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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한국경제 “그가 그립다” - 장경순

| 조회수 : 1,249 | 추천수 : 185
작성일 : 2008-07-12 20:09:47


돌아가신 전철환 총재가 어떻게 쌓아올린 외환보유액인데...

2001년 늦여름 무더위가 최고조에 달한 어느 토요일, 나도 운동이란 걸 좀 해보자고 북한산 입구에 들어섰을 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한국은행 공보실 관계자였다.

“월요일 오전 9시에 특별 기자 간담회가 예정돼 있으니 참고하세요.”

외환보유액이 드디어 1000억 달러를 넘은 모양이다.

월요일 한국은행 자료를 받아보니 1000억3900만 달러였다. 외환위기를 겪은 게 4년 전인데 1000억 달러라니 아침부터 기자들 모아놓고 기세 좀 올려보겠다는 한국은행의 속내가 엿보인다.

그 때도 환율 급상승 조짐이 약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 1000억 달러나 있으니 함부로 환투기할 생각 마라’는 경고를 외환시장에 전달할 심산이다. 기자간담회 시간이 외환시장 개장 30분 전으로 잡힌 것 또한 이런 의도다.

그 무렵 나하고 한국은행, 그리고 전철환 한국은행 총재가 조금 ‘까칠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해 한국은행의 연속된 금리인하를 틈만 나면 ‘긁어댄’ 것이 주된 원인인데, 여기다 내가 당시 있었던 회사와 전 총재 사이에 사소한 문제가 꼬여 있었던 것 같다.

국가 경제의 커다란 전환점인 만큼 전철환 총재가 직접 기자 간담회를 진행했다. 총재가 의기양양하게 문답에 응하는 가운데 내 질문 순서가 됐다.

“외환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앞으로 외환보유액 1000억 달러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시장개입을 할 수 있는 돈이 3900만 달러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던데요.”

매섭게 나를 쏘아보던 총재가 단호한 한마디를 작렬했다.

“고렇게 쓰면 오보(誤報) 중의 오보지!”

두 가지 의미였던 것 같다. ‘너 오늘도 그딴 식으로 기사 쓰면 내일 아침 대 망신당할 거다’는 것과 함께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 딜러는 오늘 패가망신할 것이다’는 결연한 의지가 팍팍 밀려왔다.

간담회 후 한겨레신문 정남기 선배의 촌평이다. “당신만 질문하면 총재가 특히 예민해 지는 거 같아.”


▲ 한국은행 총재 재임 시절의 고 전철환 총재. IMF 차입금 상환 완료때
국산 만연필로 서명해야 한다며 고집부리던 때의 표정이 이와 흡사했다.

때로는 결벽증처럼 느껴질 정도로 발언의 일관성에 철저하던 전철환 총재였다. 그 결과 그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국내총생산(GDP)이나 국제수지와 같은 경제지표로 여겨졌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전 총재와 경제부총리가 정 반대 방향의 발언을 해도 시장은 전 총재 말대로 움직였다.

국가가 부도난 상태에서 4년 임기 한국은행 총재를 맡은 그가 남긴 업적 가운데 외환보유액 1000억 달러보다 몇 배나 더 큰 것으로 평가받는 것이 있다.

바로 국내 채권 유통시장의 개척이다. 물론, 전 총재나 한국은행뿐만 아니라 재정경제부가 함께 이룬 것이다.

하지만 애초 정부는 외환위기 직후 14조 원어치 채권을 발행하면서도 이 물량이 제대로 소화될지 우려를 떨치지 못했다. 궁여지책으로 한국은행이 우선 인수해 줄 것을 타진했지만 전철환 총재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전 총재는 “중앙은행의 발권력은 함부로 쓰는 게 아니다”며 차제에 국채 유통시장에서 소화할 것을 강력히 권유했다. 바로 이때가 유전 10개에 맞먹는다는 한국의 채권시장이 탄생한 순간이다.

이 때 낙찰 금리는 11.6%. 이후 채권시장이 활성화되면서 국채금리는 5% 안팎으로 떨어졌다.

국채발행 잔액이 280조원에 달한다니 채권 유통시장이 탄생하면서 해마다 국가의 이자 부담이 17조원이나 절감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채권 딜러, 채권 관련 파생상품 등 예전 한국 경제에 없던 개념들이 도입되면서 금융 부가가치가 대폭 증가했다.

두 아들의 결혼이 행여 부하직원들에게조차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한 비밀에 붙였던 전철환 총재의 몸가짐은 ‘약삭빠른 자들만의 세상’에서 ‘결벽증’이라고도 불린다.

국가에 이런 고위 공직자가 있음을 충분히 감사할 만큼의 시간도 주지 않고 하늘은 2004년 6월 17일 그를 거두어 가셨다.

요즘 외환시장이 들썩거리더니 외환보유액의 투입마저 불사하겠다는 소리가 들린다. ‘안한다면 안한다’는 소신으로 유명하던 한 노인이 의기양양하게 1000억 달러나 쌓아올렸던 바로 그 외환보유액을 말이다.

지금 이 나라 경제를 관리하는 사람들 중 그토록 철저히 자신을 관리하고 시장의 가려움을 긁어주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4년 전 무엇이 그리 급하다고 우리 곁을 떠나간 고 전철환 총재가 너무나 절절하게 생각나는 2008년 여름의 한국 경제다.

장경순/경제전문기자 kschang@dailyseop.com


출처: http://www.dailyseop.com/section/article_view.aspx?at_id=84777
餘心 (dh8972)

조선일보의 내공빨로 여기까지 날려 온 공돌이 입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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