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죽은 남자의 입안에서 이를 사냥하는 여자
그 여자가 본성이 나빠서일까요?
전쟁이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선
삼국유사나 삼국사기를 읽다가도 가끔 소스라치게
놀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교양있는 사람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사실은 극단까지 가지 않고 살 수 있는 여건이 가능해서
인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특히 전쟁시기의
역사를 읽다보면요


그렇다고 해도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과연
문명화되고 제대로 살고 있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런 의문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더 일찍,더 많이 더 빨리를 외치면서 아이들을 몰아대는
사회,그렇다고 사회만이 문제인가,그 사회속에서 사는
우리가 대열에 뛰어들어서 가속화시키는 그 속도감에
어떤 때는 현기증이 이는 경우도 있지요.
서로가 손가락질을 하지만 정작은
자신이 하고 있는 역할에 대해선 눈감기가 쉽다는 것을
직시하는 순간의 부끄러움도 크지요.

화가가 살았던 시대의 광기에 대해서 읽다가
문득 생각이 지금의 우리에게로 돌아가니
공연히 몸둘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더군요.

왜 그의 판화를 내내 피해다녔는가에 대해서
어렴풋이 그림이 그려지면서 오늘은 꼭 제대로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어둠을 직시할 수 있을 때
인간은 그림자를 끌어안고 제대로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어둠이 없는 척,내겐 빛만 있다고 착각하는 순간
타인에게서 보게 되는 어둠에 손가락질을 하게 되는
만용을 부리게 되겠지요?

우리 안의 약함을 안고 그것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으로 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날
고야에 관한 소설을 한 권 읽고 시대를 알기 위해
영화로도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소설읽기가
참 무거운 시간이 되어버렸지만 제겐 약이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