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어 교실 송년 음악회가 오늘 있었습니다.
스페인어 책이 한 권 끝났을 때 모여서 놀았기 때문에 아니 그 반은 또 모여요? 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가까운 시일에
모임이 있었지만 오늘은 1월에 시작한 모임의 한 해가 끝나는 날이어서 (다음 주 목요일 출발하는 여행때문에 오늘 수업이
올 해의 마지막 수업이거든요, 그래서 이왕이면 음악회로 한 해를 마무리하자고 오래 전 부터 이야기가 된 것이라서요 )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악기를 들고 오기로 했습니다.
장소만 제가 제공하고 나머지는 참여하는 아이들과 엄마들이 포트락식으로 들고 온 음식으로 우선 풍성한 식사를 한 다음
(이 반의 멤버와 그 동생들도 함께 하는 묘하고 독특한 음악회,거기다가 다른 반 수업에서 악기 연주하는 아이들이 찬조 출연을
하기도 하고 ) 의행이의 리코더 연주로 시작한 음악회가 바이올린 ,첼로 협주, -역시 오늘도 중간에 곡을 잊어버려서 우왕좌왕
그런데도 앞으로도 계속 하게 될 것 같은 이 마음은 사랑일까요? 음악에 대한 아니면 집착일까요? - 배운지 한 달만에
곡을 연주한 달래의 독주와 달래의 선생님인 윤교와 달래의 합주, 그리고 역시 피아노 치는 아이들이 많아서 정록 민경
지우, 민준이의 다양한 곡을 들었습니다. 금요일 프로들이 연주하는 음악회에 가는 것도 설레는 일이지만 저는 이렇게 아이들과
모여서 하는 음악회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있는 중이랍니다.
영우가 못 불어요 하고 빼더니 그래도 플룻을 들고 와서 두 곡을 연주했고 준하가 클래식 기타 한 곡, 그리고 유진이가
오랫동안 불지 못해서 곤란하다고 사양하다가 그래도 두 곡을 분 하모니카, 추억의 소리가 저를 옛 날 김광석과 안치환의 하모니카
소리에 반했던 시절로 돌아가게 해주는 묘한 시간을 맛보게 해주더라고요.
지난 정발산 음악회에서와는 다른 곡으로 준비해온 아이들, 그 사이에 레퍼토리가 늘었구나 어느새 연습했을까, 이 아이들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성장하여 앞으로도 여러가지 형태로 만나서 음악을 나눌 수 있길 하는 소망을 갖게 된 날이기도 했지요.
윤교의 첼로 독주도 곡이 바뀌어 그 사이에 타란텔라를 준비했더군요. 아이들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으면 어른들은 과연 그 속도로
변할 수 있을까 싶게 자꾸 앞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마지막 순서로 행복한 왕자의 피아노 황제라고 제가 이름 지은 홍주의 피아노 독주가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슈베르트와
하이든 연주였는데요, 그 사이에 꺼놓은 휴대전화를 살짝 켜두었습니다.
며칠 전 반가운 전화가 온 덕분인데요, 어린 시절, 함께 공부했던 아이가 어느새 커서 예고에서 작곡을 공부하는 중인데
음악회 소식을 듣고는 아람누리에서 하는 백건우 피아노 독주회 끝나고 올 수 있으면 참가하겠노라고 이야기했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전화를 켠 순간 곧이어서 연락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는 에너지를 내지만 싫어하는 일에 끌고 가기가 많이 힘들었던 그 아이와의 공부시간을 되돌아보게 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영어 문법을 너무나 싫어해서 어머니와 상의해서 공부방식을 확 바꾸어 본인이 원하는 음악가에 관한 글만을
찾아서 읽었지요. 능력보다 어려운 단계의 글이라도 음악가 이야기에는 눈을 밝히면서 읽던 아이, 어느날 부터 음반을 빌려주면
듣고 또 들어서 그 곡의 거의 전부를 기억해서 저를 곤란하게 했던 아이이기도 했었습니다. 선생님, 어느 소절의 곡 기억나세요?
이렇게 물어보면 저는 그런 멜로디가 있는지도 몰랐으니 어안이 벙벙하던 것도 제 mp3에 가득 넣어준 곡을 통해서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을 회상하게 되기도 하는 녀석이 이제는 한 사람 몫을 하는 청년이 되어가고 있더라고요.
보칼리제가 온 덕분에 음악회는 다시 시작되어 자신이 작곡을 하는 이야기, 실제로 작곡한 곡을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연주를 하기도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현대 음악에 대한 것, 어떤 자세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나름의 생각도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말을 참 잘 풀어서 하는 능력을 갖고 있구나 감탄하기도 했고요. 6학년 홍주의 음악을 듣고 평을 하는 것에서도 벌써 자신의
의견을 저렇게 말할 수 있다니 놀랍구나 싶기도 했지요.
오늘은 정록이 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나중에 영우를 데리러 오신 영우 어머니까지 함께 한 자리, 어른들과 보칼리제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조금 지루해진 아이들은 다른 방으로 보내고, 거기서 노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어른들과 큰 아이들의 대화가 무르익어 갑니다.
늦게 스페인어반에 합류한 규가 혼자서 찾아와서는 오래 전 배운 피아노라서 오늘은 연주할 수 없지만 이 자리에서 배운 것이
많다고 다음에는 어떤 식으로든 합류하겠다고 하는 것도 보기 좋았습니다.
옆에서 고등학교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는 어른에게도 성실하게 답변을 하고 있는 모습도 그렇고요.
멘토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찾고 찾아주고 일회성의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그런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는 싹을 본 날이었습니다.
송년 음악회를 했으니 신년 음악회는 안 하나요? 라는 반응이 나와서 아, 오늘 즐거운 사람들이 많구나 느꼈기도 하고요.
물론 신년음악회는 어렵지만 다음 여름 음악회에서는 군대에서 돌아오는 성악가 지망생 유빈이도 오니까, 조금 더 풍성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내년에는 졸업반이 되는 독일어 함께 공부하는 쫑마마에게도 그녀가 좋아하는 모짜르트 곡을
연주하라고 청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10시 정도에 마치기로 했던 음악회가 보칼리제의 등장으로 신선한 바람이 불어서 결국은 11시 반까지 이어졌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사람들이 다 돌아가고 나서 트럼펫 곡을 틀어놓고 찾아서 보고 있는 화가는 모란디입니다.
모란디,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낯설어하는 사람들도 많을 화가인데요, 정물화의 매력에 눈 뜨게 한 화가랍니다 제겐
그런데 오늘 찾아보다 보니 정물화 이외의 매력적인 작품들도 많이 있네요.
모란디를 골라서 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어제 본 전시회의 영향입니다 .한 화가가 그녀의 작품에 반복되는 글씨로 모란디를
적어놓았더라고요. 모란디라는 글씨 하나로 확 친밀감을 느끼면서 캔버스를 바라보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그 중 한 작품은 골라서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참 바라보았기도 하고요.
아주 작은 그림인데요 색의 배치가 절묘해서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물론 소장은 제겐 무리인 일이라서
마음을 접긴 했어도 그런 욕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을 만나는 것은 역시 즐거운 일이거든요.
내년에는 누구와 더불어 스페인어 교실의 송년 음악회를 하게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기대가 되기도 하고, 이렇게 음악회의 밤을
마무리하고 듣는 음악의 묘미를 한껏 느끼는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