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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읽는 종이비행기

| 조회수 : 1,096 | 추천수 : 39
작성일 : 2006-03-09 10:39:36

종이 비행기는 한겨레 21에 실리는 칼럼의 이름입니다.'

필진이 좋아서 가끔 들어가서 읽어보곤 하지요.

오늘은 좋은 글이 많아서 도서관에 가기 전

모짜르트의 마술피리를 들으면서 글을 여러 편 읽고 있는 중인데요

그 중에서 함께 읽고 싶은 글이 있어서 올려 놓습니다.



너, 나무 한 그루 심어봤냐?


[종이비행기 47]

이 한마디의 깨우침에 귀가 열리지 않았다면 종이컵을 대수롭게 생각했으리
의 팔정도를 읽으며 나를 철들게 한 임길진 박사와 엘리를 추억하다


▣ 이윤기/ 소설가·번역가


20여 년 전부터 아내가 ‘유기농’이니 ‘한살림 운동’ 같은 말들을 입에 올리기는 했다. ‘환경’이니 ‘공해’니 하는 말도 더러 들어보기는 했다. 하지만 내 의식 수준은 여전히 호구지책에 코가 꿰여 있었다.


어느 인류학자의 조립식 젓가락


한비야(월드비전 긴급 구호팀장)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저는 종이컵을 안 써요. 아마존 정글에 가면 한 동네 사람들이 다 반장님이 되어 있어요. 갑자기 울창한 정글을 베어서 햇빛을 과다하게 받아서 그렇대요. 정글에서 벤 나무로 종이컵이나 고급 생일 케이크 박스를 만들어요. 종이컵 한 번 쓰는 게 남미 밀림 사람들의 눈을 빼오는 거라고 생각해보세요.” 만일 20여 년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잘났어, 정말, 아마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2005년 여름, 일본의 환경운동가인 인류학자 쓰지 신이치(?信一) 박사를 만났다. 그는 국방색 주머니를 하나 목에 걸고 다녔다. 주머니 속에는 조립식 젓가락이 들어 있다고 했다. 일본인들이 모두 자기 젓가락을 한 모씩 목에 차고 다닌다면 일본은 인도네시아에서 대젓가락을 수입하지 않아도 될 터이고, 그러면 인도네시아에서 대숲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만일 20여 년 전에 이 말을 들었다면 어땠을까? 오냐, 너 잘났다, 나는 아마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런 말이나 태도에 냉소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나는 한비야나 쓰지 신이치를 아름다운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철이 좀 들게 된 계기가 있다.



△ 먼 나라의일도 옆집 일처럼 우리에게 갖가지 얽힌 길을 열어 보인다. 가뭄으로 바닥이 드러난 아마존강. (사진/ EPA)






1992년 당시 내가 유학하고 있던 미국 대학의 학장은 한국인 임길진 박사였다. 독신으로 살고 있던 그의 자택은 주말이면 한국인들이 자주 또 많이 모였다. 젊은 조교 하나가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중국제 종이컵을 사가지고 왔다. 학장이 그에게 호통을 쳤다.

“마, 책 많이 꿰어차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미안하지 않냐? 책, 그거 뭘로 만들어? 종이로 만들어. 종이, 그거 뭘로 만들어? 나무로 만들어. 중국제 종이컵, 그거 뭘로 만들어? 중국 나무로 만들어. 한국 땅이든 중국 땅이든 미국 땅이든 좋다, 너 나무 한 그루 심어봤냐?”

그 집에는 불문율이 몇 가지 있었다. 종이컵이나 플라스틱 컵은 쓰지 말되, 부득이 써야 할 경우에는, 쓴 뒤에도 계속 씻고 말리고 하면서 찢어질 때까지, 부서질 때까지 쓸 것. 행주를 써도 되는 경우에는 절대로 주방용 휴지를 쓰지 말 것. 캔맥주, 다 마실 자신 없으면 따지 말되, 일단 땄으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마실 것.

미국의 휴지통은 무지막지하게 크다. 눕히면 ‘마티스’ 같은 소형 승용차 한 대도 너끈하게 들어갈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그랬다. 옆에 있던 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하, 미국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종이컵과 중국의 숲은 무관하지 않구나. 중국의 숲은, 봄만 되면 황사(黃砂) 뽀얗게 뒤집어쓰는 우리나라와 무관하지 않은 것이로구나.

