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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제 목 : 엄마와 커피

| 조회수 : 15,028 | 추천수 : 5
작성일 : 2019-03-25 22:43:55


막 설거지를 끝낸 엄마가 기름때가 앉은 타파웨어 통에서 장미 무늬가 그려진 도자기 손잡이 티스푼으로

커피 , 프림 , 설탕 순으로 듬뿍듬뿍 담아 커피를 탄다 . 이가 빠져 보기 흉한 프랑스산 루미낙 잔에 .


익숙하고 여유롭게 커피를 들고 개수대 앞에 깔아 놓은 작은 러그에 쭈그려 앉아 싱크대에 기대어

진득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긴다 . 캬 ~

 

‘ 엄마 , 예쁜 잔에 타서 마셔 , 그리고 제발 식탁에 앉아서 마시면 안 돼 ?’

딸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

 

‘ 나는 이 잔에 마셔야 제일 맛있더라 . 그리고 , 이 자리가 보일러 시작하는 자리라 진짜 따뜻해,

나는 이러고 마시는게 좋아!'

엄마도 지지 않고 대답한다 .


 

안성기 아저씨가 광고하는 맥심커피는 우아하던데 , 엄마가 마시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안 든다 .

 

‘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

세상의 많은 딸들이 다짐했다 .

 

치열하게 공부하고 , 대학을 가고 , 사회생활을 하고 , 한 번 뿐인 인생 시크하게 살 줄 알았던 꿈 많은 딸은

결혼을 하고 , 아이를 낳고 , 살림을 하게 되니 그 잘난 인생도 엄마의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엄마가 마시던 믹스커피가 진저리나게 싫어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카페인이 절실해졌다 .

 

오늘 설거지를 끝내고 주방을 윤이 나게 닦고 , 커피 한 잔을 들고 개수대 앞에 깔아놓은 푹신한 러그에 앉았다 .

 ( 아파트 개수대 밑에는 보일러 분배기가 있어 난방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따끈한 바닥에 앉아 향이 근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몸이 노곤해 지면서 , 피로가 조금 풀린다 .

 

진주 목걸이를 하고 포근한 니트 가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우아하게 폼나게 마시려고 비싼 커피잔도 샀다 .

커피 광고처럼 .... 인생은 광고가 아니고 실전이더라 .

 

그 예쁘고 좋은 잔도 이가 나가면 차마 버리질 못 하고 내가 마시게 되더라 . 그렇게 되더라 .

그 옛날에 엄마가 향유했던 잠깐의 시간을 이제는 내가 누린다 .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 길게 보면 둥글게 순환한다 .

 




* 사진의 커피는 홈메이드 ‘ 더블 샷 소이 라떼 ’ 입니다 .

30 여 년 전 엄마들이나 현재를 살아가는 딸들이나 믹스커피냐 에스프레소냐의 차이지 , 그녀들이 받는 위로는 언제나 진득한 커피입니다 . -여기 사진 올리다가 혈압 올라요. 정상인 사진을 올려도 옆으로 나오고 , 옆으로 돌려서 올리면 또 그대로 나오고..아, 우리 애들 같아요, 말 안들어요,,




2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크롱
    '19.3.25 10:55 PM

    공감되는 글이네요.
    예전엔 엄마처럼 살지 않을거야......라고 했었는데
    이젠 엄마만큼만이라도 살면 다행인 삶이 되어버린거 같아요

  • 개굴굴
    '19.3.25 11:08 PM

    일 하랴, 살림하랴, 예전 엄마들보다 더 고되고 힘든 시절인거 같은데..
    엄마들은 그 나름대로 또 힘들었겠죠? 이런걸 왜 결혼 하라고 하라고,
    결혼 하면 애 낳으라고 낳으라고..ㅎㅎㅎ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음모이론이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 2. 화니맘
    '19.3.26 8:21 AM

    흉 보면서 닮는다고 어릴적 엄마의 싫었던 모습으로 ~
    유전자의 힘이기도하고 사람사는 모습이 거기서 거기라는거
    전 이제 다 큰 딸들을 엄마의 눈으로 보면 그래 ~ 너도 엄마나이가되면
    엄마맘을 알거야하게 되네요

  • 개굴굴
    '19.3.26 9:34 AM

    흉보면서 닮는다는 말, 공감합니다. 너도 나이 먹어봐라~ 하던 엄마 말씀.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있지만, 고단한 엄마들의 삶을 딸들이 이어가네요.

  • 3. 제닝
    '19.3.26 10:17 AM

    우리집도 주방 싱크앞에 제일 따닷한 곳이라 엄마랑 나물 다음거나 손질할 때 거기 앉아서 해요 ^^
    폭신한 매트도 있어서 엉덩이 살 없는 울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곳.

  • 개굴굴
    '19.3.26 11:43 AM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군요. 우리도 거기서 마늘까고 그랬죠.

  • 4. 산하
    '19.3.26 11:56 AM

    젊어서 엄청 고생한 울엄마 이제는 좀 편하게 쉬엄쉬엄 살아도 되는데
    몸에 탑재된 생활력이 가만히 안 있죠.
    사십후반이 나보다도 더 부지런하고, 엄마집가면 주방 그 자리에 앉아서
    꼬지락 거리고 있어요 명당이라네요.

  • 개굴굴
    '19.3.26 6:47 PM

    다들 그 자리를 아시는군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찾아가게 되는 마성의 자리네요.

