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겐하임에서 그림을 보고 빌려온 영화 한 편 보다가
정말 자야지 하곤 컴퓨터 끄러 들어왔다가 그만 발목이 잡혔네요.
그래도 음반으로만 듣던 신영옥의 노래를 처음으로 동영상으로나마 접하는
참 즐거운 시간입니다.
오늘 고등학생 아이와 함께 본 영어지문에서 바로 세대차이에 관한 글을 읽었었는데
고난도 테크놀로지로 무장한 지금 세대는 우리 기성세대가 갖지 못한 무기가 있고
그들이야말로 앞으로를 책임질 세대란 의미의 글이었지요.
그래서 함께 읽는 아이들과 제가 나눈 이야기가 바로
디지털 카메라를 익숙하게 이용하고
일상의 사소한 일까지 올리고 함께 나누며
자신이 중심이면서도 동시에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가는 너희들 세대가
앞으로 만들 세상이 어떨지 궁금하다는 말이었지요.
저는 시네마 하우스란 이름으로 영화가 동영상으로 뜨는 것도 신기해하는 형편이라서...
오늘 본 영화에서 주인공 여자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미술관에 가는데
보나르의 그림 한 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노라고
그 전에도 무수히 그 앞을 지나쳐 갔지만 그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자 함께 탄 친구가 말을 합니다.
아마 관심이 생기니까 그 그림이 눈이 갔나 보다고.
아,대본을 쓴 누군가도 그림에 대해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이 영화를 오래 전에 보았을 때는 못 보고 스쳐간 것
대사를 번역한 사람이 보나드라고 했더군요.
그래도 제가 보나드가 아니라 보나르겠지 라고 생각한 것이 그 동안의 차이라고 할까요?
이 말을 쓰고 있자니 내일 시간이 있으면 보나르의 그림을 보고 싶네요.
방학후 처음으로 어른들 서양사 모임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본 영화라 생각이 나서 keeping the faith란 영화를 본 이야기를 꺼냈더니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있더군요.
그녀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가끔씩 누군가가 이 영화를 누가 보았을까 할 때
딱 반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릅니다. 그런 것을 공감대라고 하겠지요?
그 영화를 본 뒤라 그런지 오늘 밤 들어와서 보나르의 그림을 뒤적이게 되네요.


보나르는 뷔야르와 함께 나비파로 분류되는 화가인데요
처음에는 나비파란 말을 듣고 말그대로 나비와 관련있는 화가인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히브리어로 나비란 선지자란 뜻이라고 하더군요.
얼마나 웃었던지요. 잘 못 안 말에 대한 연상때문에요.



다음 작품은 뷔야르인데요
저는 개인적으로는 뷔야르에게 더 끌리는 편입니다.
보나르는 주로 자신이 함께 살던 여자의 모습을 그렸는데
그것도 나이가 먹지 않는 어떤 일정한 시기의 여자 모습으로
그녀가 피부병이 있어서 주로 욕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모습을 모델로 한 작품이 많더군요.

이 그림은 보나르 작품중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중의 한 점입니다.




오늘 읽은 서양사에서 중세의 명목론과 실재론,그리고 관념론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명목론과 실재론에 대해 읽었을 때는 무슨 소린가
잘 감이 잡히지 않아서 무조건 외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플라톤의 이론중에서 이데아에 해당하는 부분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보는 입장이 바로 실재론이고
그런 것은 실재로 존재하지 않고 말뿐이다라는 입장이 명목론 혹은 유명론이며 (이름만 있다는 의미에서)
이데아가 존재하긴 하지만 구체적인 사물을 매개로 존재한다는 것이 개념론이지요.
그 과정에서 중세의 음악 이야기가 끼어 있어서
집에 들어와사 그레고리안 성가를 들어보고 있인데 느낌이 참 좋습니다.

한가지 생각이 서로를 묶어주었던 시절,그것이 축복인 사람들도 있었겠고
그것이 제약으로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한 사회가 갖고 있는 가치관을 수용하면서도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품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겠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닐 것같아요.
그의 트레이드 마크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바로 이런 식의 느낌을 풍기는 작품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