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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명장면, 생활속의 즐거움

blog.joins.com/isomkiss

| 조회수 : 1,120 | 추천수 : 9
작성일 : 2005-09-29 08:40:26
여름에 읽었던 책,그냥 읽은 것이 아니라

다 읽고 나서

아침마다 한꼭지씩 따로 떼어

한 권의 책이 다 끝났 때까지 새로 읽고

그 글에서 이야기되는 인물이나 그림을 다시

찾아보는 그런 즐거움을 누린 책이 있습니다.

바로 옛공부의 즐거움이란 책인데요

이상하게 가을이 되니까

다시 찾아서 읽게 되네요.

책속에 소개된 블로그를 오늘은 드디어 찾아 들어가 보았습니다.

읽을거리가 참 많아서

혼자 알고 보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

소개합니다.

그리고 복사해서 올리는 글은

그 책의 들어가는 말로 저자가 쓴 글입니다.




옛공부의 즐거움 - 들어서며







바쁘지 않은 위인이 어디 있겠는가. 특히 위인전이나 인물전에 자주 명함을 내밀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초청을 받았더라도 자리를 가리는 게 당연할지 모른다. 이름도 생판 낯선 이아무개가 불쑥 호명하는 명단에 들어있다는 이유 만으로, 선뜻 이 자리에 올 분이 몇이나 있을라고? 그것도 폼나는 학문의 본령으로 초빙하는 게 아니라, 인사동 ‘번개’라니. 거 참. 번개라는 건 요즘 젊은 친구들이 술생각나거나 기분이 쓸쓸할 때 긴급타전하는 방식의 모임 아니던가. 그런데 공맹노장에다 석가에게 번개라? 소동파와 팔대산인, 혹은 동파의 아내 왕불이나 추사 김정희의 아내 예안 이씨에게 ‘잠깐 봅시다’라니...그 뿐인가 최치원, 안견, 김홍도에 서경덕, 박지원까지, 한 시대의 지식계의 거물들일 뿐 아니라, 이 나라 학문과 예술의 긍지인 분들에게 <이번 금요일 한잔 풉시다>는 따위의 메신저를 날리다니... 장소를 ‘줄없는 거문고’로 정한 것은 서경덕의 시에서 힌트를 얻었다. “만약 거문고에 줄이 없으면 고요함이 움직임을 에워싼다” 과연 줄없는 거문고에는 고전 속의 고요가 술자리의 움직임을 에워쌀까.




인사동 스타벅스 근처 골목에 있는 작은 술집 ‘줄없는 거문고’ 여주인은 줄이어 들이닥치는 기이한 차림의 손님들을 맞이하고는 어리둥절한 표정 한가운데 반가움을 길어올렸다. 물컵과 접시를 내려놓는 종업원은, 입장하는 회원의 면면을 살피며 어떤 모임일까를 짐작해보려는 눈치가 역력했다.




먼저 상석(上席)에 귀를 기울이면...공자께서 마주앉은 노자를 향해 한 말씀 하신다. “요즘 이 땅에서 도덕경의 해석을 두고 좀 시끄러웠다던데...어찌 하여 문장을 아리송하게 하여 후대를 혼란스럽게 만든 것이오. 혹시 둔세(遁世)를 권장하는 그 책이 결국은 그런 혼란을 부르는 미망(迷妄)의 핵심이 아니던가요.” “허허. 혼란이 아니라, 그 모든 해석들이 어쩌면 다 열려있는 게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가 아닌가 하는데...그건 그렇고,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느니 하는 그런 해괴한 제목이 유행한 건 어떻게 봐야 하오?” 이때 맹자가 끼어든다. “그것은 선생님이 세워놓은 인(仁)의 국가이념이 여전히 유효함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멀찌감치 앉아있던 석가의 말씀. “당신의 모친이 당신을 키운답시고 이사를 자주한 자랑이, 요즘 이 나라의 강남 대치동 교육광풍을 만든 건 아닐지...” 이에 맹자는 답하기를. “이런...여시아문(如是我聞)의 객관적 보도태도를 강조하는 종교를 주창하신 분이, 그런 무리한 결론을 내리시다니...강남 광풍은 이 나라의 사회구조와 잘못된 교육체계의 산물이요.”노자가 이쯤에서 좌중을 두리번거린다. “그런데, 이아무개 아들 이름이 자네가 남긴 이야기에서 따서 지었다고 들었는데?” 노자가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저 귀퉁이에서 천정을 바라보고 있는 장자였다. 이아무개가 이때 입을 연다. “장자의 메타포들이 시원스럽고 힘이 있어서 후대의 상상력을 열어준 감이 있어요. 원래는 붕새 붕(鵬)을 이름에 쓰려 하였으나, 그 이름이 너무 크다는 의견이 있어, 새[鳥]를 감춰 겸허함을 갖추려 하였지요. 제가 장자에 매료된 것은 애유소망(愛有所亡)이란 구절 때문이었지요. 왜 그 애마가(愛馬家)가 말 뒷축에 채여 울고 있었을 때 해준 충고 있지 않습니까. 뜻이 아무리 지극해도 사랑은 늘 끝이 있는 법이라는 말. 그러기에 짧은 사랑의 기간 동안 유감없이 더욱 사랑하라. 제 연애 시절의 금언이었지요.”




