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골랐습니다.
그녀의 이미지가 르노와르의 그림에 나오는 여자들의 분위기와 비슷하여
르노와르가 그린 꽃그림 한 점을 고른 다음
늘 음악으로 깊은 만족감을 주는 peacemaker님에게도 그림을 한 점 보냈습니다.
그리곤 오후 내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에 와서
도서관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꽃그림을 받고 나서
취미 나눔터에 샹송과 깐소네 모음을 올려주셨더군요.
원래는 집에 와서 낮에 보다가 들고 온 책을 마저 읽고 나서
식구들이 다 잠들고 나면 장미의 이름을 볼 예정이었는데
예정을 바꾸어서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가끔씩 이 곳에 올리는 그림에도 음악을 넣어주시면 어떨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그러면 그림보는 시간이 더 즐거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함께 보는 그림은 아침에 잠시 눈인사만 나눈 르노와르이지요.
한 점의 초상화가 한 권의 책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특히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사람이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그대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가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길거리에서 잘 늙은 노인의 얼굴을 볼 때 나도 저렇게 늙을 수 있다면
하는 공상을 하곤 합니다.
사람마다 잘 산다는 개념이 다르겠지요?
이 그림에서 눈을 떼기가 어렵네요.
색과 비츠이 향연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그림은 야,르노와르네 금방 알아 볼 수 있는 특유의 느낌이 있지요?
폴 클레나 마티스가 북아프리카의 알제리에 가서 그 곳의 햇빛을 캔버스에 담았듯이
르노와르도 여행을 한 모양입니다.
알제리,혹은 알제리의 아랍인들,혹은 알제리 여인의 복장을 한 여성등이 그려진 그림이
여러 장 있군요.
오늘 읽은 책에서 아비뇽의 유수라는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설명을 읽었습니다.
아마 바빌론 유수에 빗대어
교황이 프랑스 출신으로 정해지자 그가 로마에 가서 일하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그냥 프랑스에 머물러 있고 싶어했던 시기에
아비뇽에 임시로 교황청을 만들어서 집무한 곳이지요.
로마에서는 로마 나름대로 다시 교황을 선출하여
두 명의 교황이 있었던 시기
그래서일까요?
그림 제목을 검색하다가 아비뇽이란 말이 눈에 띄자 눌러보게 되었지요.
사람의 눈이 같은 것이 아니고'
귀가 같은 것이 아님을 느끼는 날들입니다.
불어를 몇 달 공부했다고 지금 듣고 있는 샹송에서 알아듣는 말이 생기는 것도 너무 신기하군요.
이런 것이 바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의 재미가 아닐까요?
이 그림은 르노와르가 그린 모네 부인과 아들입니다.
아르장퇴이유에 살고 있던 모네를 찾아가서 르노와르도 마네도
두 사람을 모델로 그림을 그렸더군요.
인상파 화가들이 서로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서로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 것들이
많이 남아 있더군요.
그런 그림들을 통해서
혹은 비슷한 소재를 어떻게 소화하는가를 통해서
혹은 한 화가의 성장과 그림의 변화를 통해서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는 그림 보는 방법중의 하나가 아닐까요?
책 읽고 있는 카미유 모네입니다.
두 그림중 위의 것은 자신의 집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네이고
아래 그림은 글을 읽고 있는 모네입니다.
그림을 보고 있는데 오늘부터 시험을 보고 있는 딸아이가 나와서
배가 고프다고 먹을 것을 좀 사다달라고
엄마도 배고프지 않냐고 유혹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