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안 이런 저런 사정으로 피아노 렛슨을 못받고
있다가 오늘에야 레슨이 있었습니다.
덜 깬 잠이지만 정신을 차리고 벨소리를 기다리고 있는데
피아노 선생인 어린 제자가 웃으면서 들어서더니
엄마가 드리래요하면서 내미는 꾸러미를 풀어보니
그 안에 모찌랑 화과자가 들어있네요.
고맙다고 전해드리란 인사와 더불어 좋아하는 화과자
하나 골라먹고 레슨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의자에 앉으면 긴장을 해서
손이 마음먹은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연주자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더 들더군요.
준비한 곡중에서 잘 되지 않는 곳은 반복해서 치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그래도 처음 시작할 때보다는 끝날 무렵 조금씩 좋아지는
소리를 들으면 배운다는 것의 위력을 실감하게 되네요.
레슨이 끝나고 나서
선호 ( 제 피아노 선생님의 이름입니다.어린 제자라
그냥 선호야라고 부르는데)가 들고 온 가방을 풀러놓습니다.
요즘 아이다 연습중인데 한 번 들어보실래요?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거든요.
그러더니 개선 행진곡 부분을 들려주네요.
이거 같은 피아노 맞나?
웅장하게 울리는 피아노 소리를 들으면서
언젠가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 건반을 눌러도
이런 분위기의 음악을 연주할 날이 올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선호야.아이다 들어보았니?
만화만 보고 아직은 못 들어보았다고 하길래
아이다 음반을 챙겨서 빌려주고
가는 길을 배웅하고 돌아서니 준비한 레슨비 봉투가
그대로 책상위에 놓여있습니다.
아이다 연주듣고 음반 챙기고 이야기하다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전화를 해보니 아이는 벌써 멀리 간 모양입니다.
다음번에 만나면 그 때 전해줄께 추석 잘 보내라고
인사를 한 다음
오랫만에 아이다를 들어보려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음반을 빌려주고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대라니 혼자서 피식 즐겁게 웃게 되네요.
함께 보는 그림은 어제 만난 문봉선님의 작품입니다.



잘 하지도 못하는 피아노를 왜 계속 치는가에 대해서
가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화적인 허영인가,아니면 절실한 욕구인가에 대해서요
듣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늘 중단하다가 다시 돌아가는
악기가 피아노인데 그것은 아마도
피아노를 듣고 있다가 생기는 충동에 기인하는 것
다른 한 가지는 검은색의 악보에서는 아무런 인상을 못 받다가
악보를 피아노 건반위에서 뚱땅거리다가 조금씩 소음에서
소리로 연결되는 그 느낌이 좋아서인가?
소리가 되어 조금씩 다듬어지는 과정이 흥겨워서일까?

언젠가 음악을 좋아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악기연습도 하고
있는 ,그렇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같은 공간속에서 악보를 맞추면서 연습하는 날이 오길
기대하는 마음입니다.
원하는 일은 반드시 어디선가 함께 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제겐
그 때 피아노가 아니라면 리코더도 좋고 하모니카도 좋고
아니면 드럼도 좋고
왕초보부터 시작하여 무엇인가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꿈을 꾸고 있습니다.

어제 간 연희동에서 한 생각은
이런 도심지가 아니라 조금 나간 곳이라 해도
공간이 더 넓어서 여럿이서 함께 연주도 하고
음악도 큰 소리로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서 새로운 공동체가 가능하지 않겠나 하는 것이었지요.

민예총에서는 문의를 해보니 원하는 강좌
인원이 어느 정도 모이면 그 쪽 강좌와 겹치는 시간이
아니면 강사의 사정이 허락하는 한 오전 강의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내년에는 철학강의 ,그리고 그리스 고전강의
지금 듣는 것보다 더 뒷시대의 미술이론 강의
이런 것을 사람들끼리 만들어서 그 곳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
이것도 오랜 세월 꿈으로만 꾸던 것이었는데
실현을 눈앞에 두고 있듯이
이렇게 음악에 대한 마음을 자꾸 표현하다보면
어디선가 손을 뻗는 도움의 손길,함께 하자는 손길이
오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