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하기 거의 일년전에 취직이 정해진 덕분에 2011년 한 해를 그래도 마음 편히 보낸 보람이가
받아놓은 날짜를 어김없이 채우고 오늘 새벽에 떠났습니다.엄마, 울거면 공항까지 오지 말고 그냥 집에서 인사하자고
못을 확 박는 바람에 알았노라고 답하고 좋아하는 무국을 포함한 이른 아침을 먹은 다음
공항에 도착하니 7시, 수속을 하고 기다리고 있자니 집에서 공항, 나고야에 도착해서 회사의 공장이 있는 지역에 가서 신고하고
다시 나고야로 나와서 도쿄로 이렇게 긴 하루를 보내게 될 아이를 상상하게 되네요.
마침 보람이 친구가 공항에 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 덕분에 마지막까지 함께 있지 않아도 되어서 오히려 한시름 덜은
느낌이 든 것은 아마도 웃으면서 인사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낀 탓이었을까요? 친구가 도착해서 인사나누고 버스에 오르자
정말 가는구나 실감이 나더군요.
마침 오늘 아침에 공항에서 그랜드 백화점의 영화관으로 곧장 와서 영화를 보자는 제안을 받아서 마리포사님이랑 만나서
디어 한나, 그리고 그녀가 떠날 때 두 편의 영화를 내리 보는 평소에는 그다지 잘 하지 않는 일을 했습니다.
아마 그녀 나름의 배려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혼자 집에 들어가서 마음 아파 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
덕분에 너무 무거운 주제 두 편의 영화속으로 들어가서 한동안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네요.
점심까지 먹고 들어오니 3시가 넘은 시각, 피로가 몰려 와서 한숨 자고 나니 저절로 보람이 방으로 들어가보게 되었습니다.
어제 밤 늦은 시간까지도 넣어야 할 짐, 빼야 할 짐 고민하다가 결국 5월 초에 따로 한 상자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고는
연수기간 동안 필요한 짐을 꾸리고 나선 방은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나를 단정하게 치워달라는 듯이
평소와는 달리 마음이 동해서 꼼꼼하게 방을 정리했지요. 그러다가 2006년의 다이어리를 발견했습니다.
그 때가 고3이었는데요, 다이어리의 표지에 세상을 널리 보고 결정은 스스로의 힘으로라고 일본어로 적혀있더군요.
보람이는 그 때 무슨 생각으로 이런 글을 적은 것일까, 아니면 책 어딘가의 구절에서 발견한 것일까 혼자 이런 저런
상상을 하게 되더군요.
한 시간 넘게 꼼꼼하게 치우고 나니 지금 당장 앉아서 책을 읽어도 좋은 방이 되었지만 도저히 책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
오랫만에 그동안 듣지 않던 음반을 찾아서 듣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평소에 하지 않던 일들을 여러가지 하고 있네요.
언어연수, 교환학생, 취직하기 위해서 당분간 일본에 가 있던 시기, 이렇게 늘 돌아올 것을 전제로 떠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자신이 일하고 싶은 곳을 찾아서 떠난 것이라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이 없는 떠남, 그 빈자리가 굉장히 크겠지요?
아이가 크면 부모 품을 떠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이론으로 아는 것과 실제의 상황이 똑 같은 마음으로 대하기
어렵다는 것, 아마 당분간은 매일 매일 빈자리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겠지만 언젠가 그 자리를 평온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루벤스의 작품이로군요. 이름을 일부러 찍지 않아도 내가 그린 작품이야 라고 으스대는 느낌이 들 만큼 누구라고 그림이 말하고 있는
이런 그림을 보고 있으면 화풍이란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이 삶은 그 사람답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자신답게 살아갈 인생에
대해서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림을 보다 말고.
그것은 아이들에게만 해당하는 덕목은 물론 아닐 겁니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서 강박을 갖지 말고 자연스럽게
나답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림을 보는 일은 가끔 이렇게 그림 자체에서 더 나가서 인생에 대한
메타포로 읽게 되는 시간이 있고 그 자체도 역시 귀한 것이라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