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홈페이지에 쓴 글인데요
새롭게 만나는 화가들이 여럿 있더군요.
마음을 달래려고 그림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림과 어울려서 들었던 바로크 시대의 작곡가들의 곡을 트럼펫이 주가 되어 연주한
음반도 좋아서 두 번이나 돌려서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 마음도 많이 풀려서 이젠
도서관에 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울 것 같아요.
지난 겨울 그리고 봄에 조금 공부하는 태도를 보여서
제게 가능성을 맛 보게 해 준 보람이가
요즘 슬럼프가 오래 가고 있네요.
보람아,왜 그래?
마음속이 복잡한 일이 있니?
그건 아니고 조금만 내버려둬
조금만이 아닌데?
그래도
아침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가고 나니
마음이 심란하지만
이미 다 커버려서 아무리 말로 해도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밖에서의 푸쉬가 소용이 없게 된 아이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하는 것이 필요가 없겠지요?
그래서 수학하러 간다는 아이를 배웅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서
계속 잠자고 있는 승태를 깨우지 않고
음악을 틀어놓고 그림을 보고 있는 중입니다.
키아프의 전시가 2002년만 왜 제대로 인터넷에
올라와 있을까 궁금해서 다시 한 번 뒤적여보니
바로 그 싸이트에 클릭을 하면 2005년전시까지 볼 수 있도록
그것도 퐁피두에 들어가 보았을 때처럼
전시실이 한 눈에 들어오게 해놓고
클릭만 하면 차례로 전시장을 구경하게 되어 있네요.
아,찾는 자에게 복이 있구나
저절로 그런 대사가 떠오르는 아침입니다.

지금 보고 있는 화가는 대만사람인데요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제일 먼저 선택해서 보고 있는 중이지요.


2003년 키아프에 온 대만 화랑이 여러 곳이었나 보네요.
이번에 보는 화가는 다른 사람인데요


요즘 제가 터득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이 쪽에서 놓아주면 상대방이 오히려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고
승태와 저 사이의 줄다리기에 관한 것인데요
아이가 집에 오는 시간이면 전화를 하고
대개는 무엇을 먹고 나서 조금 쉬었다가 무엇을 하라는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지요.
그런데 요즘은 일부러 저녁 일곱시가 넘도록 전화를 걸지 않으니
승태가 실컷 놀고 나서는 전화를 먼저 하더군요.
엄마
아들이야.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고 많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 아이에게 다가가야 할 지
한가닥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지요.


지금까지가 대만의 갤러리 구경이었고요
한국의 갤러리로 넘어갑니다.



바로 위의 두 작품은 유리로 되어 있네요.
신기하다 하면서 바라보고 있는 중입니다.


김덕용이라고 이번 전시에서도 인상적으로 본 화가인데요
나무에 단청이라고 되어 있네요.



알면 사랑한다는 말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요즘 제가 생각하는 것은 알면 사랑하고
사랑할수록 더 보게 된다는 것
혹은 같은 대상이 더 보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요즘 나무에 관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도
그것을 느낍니다.
김옥련씨 따라서 호수공원에서 설명들었던 것들이
책에서 나오니 반갑고
읽고 나니 지나다니는 길에서 만나는 나무들이
그냥 이름없는 대상이 아니라
한 번 도 쳐다보게 되는 생명체로 느껴지는 날들입니다.
그러니 찾는 자에게 복이 있다는 말이
허언이 아닌 셈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