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금요일 나들이는 지난 번 전주에 이어서 아주 특별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줌인 줌아웃에서 만나 쪽지와 메일을 거쳐서
이제는 거의 매일 everymonth에서 만나고 있는 클레어님이 사는 대전에 갔거든요.
루오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대전에 한 번 오라는 초대를 받고
일산과 서울,그리고 전주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대전에 모여
007 접선하듯이 만나서
시립미술관에서 그림을 보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그 다음에 갑사에 들러서 구경한 다음 도예촌에 들러서 자연속에 있는 공간의 아름다움과
그곳에서 만들어지는 작품도 보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올라온 시간이었습니다.
everymonth에다가는 4편으로 나누어서 글을 올릴 정도로 할 말이 많은
여행이었습니다.
대전 혹은 대전 근처에 사는 분이라면 정말 귀한 전시, 정성껏 준비한 전시라는 느낌이 들어서
한 번 꼭 들러보시라고 권하고 싶네요.
그래서 루오 전시회, 그곳에서 만난 마음의 눈이 맑아진 또 다른 신부 화가인 김인중님의 전시회에
관한 글을 올려놓습니다.
목요일 저녁
클레어님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비발디 음반은 없는데 혹시 디브이디 플레이어를 갖고 계신가 해서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응답이 나와서
그냥 포기하고 있었는데
전화하신 분 있나요? 하는 응답전화가 왔네요.
그런데 목소리가 너무 예쁜 것 있지요?
낮은 음성의 제 목소리와는 달리 하이 소프라노처럼 느껴지는 음성에서 묻어나는 반가움으로
내일의 만남은 기분 좋은 하루가 되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일년동안 집에서 잠자고 있는 디브이디 중에서 음악에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골랐습니다.
그 중에 자클린 뒤 프레의 실황음반도 들어있었지요.
아침에 고양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자다가 대망을 읽다가 하다보니 벌써 대전입니다.
마침 들고 간 보람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거니 저 앞에서 전화기로 이야기하다가 손짓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렇게 만난 클레어님과 차속에서 이야기하면서
길거리에서 기다리고 있는 반쪽이님을 태우고
대전시립미술관으로 가니 지난 번 전주에서보다 나들이라고 조금 더 신경써서 더 멋있는 차림으로 나타난
다바르님을 만났습니다.
마치 접선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지금 오고 있는 중이라는 연락이 이쁜 여우님에게서 왔습니다.
그래서 먼저 전시장으로 들어가서 그림을 보기로 했는데
시립미술관의 정성이 듬뿍 느껴지는 전시였습니다.
도판으로만 보던 루오,그리고 그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마음이 아파서 도망다디던 화가였는데
어린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생애를 전부 볼 수 있도록 꾸며진 전시실에서
제 마음이 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구스타브 모로의 제자였지요.
보자르 미술학교에 모여든 화가지망생중에는 마티스도 마르케도 있었더군요.
구스타브 모로는 화가로서도 이름을 알렸지만 좋은 스승이란 바로 이런 사람이라고
제게 새겨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는 제자들에게 화실에만 갇혀있을 것이 아니라
밖으로 나가서 사물을 제대로 관찰할 것을
남을 답습할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할 것을 요구했다고 하더군요.
스승에게 깊은 애착을 느끼던 루오는 스승이 죽고 나서 상당한 세월 방황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계기가 생기고
그 다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광대,서커스 단원, 재판정의 판사,변호사,피고등을 그렸지요.
그가 마음에 두고 있었던 가장 큰 것은 자신의 그림으로 누군가 그림에 감동되어 예수를 믿고 싶어하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그의 마지막 시기의 그림들은 그 앞에서 발을 떼기가 어려워서
다시 가서 보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다시 보고
시선을 바꾸어 다시 보곤 했습니다.
그는 화상 볼라르와의 인연으로 상당히 많은 판화작업을 하기도 하고
그 덕분에 미제레레라는 제겐 그의 대표작으로 보이는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볼라르
인상주의 화가들에겐 잊을 수 없는 그 이름을
루오 전시에 가서 만나니 반가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자화상으로 남은 남자라는 말도 있는 그는
화상이 그 시기의 화가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나
미술사는 화가들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무명일 때 그들을 알아보고 발굴하고 지원해 준 사람들의 노력도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이름이기도 하지요.
