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낮에 집에 들어와서 everymonth에 들어가보니
미국에서 스미소니안 박물관에 간 클레어님이 올린
휘슬러의 그림중 특히 한 작품이 눈길을 오래 끌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밤에 들어와서 모짜르트 음악을 찾아서 한 곡 들으면서
쉬고 있는 중에 자연스럽게 손이 휘슬러의 그림으로 갑니다.

도서관에서 마지막 수업시간에 한 녀석이 지문을 읽다가
갑자기 말을 하네요,아,피아노 치고 싶어라
이유인즉 지문에서 주인공이 어느 집 앞을 지나다가
안에서 흘러나오는 피아노 소리에 끌려
지나칠 수 없어서 한참을 귀기울이면서 서 있는 장면을
묘사한 글을 읽었거든요.
피아노하면 빠질 수 없는 사연이 아이들에겐 각자
있지요.그래서 옛 시절로 돌아가서 할 수만 있다면
계속 치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더군요.
치고 싶다는 것과 계속 칠 수 있다는 것 사이의 거리에 대해서
조금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화가의 그림제목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현상이 한 가지
눈에 띄지요.
인물을 그렸어도 제목에는 arrangement in black and gray
혹은 green and yellow처럼 색과 색의 배열.혹은 배치란
제목으로 되어 있어요.
화가에겐 사람이 중요한 것이라기보단 사람을 매개로 한
색과 색의 병치,혹은 매치가 더 중요한 것이로구나를
제목을 통해 느낄 수 있어서 더욱 색에 주목해서 그림을
보게 되네요.



이 화가의 그림에서도 에도 시대의 일본그림의 영향이
느껴지는군요.


화가의 그림중에서 녹턴이란 제목으로 소개되는 그림들이
있지요.



녹턴 시리즈를 보다보니 불현듯 쇼팽의 음악을 들어보고
싶어지는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