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불을 때면 집안 곳곳에 연기가 먼저 삐집고 들어와 앉는다.
아무리 구들을 새로 놓고 흡출기를 굴뚝에 달아도 흙이 떨어져나간 곳으로 연기는 쏟아져 들어온다.
연기에 이골이 난 산골식구라도 정도가 심해지면 전국적으로 문을 열어놓을 수밖에.
연기가 빠져 나가기도 전에 얼음바람이 밀려 들어오니 문을 닫았다,열었다를 반복하다보면 아궁이의 불은 다 타 버리고 예전의 평온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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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skyheart.co.kr/ttboard/data/002/mi%20101-0128_IMG.jpg)
아직도 세간살이의 일부가 하우스에 들어있다보니 자주 하우스에 물건을 찾으러 간다.
남편도 같은 이유로 하우스에 가긴 마찬가지다.
큰 스덴 국자를 찾으러 가니 남편도 그곳에 있었다.
암벽화와 자일(암벽등반시 사용하는 줄)을 어루만지며 서있는 모습이 눈에 박혔다.
왜 아니겠는가.
애지중지하는 암벽등반용품이며 텐트 등이 서울에서 끌어다 놓은 그대로 하우스에서 빛이 바래가고 있으니 말이다.
연휴에는 산악부 친구들과 의례이 먼 산행을 떠나곤 했든 그가 귀농 후 산이라곤 밭꼭대기 위의 산에 효소거리 채집하러 간 일밖에 없으니 그 훌쩍 떠나곤 했던 병이 치유된건지, 병을 감추고 사는건지 궁금하던터였다.
나를 알아본 남편은 베낭에 그것들을 마대자루에 쓰레기 쑤셔 넣듯 찔러넣고는 나가버렸다.
남편이 남겨두고간 그 서늘한 기운이 가슴에 닿자 내 마음에도 이내 살얼음이 끼었다.
무얼 가지러 왔더라.
가슴을 녹이고 스덴 국자를 찾기 시작했다.
마음따로, 손따로.
어느 상자에 넣었는지 전혀 기억에 없다.
여기 저기 건드려 보는데 한국생산성본부 서류봉투 묶음이 눈에 얼쩡거렸다.
끈을 풀고 꺼내보니 예전에 강의할 때 사용하던 원고와 OHP필림이었다.
그랬다.
이사짐을 쌀 때 버리지 못하고 여물게 묶어왔었다.
그 때는 다음에 다시 사용할 거라는 희망이 있어서도 아니고 기념으로 남겨둬야겠다는 애틋함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살아왔던 한 파편이기 때문에 조각을 버리지 못하고 산골에까지 끼고 왔을뿐이다.
강의원고를 들여다보고 나니 아까 남편의 멍한 모습이 다시 머리에 어른거렸다.
그 감정이 이 감정이었으리.
이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산골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산골에 어울리겠는가.
나 역시 대강 상자에 강의원고와 필림을 찔러 넣었다.
남편이 무언가 찾으러 왔다가 빈 손으로, 빈 가슴으로 나갔듯이, 나 역시 국자를 찾지 않은채 빈 손으로 하우스를 나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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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허한 날엔 겨울이고 여름이고와 관계없이 마당에 서고싶다.
털신을 신고 마당에 나가보니 별들이 죄다 나와 있다.
조금있다 다른 친구들도 올거라는 말이라도 전하려는듯 점점 가까이 닥아와 앉는다.
들고나온 커피를 들여다보니 어느새 별 두 개가 들어와 몸을 담그고 있다.
입가에 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낮의 기분은 별커피가 다 흡수해 버리고 향기만이 코끝을 간질이고 있다.
털신을 신고도 발이 시린 날에 배동분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