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현대갤러리에서 본 오치균님의 그림이 인상적이어서
집에 와서 검색을 하다가 그의 홈페이지를 찾았습니다.
다양한 그림들,특히 파스텔화가 인상적이어서
다음에 조금 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 다음날 다시 찾으려니 아무리해도 그 곳을 찾아들어갈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마치 귀신에 홀린 것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everymonth의 머라여님에게 한 번 찾아봐달라고
리플에 부탁을 해두었는데
오늘 아침에 들어가보니 깜빡이님이 주소를 올려놓았네요.
금요일 밤 연희동 하우스 콘서트에서 들었던
베토벤의 바이올린 소나타 7번을 조금 크게 틀어놓고
그림을 찾아서 보기 시작했습니다.
파스텔화,드가의 그림을 오르세미술관에서 보다가
파스텔의 느낌에 사로잡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시간이 날때마다
천년의 왕국이란 제목의 소설을 읽었습니다.
어린 시절 국사 교과서에서 읽은 두 명의 박연이 있었지요.
한 명은 세종대왕시절 음악에 있어서 독보적인 존재였던
박 연이고 다른 한 명은 인조때 나가사키로 가던 중
표류하여 이 곳으로 온 네덜란드 사람 벨테브레인데요
그가 인조로부터 받은 우리나라식 이름이 박연이라고.
바로 그 사람이 주인공인 소설이 천년의 왕국인데요
김경욱이란 소설가의 작품을 처음 읽었고
이 작품을 통해서 그의 다른 소설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벨테브레를 일인칭으로 하여 그가 서술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이 소설에서 처음 시작은
제주도에 27년 후에 표류해온 하멜 일행과 대면하게 된
벨테브레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 모국어로 인해
혼란을 겪는 모습부터 보여줍니다.
그 장면에서 거슬러올라가 그가 처음 이 나라에 온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지요.

마침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독립을 쟁취하게 되는
네덜란드 이야기,그 이후 네덜란드
특히 암스테르담에는 새로운 기운이 넘쳐흐르고
모험의 세계인 바다로 나오게 됩니다.
조선에서의 이야기를 예상하고 들어온 소설속에서
훨씬 더 큰 그림을 만나게 되어서 즐거운 마음으로
소설속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 날이었습니다.

두 이름으로 살아가게 된 한 남자,너무나 다른 세상속으로
들어와서 그 곳에서 자신이 누구인가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다
카오스를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준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앞의 작품까지가 1993년경의 작품이라면 지금부터는
97년부터의 작품이네요.
변화를 느끼게 되는데 한 번 주목해서 보실래요?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문득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기획해서 전시하는 전시장에만 갈 것이 아니라
어떤 통로로 시민들이 우리는 이런 전시를 원한다는
의견이 반영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그런 생각이 드네요.
이번에는 오치균님의 파스텔화만 골라서 전시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식으로요.

내가 원하는 강의를 조직해서 들어보고 싶다,
내가 원하는 전시를 내 의사를 이쪽에서 반영하여
만들어가는 것이 가능한가?
이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해보고 강의의 경우에
실지로 그런 일을 만들어보기도 한 것
이것이 올 해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지요,제겐


그런 작은 행보가 앞으로의 제 삶에 끼칠 변화가
눈에 보이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실제적으로 무슨 큰 영향을 끼친다기 보다는
생각속에서 곤란해,이것은 아니야,내겐 무리겠지?
이런 부정적인 에네르기를 제거하고 앞으로 한 발
나가는 힘을 준다는 점에서요.

이 그림이 제게 속삭이네요.
컴앞에서 이렇게 그림만 볼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