내가 1992년, 우리나라 환경운동의 대부 최열씨를 처음 만난 곳도 바로 그 임 박사댁 거실이다. 최열씨는 술은 마시되, 노래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서원을 세운 사람이다. 나는 별명이 ‘틈노’라서 틈날 때마다 노래를 부르지만, 최열씨는 절대로 부르지 않는다. 통일 되면 그때 부르겠단다. 임 박사가 최열씨와 함께 환경운동연합의 공동 대표가 된 것은 그로부터 11년 뒤인 2003년의 일이다. 살아 계셨다면 최열씨와 함께 통일 이후 환경운동의 밑그림을 그렸을 텐데, 임 박사는 2005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미국에서 우리 곁을 떠났다. 그의 음성이 귀에 쟁쟁하다. 마, 책 많이 꿰어차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미안하지 않냐? 한국 땅이든 중국 땅이든 미국 땅이든 좋다, 너 나무 한 그루 심어봤냐? 이 한마디의 깨우침에 귀가 열리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아마존 정글 사람들 눈을 보호하기 위해 종이컵 안 쓴다는 한비야를 야유하고 있을 것이고, 인도네시아 대숲을 보호하기 위해 자기만을 위한 젓가락을 목에 걸고 다니는 쓰지 신이치를 비웃고 있을 것이다.


인연에 깨어 있어야겠다


엘리라는 처녀도 내 귀를 열어준 사람 중 하나다. 엘리는 당시 우리 학교의 한국학회를 이끌고 있던 미국인 빈센트 호프먼 박사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난 딸이다. 박사 댁에서 맥주를 얻어마시고 있는데 엘리가 옆에서 빈 병이 나면 그 빈 병을 맑은 물로 씻고는 했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빈 병, 슈퍼마켓에 되돌려주고 맡겨두었던 병값 되돌려 받으면 그만이었다. 조금 의아해서 내가 엘리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엘리의 대답이 향기로웠다. “이러고 있으면 좋아요.”

부처님의 첫 설법을 기록한 (阿含經)을 읽으면서 나는 아름다운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인연을 떠올렸다. 부처님은 그러셨단다. 공부하는 사람은 반드시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를 알아야 한다고. 첫 번째 진리, 삶이란 ‘고’(苦)라는 것이다. 두 번째, ‘고’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욕망을 일으키는 ‘집’(執)으로 말미암아 ‘고’가 발생한다. 세 번째, 그렇다면 이 ‘집’은 어떻게 ‘멸’(滅)해야 하는가? 사물에 대한 목마른 사랑을 남김없이 ‘멸’하고, 버리고, 벗어나 아무 집착이 없게 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네 번째, 어떻게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는가? 바르게 보고,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자신의 견해를 실천하는 등 여덟 가지 길이 있으니 이것을 팔정도(八正道)라고 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나에게 여덟 갈래 길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베이징 나비의 날갯짓이 뉴욕의 태풍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무심코 쓰는 종이컵 하나, 대나무 젓가락 한 모, 휴지 한 장이 아마존과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숲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가연(佳緣)과 악연(惡緣)으로 난마처럼 얽혀 있다는 것을 내게 가르쳐주었다.

나도 인연에 깨어 있어야겠다.


저도 이 곳에서 좋은 인연을 만난 덕분에 하루 하루 즐거운 기분으로

디카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잘찍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도 걸음마 단계이지만

그것이 부끄럽지 않네요.

그들의 실력이 그렇게 쌓이기까지의 노력에 주목하게 되면서

그것에 감탄하는 마음을 갖게 되니

괴로움이 없어져버렸습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천천히 오래도록 이런 마음으로 모든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자

사는 일이 한결 느긋해지는 느낌입니다.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맹순이
    '06.3.9 4:18 PM

    아...미시간 주립대학에 있었을때의 이야기군요

    문득 이글을 읽고 있으니 그곳 풍경들이 선연히 떠오릅니다.

    엘리도 이젠 서른 가까이 됐겠고.....

  • 2. 안나돌리
    '06.3.9 8:52 PM

    intotheself님..
    사진이 많이 느셨네요..ㅎㅎ

    담주 목요일 (3.16일) 오전에
    호수공원에서 미팅을 하려구요^^
    미소조아님의 프로포즈(?)도 있고 해서리~~
    반쪽이님도 연락되시면 함께 하셨으면 합니다.

  • 3. 둥이모친
    '06.3.10 1:57 PM

    전 자판기 커피를 자주 마셔서 종이컵을 많이 쓰고 있는데..
    한비야씨의 말대로라면..허걱.
    자판기커피 마시지 말아야 하나요? 이 일을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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