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왔어요.
연말연시 공휴일을 게으르고 즐겁게 보냈고 개강을 해서 조금 바빴지만, 자연재해(?) 덕분에 글 올릴 시간이 생겼습니다 ㅎㅎㅎ ㅠ.ㅠ
먼저 제가 얻어 먹은 음식 사진입니다.
우리 동네 젊은 엄마 한 분이 명왕중학교 한국인 엄마들을 초대해 주었어요.
나이 마흔에 노산으로 낳은 둘리양이 중3이라 흰머리 가득한 저를 젊은 엄마들 모이는 자리에 불러주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지난 번 인터내셔널 나잇 행사에서 알게 된 분들과 다시 만나 반갑기도 했고, 예쁜 집으로 이사했다며 초대한 집주인의 야무진 음식 솜씨도 저를 정말 즐겁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요크셔 푸딩과 비슷한 식감이었던 브라질 치즈 빵
크림 치즈와 함께 먹는 훈제 연어
발사믹 소스를 막 멋지게 뿌린 프로슈토 말이
새우와 채소를 넣은 파스타 요리
유즈...? 머라던가...?
와사비 맛도 나고 상큼한 그 머시기를 스테이크 위에 올리니 고기맛이 더 살아나고 퍽퍽하지도 않아서 맛있더군요.
이건 저도 물어보고 따라 사야겠어요 :-)
살 찔 걱정 하지말고 많이 드시라는 의미로 마녀수프 부터 시작하는 코스요리를 준비했더군요.
하여간 센스 만점인 이 엄마도 명왕성의 새로운 인재입니다.
더 친하게 지내면서 그녀의 솜씨를 소개하고 싶지만, 저보다 열 여덟 살이나 어린 분이라 아마 제가 좀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조심조심 살살 친하게 지내려구요 :-)
맛있는 음식과 후식까지 먹으면서 다섯 명의 엄마들이 정말 즐겁게 수다를 떨었어요.
모두들 중학생과 그 위 또는 아래로 아이를 둔 엄마들이어서 열 명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이런 결론에 도달했어요.
모든 아이들은 다 다르다!
저마다 다른 성격과 성향을 가진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획일적인 목표를 심어주려하고 획일적인 방법으로 키우려하는 건 아닌지, 제 자신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어서 그 날의 수다는 즐거운데다 유익하기까지 했어요.
직장을 다녀서 바쁜 아이 친구 엄마와도 수다는 이어집니다 ㅎㅎㅎ
집에서 멋진 요리를 해서 초대하지는 못해도 카페에서 커피와 케익을 먹으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고, 어른들의 이야기도 나누고...
이 날 만난 분은 코난군의 친구 엄마여서 고등학생 아이들의 입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지나고 이제 학기가 시작해서 슬슬 발동이 걸리나 싶던 어느날 이런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저희 명왕성은 물론이고 미국 동부 전역에 눈과 얼음비와 엄청난 추위가 몰려온다는군요.
기온이 섭씨가 아닌 화씨로도 영하 (화씨 0도는 섭씨 영하 18도)가 된다는 것만 해도 겁이 나지만, 그보다도 폭설과 얼음비가 내리면 지하에 묻혀있지 않고 전봇대에 걸쳐있는 전기선이 끊어져서 정전이 된다는 것, 피해지역이 넓을수록 복구공사는 더 오래 걸릴 것, 도로가 위험해서 따뜻한 지역으로 피난을 갈 수도 없다는 것, 등등 그 모든 가능한 예측이 비관적입니다.
열 여섯 개 주의 주지사가 비상사태를 선언하고 미리 대비하라는 지시가 방송과 이메일과 소셜미디어에서 나오고 있어요.
저희집은 자가발전기가 있어서 휘발유를 가득 채워두었지만 비상용이라 용량이 크지 않아서, 아마도 방 하나에 히터 하나를 켜고 온가족이 모여있어야 할 것 같아요.
수도가 얼지 않으면 화장실 사용은 할 수 있겠지만, 전기로 가동하는 주방 가전, 전기로 데우는 온수, 전기가 없으면 덩달아 없어지는 와이파이... 이런 불편함이 곧 다가올 겁니다.
작년 이맘때도 명왕성에 눈이 많이 와서 사흘간 정전이 된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다행히도 도로 사정은 나쁘지 않아서 제 직장으로 온가족이 피난간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눈 뿐만 아니라 프리징 레인 이라고 하는 얼음비가 내리고 기온은 섭씨 영하 18도까지 내려가서 일주일 내내 오르지 않는다고 하니, 차를 몰고 피난할 생각은 접고 집안에서 버틸 작전을 세워야 합니다.
밥은 휴대용 가스버너에 찜솥으로 데워 먹을 수 있게 유리 그릇에 담아 놓았어요.
(저희집은 가스렌지가 없어요)
오븐이나 에어프라이어로만 조리할 수 있는 냉동 식품도 미리 만들어 두었어요.
휴대용 가스버너에 후라이팬을 올리면 데워먹을 수 있겠죠?
냉장고에 든 우유나 요거트는 전기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베란다에 꺼내놓으면 되니 안심...
하고 또 뭐가 있나 하고 살펴보다 발견한 이것은, 남편이 어제 사온 스테이크 고기!
아니 이 사람이 뭔 정신으로 이 시국에 고기를 샀담?
했다가 아하~ 하고 깨달았어요.
우리에겐 야외용 가스 그릴이 있었다는 것을요 :-)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더니, 정전이 된 김에 바베큐를 해먹어야겠다는 것이 남편의 생각이었나봐요.
수돗물은 나오겠지만 정수기 물은 전기가 없으면 안나오니 마실 물을 받아두었구요...
빨래도 다 해놓고, 청소기로 청소도 해놓고, 바깥에 둔 쓰레기통이 얼어서 뚜껑이 안열릴 수 있으니 집안의 모든 쓰레기도 미리 다 비워놓고...
이렇게 준비를 하니, 마치 집에 손님을 초대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네... 게으른 저는 집에 손님이 오셔야만 청소를 하거든요... ㅎㅎㅎ
오늘 저녁부터 눈이 내리고 내일 새벽부터는 눈이 얼음비로 바뀌고...
저는 아마도 내일부터 전기 없고 와이파이 없는 전자기기 디톡스 모드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많이 불편하겠지만, 덕분에 컴퓨터 안켜고 (그래서 일도 안하고)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추우니까 함께 모여있어야죠) 며칠이나 이어질지 모르는 조용한 나날을 보낼 것입니다.
걱정마세요.
우린 추위와 싸워 이길거에요.
하이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