이제 다른 테이블로 가보자. 화가들이 무리지어 앉아있다. 먼저 안견이 입을 뗀다. “사실 이 자리엔 나보다는 안평대군이 왔어야 하는데... 사실 이아무개는 몽유도원도의 화풍이나 기예보다 동아시아의 꿈을 수놓은 복숭아꽃 마을에 대한 얘길 듣고 싶어할 겁니다.” 허유가 손을 저으며 말한다. ‘별 말씀을...대군은 대군 대로, 선생은 선생 대로 다 들을 얘기들이 있는 겁니다. 특히 중국의 곽희 화풍을 통달하신 선배의 화품(畵品)은 이미 조선이라는 지역적 범주를 넘었다고 봅니다.“ 안견은 말한다. ”허허. 과찬이요. 나야, 미천한 몸을 재앙에서 빼내려 나를 신망하는 사람을 속이기도 하였던 사람이요.“ 안평대군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복잡한 심회를 말하려는 듯 하다. 허유는 말한다. ”나는 아름다운 지식인들이 세상의 평지풍파에 이름과 뜻을 더럽히고 마는 것을 많이 보았소이다.“ 팔대산인이 이쯤에서 툭 내뱉듯 한 마디 한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벙어리 아(啞) 한 글자로 내 생애 입을 닫았소.“ 한 동안 흐른 침묵을 깨면서 소동파가 말을 꺼낸다. ”내가 이 자리에서 말을 하는 것이 어떤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림과 시가 소통하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형사(形似)보다 사의(寫意)에 치중하는 그림에 이르면, 그것은 문자를 뛰어넘는 시(詩)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때 허유가 말을 받는다.”사실 조선에서는 동파선생이 문학의 한 정상(頂上)으로 우러름을 받아왔습니다. 저 또한 선생이 나막신을 신은 소박한 모습을 담은 동파입극도를 그린 인연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본으로 삼아, 스승인 추사선생의 해천일립상을 그리기도 했구요.“




그 옆 테이블에선 서경덕의 마인드 컨트롤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박지원은 말한다. ‘나 또한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면서 외물에 흔들리지 않는 법을 궁구하였소만, 선생이 황진이 옆에 누워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보인 것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소.“ 화담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허허. 인간은 다만 노력할 뿐이요. 완전한 존재가 어디 있겠소? 나는 이아무개가 나를 피타고라스에 비유해준 것이 즐거웠소. 조선의 수학과 과학이 체계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서 그렇지 선구적인 혜안들은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소. 아참, 추사 또한 예산 고택에 가면 <석년(石年)>이란 이름의 해시계가 있지 않소? 게다가 북한산에 올라 진흥왕 순수비를 분석해내고, 경주 고찰의 단갈(斷碣;깨진 비석)들을 찾아다니던 과학적 감식안도 바로 추사가 아니었소?“ 이에 추사는 말한다. ”의욕에 비한다면 성과가 부끄럽다 할 만합니다. 무엇보다 이아무개가 그 혈육이 경영하던 전원카페 이름을 <세한도(歲寒圖)>라고 지은 것은 제게 감회가 있습니다. 세한이란 대저, 춥고 고통스런 시절을 말함인데 그 시절에 기꺼이 동고(同苦)할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 어디 쉽겠습니까?“ 이때 최치원이 말을 받는다. ”선생에게는 로열티 강한 제자인 이상적도 있었고, 청나라에는 선생의 학문과 서예를 지지하는 지식인 팬들도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또 당시 지적 이상을 펼치려고 애썼던 신관호나 권돈인, 조인영, 차의 달인인 초의선사도 모두 추사의 친구이자 지식 도반(道伴)이 아니었습니까.“ 추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한다. ”돌아보니 더욱 귀한 인연이었다 싶습니다. 공자가 세한에 송죽을 주목한 이유가 그것에 있다 하겠습니다. 고운선생도 중국에 계시던 시절 세로(世路)에 나를 알아줄 이, 즉 지음(知音)이 적다고 토로하지 않으셨습니까?“ 이때 저쪽에서 소동파가 말한다. ”그런데 이 인사동에 <지음>이란 술집이 있다면서요? 2차는 거기로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고운선생이 2차는 쏘셔야 합니다.“ 좌중의 박수가 터지는 순간이었다.




그 박수소리에 전율하듯 눈꺼풀을 껌벅거리며 나는 잠에서 깬다. 백년이라는 갑갑한 시간의 감옥에서 탈주하여, 역사 속을 소요(逍遙)하던 선지식(善知識)들을 한꺼번에 모셔온 인사동 번개. 그 소박한 꿈 한 자락. 이 책은 그런 꿈들을 주섬주섬 모은 자취들이다. 당연히 일관하는 무엇도 찾기 어렵고 그것을 체계적인 연구라고 말하기도 우습다. 어쩌면 한 인간이 손을 허우적거려 닿은 시간 저쪽의 삶에 대한 열광과 애호의 기록이라 할 만하다. 인물의 위대성과 학문적 깊이는 당연히 존숭되어야 되는 것이지만, 그것에 너무 무게를 두다 보면,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기 어렵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시간을 넘어서서 그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여러 겹’의 삶을 동시에 사는 일을 꿈꾼다. 그것이 옛공부이다. 그들의 삶, 그들의 생각, 그들의 행동은 매력있다. ‘위인’의 위치에 큰 조상(彫像)으로 세워두고 우러르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런 미화보다는 사람냄새 나는 지식의 채취(採取)를 즐긴다. 즐기는 고전, 함께 노는 고전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섣부른 책에 대해 벌써 걱정과 후회를 하고 있다. 어설픈 생각의 짜깁기 끝에 나온 글들. 뒤에 읽어보고 생길 후회와 부끄러움들을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 그나마 읽을 만한 구석이 있다면 그건, 나의 병적인 독서를 늘 흔쾌히 지지해준 아내 김선희의 덕이다. 묻혀 있어도 전혀 할 말 없는 내 글을, 유심히 살펴주신 이윤기선생께 크게 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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