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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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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 한 잔과 할머니 도시락

| 조회수 : 2,496 | 추천수 : 198
작성일 : 2010-07-08 15:24:39
슬슬 배가 고파 오는데도 식당이 보이지 않아 조바심이 났다.
식당을 찾아 길을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도시처럼 식당이 곳곳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예쁘고 환상적인 바닷가 길을 따라 얼마를 가자 야자수숲이 보였다.
거대한 야자수들이 하늘을 향해 일렬종대로 서 있는 이국적인 풍경 아래,
바람이 씽씽 부는 바닷가 옆에 천막이 보였다.
바로 할머니 한 분이 멍게와 해삼, 막걸리, 사발면 등을 팔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신이 나서 달려갔다.
“할머니, 사발면 두 개 주세요.”
“어쩌나, 사발면이 한 개밖에 없는데.”
“그럼 삶은 계란 주세요.”
“그것도 다 떨어졌는데.”
“네?!”
“오늘은 사람들이 많네. 다른 때는 안 팔려서 몇 개 안 갖다 놓았거든.
사발면도 딱 두 개 갖고 나왔는데.”
세상에, 사발면 두 개를 팔려고 갖고 나오셨다니 할 말을 잃었다.
하는 수 없이 사발면 한 개를 시켜 아이만 먹게 했다.
해삼과 멍게가 있었지만 그걸 혼자 먹고 싶은 생각은 나지 않않았다.
옛날 시골에서 농사짓던 어른들이 막걸리 한 잔 마시면 허기가 가신다는 말이 생각났다.
“저, 막걸리 한 잔도 파나요?”
할머니는 아예 막걸리 한 통을 갖다 주시면서 먹을 만큼 먹으라고 했다.
“어휴, 배고파서 먹는 건데요.”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면서 아이가 먹는 사발면에 눈독을 들이지만
아이 역시 배고픈지라 정신없이 먹어대고 있다.
“배고프나?”
아이가 먹는 것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내가 안쓰러웠던지 할머니가 물었다.
“여기 내가 먹으려고 싸왔던 거 먹고 남은 건데 먹다 남은 상추랑 있으니 줄 테니 먹지.”
할머니가 당신 찬합에서 밥을 덜어주셨다. 반찬은 상추 3장과 쌈장, 그리고 김치가 전부.
그걸 먹는데 꿀맛이었다. 앞으로는 바닷바람이 불어대고 등 뒤로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할머니는 파는 밥이 아니라며 한사코 사발면 값과 막걸리 한 잔 값만 받으셨다.
마침 배낭에 한라봉이 들어있어 한 개를 꺼냈더니 그것마저 됐다 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테이블 위에 놓고 일어나야 했다.
길을 걷지 않고는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제주의 정. 그것은 투박하지만 깊다.

*아들과 함께 제주올레길을 걸으면서 일어났던 일들을 적고 있는 중입니다.
또 할머니 밥을 얻어먹은 이야긴데요, 아이와 함께 길을 걷다 보니 이런 에피소드가 적잖네요.^^
이번 여름방학 때 아이와 함께 길을 걷는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sessi
    '10.7.8 4:27 PM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아랫글 읽다가 뒤로 돌려서 처음 올리셨던 글부터 다 복습했어요.
    저도 바로 아들이 크면 꼭 같이 하고 싶은 것의 목록 중에 제주 올레길 걷기를 올려놓았답니다.
    우리아들 지금 4살이고 내년에 동생을 보게 되는데,
    나중에 우리 아들 크면 남편이랑 둘째 떼어놓고 둘이서만 여행 해보고 싶다는 생각 들었어요.
    넘 멋지게 사시는 거 같아요.
    글도 잘 쓰시고.
    연재 계속 부탁드립니다

  • 2. 올리브나무사이
    '10.7.8 5:27 PM

    아이고, 감사합니다. 좋은 계획이시네요. 4살인 데다 동생을 본다... 힘드시겠네요. 그렇지만 행복하시죠? 4살, 정말 예쁜 나이네요. 담주에 책이 나올 예정인데요 무엇보다 아이 키운 이야기가 줄줄이 들어있답니다. 아이 키우다 보면 눈물 빼고 가슴이 먹먹해질 때 참 많은데 이제 좀 커서 그런지 올레길 걷고 온 다음 애가 훌쩍 큰 느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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