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집중하기도 어렵고 무엇을 쓰기는 더 어렵더군요.
숱하게 그림에 대해 이런 저런 단상을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도 에너지가 있을 동안의 이야기구나,그 시간이 참 고마운 것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살았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사람은 늘 지나간 자리에 대해 결핍을 통해 소중함을 깨닫는 모양입니다.
일요일 아침 다른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
바흐의 류트 조곡을 틀어놓고 (빌린 곡인데 처음 듣는 선율이 좋아서 귀를 바짝 기울이고 듣는 중이지요) 그림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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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메니아 출신의 미국 화가 아쉴 고르키
잘 알려진 화가는 아니지만 추상 표현주의 화가이지요.
그의 그림이란 타이틀이 없으면 마치 칸딘스키 그림처럼
느껴지는 그런 그림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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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입니다.
그의 그림은 따뜻한 색감을 보고 싶을 때
가끔 찾아보게 되는군요.
집에 그의 그림 한 점을 걸어두고 자주 바라보아서
더 따뜻하게 느끼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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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로스코인데요 black on gray란 제목입니다.
특히 gray부분에 주목하게 되는군요.
똑같은 색이 아니라 캔버스에 아주 다양한 색이 섞여 있는
느낌입니다.조금씩 다른 변주라고나 할까요?
음악에서도 저는 변주곡을 좋아하는데 아마 한 음악속에 들어있는 다양함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하나로 아울러내는
통일감이 좋아서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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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포드 스틸입니다.
역시 추상표현주의 화가인데 이상하게 오늘은
그쪽 계통의 그림을 쭉 보게 되네요.
위로 솟은 검은 색의 끝이 마치 솟대처럼 느껴지는군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인데도 그런 메타포로 받아들이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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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클리포드 스틸의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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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이름이 있어서 검색을 해보니 조각가군요.
메리 캘러리라고 처음 들어보는 사람인데
조각이 마치 이 응로의 군상을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요즘 사춘기를 겪는 아들문제로 마음을 끓이다가
오히려 제 문제를 더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얽혀서 살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
만난 조각이라 그런지 더 눈길이 가네요.
잡은 손과 나머지 공간과의 거리감 유지를 어떻게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외면하고 살 수 없는 문제인것은 확실한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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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면서도 다시 문제를 새롭게 보고 힘내면서
앞으로 나가라는 의미로 제 자신에게 주는 부케를 하나 골랐습니다.
처음 보는 그림인데 마음이 끌려서요.
모리스 그레이브즈란 화가군요.summer bouquet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