전시실마다 배치되어 있던 도우미들이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아주 친절하게 대답을 해주는 덕분에
판화에서의 기법이나 채색판화가 어떻게 나오는가를 알 수 있었던 것도 좋았고
그의 생애와 작품에 관한 디지털 영상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보너스치곤 너무 행복하게도
이 전시를 유치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하는 화가 신부,신부 화가?
어느 쪽이 맞는 표현일까요?
김인중신부님의 그림과 스테인드 글라스 작업을 본 것이 정말 좋았습니다.
색을 처리하는 대담성,격렬하면서도 동시에 정적인 느낌을 수반하는 그림들
추상화를 통해서 성모마리아의 신비를 표현하고 싶었다는군요.
그런 신비를 못 느꼈다해도 저는 그 장소에서 마치 일시적으로 붙들려서 꼼짝달싹 못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대전에서 이렇게 정성스럽게 준비한 전시회를 보고 있으려니
감동이 밀려옵니다.
고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기도 하고요.
아침이 부실했는지 배고파하는 반쪽이님,그래서 시립미술관 외부는 오래 보기 어려웠지만
다양하게 배치된 조각도 구경하고
이쁜여우님에게 한 수 배우면서 사진도 몇 장 찍었습니다.
그런데 햇살이 너무 강하여 좋은 사진은 별로 없네요,
사진은 이쁜여우님이 아마 제공해주실 것 같으니
그 때 보도록 할까요?
마침 오늘 밤 집에 와서 찾아보니 김인중 신부님의 천상의 창이란 전시회에 관한 글이 있어서
함께 보려고 올려 놓습니다.


■ 전시개요
대전시립미술관은 프랑스에서 활동중인 김인중 신부(金寅中ㆍ66)의 전시를 5월 4일부터 7월 30일까지 제5전시실에서 개최한다. 특히 이번전시는 근대미술의 거장[조루주 루오전]과 더불어 개최되는 전시로서 세대를 달리한 두 작가의 종교적 의미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들이 전시된다.
빛의 화가로 불리우는 김 신부의 유화는 물을 머금은 수채화를 보는 듯 하다. 이번 전시에서 그의 유화는 4m 높이의 전시공간에 맞추어 제작되어 감동을 더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리아를 경배하는 주제로 연작 20점이 선보인다. 특히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전시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주황과 노랑, 보라 등의 색채가 농담을 조절하며 퍼져 나가고, 투명한 여백과 어울리며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번전시에서는 높이가 2m~3m에 이르는 대형 스테인드 글라스 작품이 8점 전시된다. 또한 이번 전시는 김인중 신부가 현재 작업하고 있는 새로운 시도들 즉, 도자기,스테인드글라스, 미사제의등을 통해 회화적 기법이 다른 소재에 응용되어 또 하나의 예술품으로 탄생됨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예술의 무한함을 느끼게 해 줄 것이다. 이번 전시는 기존 그의 전시와는 다른 예술적 성숙도와 열정이 한층 무르익은 전시가 될 것이다.

69년 유럽에 정착해 수도자와 화가의 길을 걸어온 화력 46년의 김 신부는 유럽에서 100회 가까운 전시회를 치르면서 국내보다는 유럽 화단에 더 알려져 있다. 그는 2003년 노트르담 성당 전시회의 초대작가로 선정됐다. 노트르담 성당의 전시회는 프랑스혁명과 함께 중단되었는데 지난해 200년만에 부활했다. 교황 즉위 25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 전시회는 하루 3만~4만명씩 찾아오는 대성당에서 한달간 계속됐다. 또한 그의 스테인드글래스 작품들은 스위스 프뤼브르 성당, 프랑스 앙굴렘의 세례요한 성당에 설치되어 있다.
충남 부여 출신인 김인중은 대전고를 거쳐 1963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60년대 추상 표현주의 작가로 활동했다. 67년 카톨릭에 귀의했으며, 69년 유럽으로 떠나 성 도미니코 수도회 사제 서품을 받았다. 75년부터 파리에 거주하며 종교와 예술의 두 길을 걷고 있는 수도자다. 그는 "성직은 생활, 미술은 강론"이라고 말한다. 그의 작품은 "종교와 색채의 신비가 어우러진 빛의 예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