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을 고를 때 패키지식으로 묶어 놓거나 한 곡을 악장 하나만 골라서 연주한 것을 사지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번 예술의 전당 음반점에 가서 눈을 혹하게 하는 음반을 하나 보았지요. 월드 뮤직 100선이라
음악을 듣고 싶어도 무엇이 좋은지 알 수 없어서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나라의 곡이 시디 6장에 들어있더군요.
값도 그다지 비싸지 않아서 반절 정도는 버린다 해도 그 중에서 50곡 정도라도 마음에 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그런
마음에 음반을 구해왔습니다.
그 뒤로 제겐 새로운 즐거움이 생긴 셈인데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던 노래들로 낮 시간 오전동안의 공부나 레슨을 마치고
집에 오면 한 번씩 음반을 골라서 색다른 노래를 들어보는 취미가 생긴 덕분이지요. 낯설다는 것은 불편하다면 불편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일상의 리듬에 새로움을 더해주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오늘은 오전중에 세 시간 연달아 일본어 공부가 있는 날입니다. 한 시간은 역사책을 일본어로 읽는 중인데 벌써 아편전쟁까지
왔더라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세계사를 언제 다 보나, 그것도 일본어로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책읽기가 드디어 근대로
들어오다보니 사람이 마음먹고 꾸준하게 가는 것이 참 힘있는 일이란 것을 느끼게 되네요. 물론 혼자서라면 벌써 그만두었을 일인데
동료가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역시 고맙다는 인사가 저절로 나오는 날이었습니다.
한 시간은 역사책 강독, 다른 두 시간은 일본어 문법, 그리고 어린 왕자 강독, 나머지 시간은 일본어로 말하기, 그렇게 세 시간을
연속해서 수업을 해도 별로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 놀랍긴 하네요.
그리고 나면 오늘은 피아노 바이올린 렛슨날인데요 어제밤까지 망서렸지요. 한 주간 동안 보람이가 금요일 새벽에 떠나는 관계로
우체국에 가서 항공편으로 짐보내기, 한의원에 가기, 먹고 싶다는 것 함께 먹으러 가기, 이런 저런 일로 시간을 써야 할 일이 많다보니
연습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어려웠던 탓에 자꾸 망서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한 번 빠질까?
이런 유혹이 자칫하면 계속 구실을 만들 확률이 크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레슨에 갔지요. 역시
간 것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덕분에 집에 와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놀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하루 살이 인생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이 공부가 끝나면 내일 다른 스터디가 있으니 다른 책을 읽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요. 그러다가 생각을 했지요.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그것을 불평하면 곤란해
그러다가 다시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가끔은 시간이 모자라거나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나가야 하는 일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람이라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니 꾀가 날 때는 준비하지 못한 채 그냥 참석하는 것도 아주 가끔은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어제 한의원에서 침을 꽂은 채 앉은 자리에서 제가 보람이에게 말을 했지요. 보람아
앞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생명을 기르는 일에 관심있는 사람, 손으로 무엇인가 만드는 일에 관심있는 사람을 사귀게 되면
좋겠다고요. 그 아이 왈 엄마 내가 생명을 잘 못 기르는데 그런 사람이 내게 관심이 있겠어?
그것은 모르는 일이야, 그리고 서로 다르니까 오히려 끌리게 될 수도 있고. 앞으로 긴 인생을 살아야 하니 생명을 기르는 일에 관심있고
손으로 작업하는 일에 관심있는 사람이야말로 중요한 힘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해, 엄마가 오랫동안 생각한 일이니까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이야기를 했지요. 그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스며들었는지는 모르지요. 그래도 자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한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요즘
또 한 가지 부탁하게 되는 것은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결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시작하라고요
시작해보아야 이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아니면 여기에서 멈추어도 후회가 없는 일인지 알지 않겠는가
그리고 혼자서가 아니라 동료들과 더불어 하는 일을 다양하게 해보라고 , 먼저 말 꺼내는 것을 거절이 두려워서 망서리지 말라고
이런 저런 이야기가 지금 귀에 다 들어오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야기를 듣다보면 보람이가 판단이 망서려지는 시간에
혹시 엄마의 목소리가 떠오르면서 결정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언젠가 자신의 인생을 위해서 집을 떠나게 되는 아들에게도 함께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기도 합니다.
골라서 듣던 음악이 다 끝났네요. 음악을 듣는 동안 저절로 몸을 움직이고 싶어지니 음악을 듣는 것이 운동하러 가게 되는 촉진제가
된다는 것도 요즘 느끼는 재미중의 하나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