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은 글의 잔상이 남아서일까요?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서 바흐의 두대의 바이얼린을 위한 연주곡을 틀어놓고
쉬고 있다가 문득 렘브란트의 그림이 궁금해집니다.

마침 그의 그림을 찾기 좋게 배열해놓은 싸이트가 있어서
이런 저런 그림을 골라서 보고 있는 중인데요
이 그림이 눈에 띄어서 먼저 올려놓습니다.

성화를 보면서 마음이 울렁이는 경험을 잘 못하는 제겐
렘브란트가 예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성서속의 장면이 갑자기 생기를
얻어 그림이 살아서 말을 걸고 있다는 느낌을 받거든요.
사울에게 하프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다윗을 그린 그림인데요
어둠속에서 다윗은 연주를 하고 있군요.

작품의 제목은 다윗과 우리야라고 되어 있는데
인물은 세 명이 나오네요.
이 그림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실 수 있는 분은
리플로 혹은 답글로 부탁드립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며칠 전에 본 카라바지오의
두 그림,처음에 그린 마태가 주문자에게 퇴짜를 맞고 나서
다시 그린 마태가 생각납니다.
화가가 다르면 그들이 접근하는 방식이 달라서
복음서를 쓴 마태라고 해도 다 다른 마태가 생기는 것이
바로 그림의 매력이 아닐까 싶네요.

렘브란트가 그려낸 파우스트입니다.

예루살렘의 파괴를 애통해하고 있는 예레미아입니다.
제목을 모른다해도 그림을 감상하는 일에 지장이 없지만
그래도 맥락을 알고 바라보면 그림이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곤 하지요.
그림을 보는 중에 축구화를 새로 산 승태가 늦은 시간이라도
축구를 하고 싶다고 하고 저도 점점 불어나는 몸무게가 부담스러워
걸어다니는 일이라도 하려고 나가야 할 것 같네요

성저공원까지 가서 축구공을 혼자 차고 돌아다니는 승태를
따라 저도 가능한 한 공을 따라 다녔습니다.
고단하긴 하나 참 새롭고 즐거운 경험이네요.
나가서 약 한 시간 동안 돌아다닌 것만으로도
갑자기 몸이 고단하면서도 생기있는 기분이 드니
아무래도 내일도 공차러 가는 일에 동행해야 할 모양입니다.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를 그린 그림입니다.
빛은 어둠이 깊을 수록 더 빛난다고 하지요.
자신의 정신적인 스승을 모른다고 부인한 뒤의 베드로의
고뇌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네요.
오늘 한국사 시간에 성리학에서 말하는 이와 기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란 과연 존재하는가에 대해서 저는 깊은 의심을 갖고 있는
편인데 이것이다라고 생각해도 늘 허물어지는 결심이나
마음의 방황을 생각하면 우리가 윤리적으로 지켜야할
과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당위인 것일까 하는
의심을 하게 되거든요.
갑자기 흔들리면서 그래도 앞으로 가는 인간이라서
더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밤 공을 따라 다니면서 느낀 즐거움이
과연 내일도 벌떡 일어나서 밖에 나가는 것을 가능하게
하려나,자신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오는
푸념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