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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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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얻어먹다

| 조회수 : 2,561 | 추천수 : 219
작성일 : 2010-06-30 16:26:59
“안녕하세요!”
할머니 열댓 분이 앉아서 비닐하우스 옆에서 점심 식사를 하고 계셨다. 아이가 할머니들을 향해 크게 인사를 했다.
“여기 와서 밥들 먹어.”
시간을 보니 12시 5분. 할머니 한 분이 밥 한 그릇을 퍼서 주셨다. 옆으로 작은 가스통과 압력밥솥이 보였다. 아예 밥을 해 드시는 모양이다. 그런데 일부분은 찬기에 도시락을 싸갖고 오시기도 했다.
반찬은 콩나물무침과 마늘순 간장절임, 그리고 쌈장. 통에 든 쌈장말고는 다른 반찬은 조금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미 식사를 끝내는 중이었던 것이다.
다 드신 할머니가 당신 젓가락을 옷에 쓱 문질러서 내미셨다. 아이는 처음에는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콩나물을 얹어서 맛나게 밥을 먹었다. 우리에게도 민박집 아주머니가 싸주신 주먹밥이 있는데 싶었지만 아이에게 좋은 경험이 된다 싶어 같이 나도 거들었다. 할머니들은 어디서 왔냐, 몇 학년이냐, 이렇게 밥을 잘 먹으니 예쁘다는 등 한마디씩 하셨다.
“이렇게 잘 먹는데, 예쁘기도 하지. 추접스럽다고 안 먹을 수도 있는데, 세상에나 예쁘기도 하지.”
당신 손주를 보듯 할머니들은 밥을 퍼 먹는 아이를 대견스러워하셨다. 사실 나도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다. 간혹 등산길에 과일이나 과자 등은 얻어먹은 일이 있어도 길에서 할머니들 점심을 얻어먹은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한 할머니가 당신이 먹던 대접에 압력밥솥에 있던 밥을 넣더니 남은 콩나물과 쌈장을 넣고 쓱쓱 비벼서는 아이에게 내미셨다. 밥 비빈 수저를 턱하니 꽂아서는. 물론 그 수저는 당신이 드시던 수저다. 밥은 대접 한 가득이다.
순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사실 집에서 아이는 까탈스런 편이다. 삼겹살을 제일 좋아해 아침에도 삼겹살을 구워야 할 때도 있다. 당연히 나물반찬만 있으면 입도 안 댄다. 그런 아이가 나름 분위기를 파악해서 한 그릇을 먹는다 생각했는데 저건 또 어쩌나. 평소 아이가 콩나물을 좋아했던가? 그러고 보니 남은 콩나물도 아예 다 넣고 비비는 바람에 아이는 쌈장을 찍어먹고 있던 중이었다. 아이가 안 먹으면 내가 저 밥을? 아찔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갔다. 안 먹는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먹다 남길 수도 없고.
그런데 아이는 볼이 맬 듯 정신없이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본 할머니들은 또 아이 칭찬을 늘어놓으신다. 아침밥을 적게 먹고 오래 걸어서 배가 고프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두 번째 비빔밥 그릇까지 다 비워내다니! 아이가 밥을 먹는 동안 이미 식사를 마친 할머니들은 모두 애만 쳐다봤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배낭에서 육포와 껌을 꺼내 할머니 한 분 한 분에게 일일이 나눠드렸다.
할머니들과 헤어지고 나서 길을 걷다 물었다.
“너 아까 그 밥 맛있었어?”“그럼 어떻게 안 먹어요?”
“그래도 먹기 좀 그렇지 않았어?”“배고팠잖아요!”
아이는 스스로 큰다.
6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푸르른날
    '10.6.30 11:56 PM

    수필 읽는 듯
    잔잔한 글 잘 읽었어요
    아드님 너무 의젓하네요
    저도 언젠간 올레길 아들 둘 데리고 걸어보고 싶은 마음 드네요

  • 2. 올리브나무사이
    '10.7.1 9:34 AM

    감사합니다. 여름방학 때 덥지만 한낮 피해서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아주 뜻깊은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 3. 해피맘
    '10.7.1 10:26 PM

    아이는 스스로 큰다!! 눈물이 핑 도네요..
    맞아요,아이들은 뭘 가르치려하면 저만치 뒤로 물러나는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두면 될것을 ,그냥 바라봐 주면 될것을 .....놓아주는게 쉽지 않네요.
    참 멋진 엄마세요.
    엄마가 된다는건 ,존중받는 엄마가 된다는건 쉽지가 않은 일인가봐요.
    뭔가를 채우는건 쉬운데 비우는건 많이 힘드네요.
    좋은 추억 많이 만드세요.

  • 4. 올리브나무사이
    '10.7.1 10:44 PM

    그냥 바라보기의 어려움. 기다리기의 어려움. 참 어렵지요. 엄마는 뒤의 그림자처럼 걸어야 하는 것임을 알면서 때때로 참 쉽지 않지요. 감사합니다.^^

  • 5. 오월의장미
    '10.7.4 4:10 PM

    올리브나무사이님..
    님글꼬박꼬박 챙겨읽고 있어요
    그또래의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공감 많이가고 감동이예요
    혹 걸어가신 올레가 몇코스인지..숙박은 어디서 하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 6. 올리브나무사이
    '10.7.4 6:03 PM

    아, 감사합니다.^^ 제가 아들과 걸은 길은 1코스, 1-1코스, 4코스 일부, 5,6코스, 7코스와 8코스 일부입니다. 그리고 거문오름 등입니다. 숙박은 민박을 했는데요, 4코스에 있는 '세화의집'이라는 곳에서 했어요. 이곳은 여자들만 받는 집예요. 아들이랑 같이 있다 하니 받아줬답니다.^^ 아침밥상이 아직도 그리운 집이지요. 기회가 된다면 꼭 한번 아들과 함께 걸어보시길 권합니다. 정말 잊지 못한 추억을 만드실 거예요. 단, 남편은? 전 남편은 빼고 걸었어요.ㅋㅋ 남편 일정이 안 된 것도 있지만 남편 있으면 다른 색깔의 여행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루라도, 그냥 둘이 걸으시고, 그 다음에는 오월의장미님 혼자 걸어보실 기회를 꼭 가져보시길 권합니다. 더 궁금한 것 있으시면 다시 댓글 달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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