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화요강의가 휴강인 관계로 어제 밤 조금 늦게 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잠을 잤습니다.
잠들기 전에 블로그에서 찾은 바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일번을
아침에 잠깨느라 방바닥에 편하게 누워서 듣고 있으니
잠을 깨우는 일등공신은 역시 연주로구나 하고
혼자 감탄을 했지요.
도서관에 수업하러 나가기 전에 샤워마치고
커피 한잔 끓인 다음
다시 음악을 틀어놓고 그림을 보려고 들어와서 찾기 시작하는데
호모 쿵푸스의 에필로그에서 말한 공부해서 남주자라는
슬로건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공부해서 남주자란 사람들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도움을
받고 사는가 고마운 마음이 들어서요.
그것과 더불어 음악을 올려서 남에게 나누어주는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 저는 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는
셈이로군요.
"It is only by drawing often, drawing everything, drawing incessantly, that one fine day you discover to your surprise that you have rendered something in its true character."
- Letter to his son Lucien, 21 May 1883
지난 번 책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란 제목의 책에서 나온
그림을 찾다가 마음이 동해서 다시 보려고 타데마의 그림을
검색하다가 그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글이 있어서
읽어보았습니다.
아하,이것이 바로 반 룬이 말한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는 경지로군요.
내일 반룬의 예술사 이야기를 원서로 읽는 모임이 있어서
어제 밤 글을 읽다가 영어로 이렇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니
갑자기 오모시로이,오모시로이 하는 일본어가 제 입에서
튀어나왔습니다.
재미있다는 말인데 거기서 갑자기 일본어가 튀어나오는
사연은 요즘 일본어 익히는 일에 시간을 들이다보니
자연반사적인 것이었지요.
역시 사람은 먹는 것이 ,읽는 것이,관심이 그 사람을
형성한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입니다.
반룬은 천재란 재능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고 말하면서
바로 연습,연습,연습만이 완벽을 낳는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긴 어려운 것,
그래서 더 소중한 것이겠지요?

로마의 첫 황제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그림을 모아놓은 공간에서
그림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그린 것이네요.
물론 화가가 살았던 시대가 19세기이니 그의 눈으로 본
로마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흥미있게 바라볼 수 있는
캔버스라서 재미있게 쳐다보고 있는 중입니다.

보람이가 밤에 줄넘기를 하러 나가기 시작하면서
제게 혼자서 늦은 밤에 줄넘기하기가 조금 쑥쓰럽다고
도와달라는 부탁을 하길래 따라 나서기 시작한 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습니다.
줄넘기하는 동안 그냥 서있기도 그래서 아파트 주위를
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걸어다니기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어제는 이천보 조금 넘게 걸었습니다.
한 번에 이천보라면 어려웠겠지만 하루에 조금씩 양을 늘리다보니
어제는 숨을 고르게 쉬면서 걸어다니는 일이 가능하더군요.
그러면서 생각을 했습니다.하루에 만보를 걷는다는 사람들은
도대체 얼마나 걸어야 하는 것인가 하고요.

바쿠스신에게 바침이란 제목이네요.
그리스하면 흔히 이성적인 세계를 떠올리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아폴론못지 않게 중요한 신이 바로
디오니소스였지요.
사람에게 이성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세계가 많이 있고
그것이 감성,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감성으로 마주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것들이 있을 때 균형을 잡으면서 살아가는
일이 쉽지 않기에 사람들에겐 축제,어느 때는 광란으로
치닫기도 하는 축제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요?
지금의 현실에서는 어떻게 극과 극의 감정을 조절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 장의 그림앞에서

한 그리스 여인을 그린 것이네요.
그리스여자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생활이 허용되지 않았었지요.
그녀가 사는 공간은 집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었겠지만
그 안에서도 살아가는 방법은 다 달랐겠지요?
여성이란 카테고리는 한가지이지만 각자는 개별자이므로
각각의 삶의 양식은 다를 수밖에 없고
이런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면 서로 의사소통도 어려운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요즘 빌려서 읽고 있는책중에 여성철학자가 쓴 인정이론에
관한 것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이 그림앞에서
그리스여인,여인일반,그것이 확대되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속에서의 여성의 삶,이렇게 생각이 마구 확장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어요.

제목이 a listener인 이 그림에서 이 여성은 무엇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중일까요?
지난 목요일 수업중에 한 멤버가 말을 합니다
화요일,목요일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동양고전읽기
모임이 있다고요.
벌써 5년정도 된 모임이라고,그런데 본인은 시간이 맞지
않아서 화요일에만 참석하고 있는데 그래도 좋다고 하네요.
이상하게 그 말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것을 보니
그동안 마음속으로 생각만 하고도 한 번도 실천하지 못했던
동양고전 원전읽기모임에 찾아갈 시간이 되었나
아니면 아직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하나 하고요.

무엇을 하고 싶다고 생각해도 그것을 과연 끝까지 잘할 수 있을까,그래서 시작하는 일에 겁을 내고
공연히 위축되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돌려먹고 나니,시작하는 일이 그리 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설령 중간에서 그만두더라도 새로 시작한 일에서 발견한
싹은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더군요.
그것을 알게 된 것이 제 인생에서 참 큰 변화를 초래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금요일 현대갤러리 가는 길에서 거리에 쓰인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그 글이 너무 인상적이어서 수첩에 적어왔는데
얻었다 한들 본래 있었던 것,
잃었다 한들 본래 없었던 것
벽암록의 글이라고 되어 있더군요.
벽암록이 무엇인가 궁금했지만 그냥 넘겼는데
고미숙의 호모 쿵푸스를 읽다가 다시 벽암록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고전의 바다에서 만나자고 독자를 격려하는
메세지를 만나면서 화요모임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생각하고 있었지만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던 생각이 이제 무르익어서
밖에서 자극하는 메세지가 제 마음을 흔들어놓는 경험을
한 날,아 그래서 때가 있다고 하는 모양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중입니다.



다음주 화요일이면 성곡미술관 강의가 다 끝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미술강의를 계속 들을 것인지
아니면 낯설고 안개속에 가려진 것같지만
막상 들어가보면 무엇을 만나게 될지 가슴두근거리는
고전의 세계로 들어가볼지 조금 더 고민해볼 일이 남아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