  • 5. 목동토박이
    '19.3.26 6:06 PM

    그러게 말입니다. 오십 가까이 살고보니 나도 엄마의 삶과 그닥 다르지 않더라는 걸 발견하게 되네요. 그저 자식 잘 키우고 식구들 건강하면 된다던 엄마의 이야기가 고리타분하기 그지 없었는데, 그 말이 맞고, 잘난척하고 돌아다녀봤자 인생 별거없단 생각이 듭니다.
    커피... 저도 원래 안 마시던 커피를 육아와 함께 시작했지요. 십수년 마시던 커피를 최근에 고혈압때문에 끊었습니다. 가끔 그 진하고 달달한 커피가 그립네요.

  • 개굴굴
    '19.3.26 6:48 PM

    커피를 끊으셨다니 슬프네요. 고리타분한 엄마 얘기가 와닿는걸 보면 우리도 중년인거죠. 쓸쓸하네요.

  • 6. 생강나무꽃
    '19.3.26 11:43 PM

    저번 소고기 냉채 레시피 정말 고마웠어요. 모처럼 친정집 나들이에 요긴하게 맛있게 먹었어요. 여기 감사인사 드리니 빚갚은 기분이네요 ^^*

  • 개굴굴
    '19.3.30 8:39 AM

    맛있게 드셨다니 너무 감사해요!

  • 7. 맘처럼
    '19.3.27 9:53 PM

    글 재미나게 읽었어요~~ 집에서 라떼 부럽네요 맛나게 드셨나요? ^^

  • 개굴굴
    '19.3.30 8:40 AM

    이제는 커피 없이 못 살아서 라떼도 에스프레소도 아메리카노도 다 맛있게 먹어요. 두유로 라떼를 만드니 쌉쌀하고 좋네요.

  • 8. 제인
    '19.3.28 2:42 PM

    글을 참 잘쓰시는거 같아요.

    수필집이나 에세이집 내보시는거 추천해요. *ㅁ*

  • 개굴굴
    '19.3.30 9:25 AM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 9. 우리집막내
    '19.3.28 10:44 PM

    무심히 읽어 내려오다...
    아... 하다가... 울컥! 울어버렸어요ㅠㅠ
    쓰신 글들이 영화처럼, 마치 지금 보고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글이 참 따뜻하네요...

    저는 다음생이 있다면 우리 엄마의 엄마로 태어나고 싶어요
    그래서 동네친구들 책보 메고 학교가는거 울면서 보고있지 않게 해줄거에요
    좋은 옷도 사주고, 예쁘게 머리 묶어주고, 사랑도 연애도 맘껏 하게 할래요...

  • 개굴굴
    '19.3.30 9:26 AM

    제 글이 마음을 움직였다니 제가 더 따뜻합니다. 엄마가 막내님께 사랑 많이 주신게 느껴지네요. 어머님의 어린시절을 안아주고 싶네요.

  • 10. 설라
    '19.3.31 10:05 AM

    흐믓한 미소가 절로 ~~.

    지금 제모습은
    거실 바닥에 1인용 전기 매트 깔고
    3박자 커피 마시며
    "대화의 희열2" 배철수 편 티비 보면서 82쿡
    저도 한때는 ~~~기냥 웃을래요 ㅎ.

  • 개굴굴
    '19.4.2 12:32 AM

    아. 따스하니 티비 보면서 졸아야 엄마의 완성이죠~

  • 11. 프리스카
    '19.3.31 12:31 PM

    연탄아궁이에다 밥솥 올려 놓으시고
    아야 뜸들이니 타는가 냄새 잘 맡아라 하시던
    우리 엄마는 옛날 주택에서 사시다 일찍 가셔서
    생전에 커피 잡수시긴 했었나도 모르겠네요.
    따뜻한 글 잘 보았습니다.

  • 개굴굴
    '19.4.2 12:33 AM

    아궁이로 어린시절을 보내셔서 그런지 글과 요리가 다 구수하십니다.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 12. 테디베어
    '19.4.4 8:54 AM

    엄마와 커피 한편의 수필입니다.^^
    울엄마는 어린? 초등중등 우리 삼남매에게 커피를 끓여주셨네요 ㅠㅠ 맛있었어요 ㅎㅎ

  • 개굴굴
    '19.4.4 1:02 PM

    와, 좋은 엄마를 두셨네요. 저는 어릴 때 한 모금씩만 맛보게 하셨는데. 어릴 땐 참 맛있더라구요.

  • 13. 백만순이
    '19.4.4 9:47 PM

    우리 애들 같아요! 말 안들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는 엄마를 안닮았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마흔 넘으니 딱 그맘때 엄마네요! 어쩌겄어요~ㅎㅎ

  • 개굴굴
    '19.4.4 11:46 PM

    참 신기하죠. 엄마에게서 안 닮고 싶은건 기막히게 닮아가네요. 여기 싸이트가 부활하려면 시스템을 손봐야할텐데요. 글 수정하면 사진 날아가고, 사진 수정하면 글 날아가고. 하아. 백만순이님은 어찌 그리 평온하게 올리시는지.

  • 14. 원주민
    '19.4.12 5:28 PM

    공감 100%.. 좋은글 감사합니다~~

  • 개굴굴
    '19.4.14 8:34 PM

    저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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