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jkl123.com/sub5_1.htm
이준구 교수님 홈페이지.
앞으로 동사무소에서 저소득층 급식비를 처리하게 됨으로써 전면 무상급식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설 땅을 잃게 될 것이라는 뉴앙스의 글이 아래에 올라 와 있군요.
나는 이 점에 대해 글쓴 이와 약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급식비를 처리하게 만든 것이 현행 제도에서 진일보한 것임은 사실입니다.
글쓴 이가 말했듯, 학교에서 학생들이 누가 저소득층 급식 해당 당사자인지 모르게 될 테니까요.
그러나 이 조처가 문제의 완전한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일반적으로 사회복지제도의 혜택을 받는 사람은 이 사실에 대해 수치심을 느낀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현상을 welfare stigma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들이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남들의 손가락질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주요한 원천은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 즉 자괴심(自愧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잘 못 해서 사회의 도움을 받았으니 자괴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은 그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만들어야 사회에 의존하려는 나쁜 버릇을 고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이 점과 관련해 우리는 빈곤이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의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습니다.
빈곤이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냐 아니면 사회의 책임도 일부 있느냐에 따라 welfare
stigma 현상에 대한 견해도 달라질 테니까요.
예컨대 빈곤이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라고 본다면 수치심을 느껴도 어찌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겠지요.
언젠가 내 제자가 나에게 잘문을 해왔습니다.
"선생님, 보수와 진보 사이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빈곤이 순전히 개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면 보수인 것이고, 사회의 책임도 일부 있다고 생각하면 진보라고 생각하네."
물론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기준이 이것 말고도 여럿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경제학자인 나로서는 이 점이 가장 핵심적인 차이인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묻는다면 나는 사회에도 책임의 일부가 있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물론 여러분들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자유가 있습니다.)
따라서 나는 사회복지제도의 헤택을 받는 사람이 느끼는 수치심을 최소화해줄 필요가 있다고 믿습니다.
수치심을 느껴야 거기서 벗어나려 노력할 유인이 생긴다는 점에서 보면 수치심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수파의 이와 같은 주장에 일리가 있음을 인정하지만, 난 그 주장에 동의하고 싶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의 인간적 존엄성이 더 귀중한 가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회도 빈곤에 대해 부분적인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의 인간적 존엄성을 지켜줄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동사무소에서 저소득층 급식비를 처리하게 되면 남의 손가락질을 받음으로써 생기는 수치심은 확실하게 줄어들 것입니다.
그러나 자괴심에서 나오는 수치심은 그대로 남습니다.
어린이라 해서 자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사회의 도움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제도가 도입된다 해서 전면 무상급식 실시의 당위성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구태여 '가치재'(merit goods)라는 개념을 적용해 모든 어린이들에게 무상급식을 실시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그런 수치심이 발생할 소지를 아예 없애 버리자는 데 있습니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을 적용해 무상급식을 하게 된다 해도 수치심이란 측면은 그대로 남으니까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이 가치재인 급식을 무상으로 떳떳하게 소비할 수 있게 만들어 주자는 것이 내 의도입니다.
그렇다면 의무교육에서의 급식이 가치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 의문으로 남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나름대로 확신을 갖고 있습니다.
즉 가치재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음을 굳게 믿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나와 다른 생각을 얼마든 가질 수 있음은 인정합니다.)
무상급식을 받는 어린이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해서는 결코 안 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빈곤에 대해 하등의 책임이 없다는 점이 바로 그것입니다.
빈곤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게 죄가 될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어른들이 아무 죄도 없는 그들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결코 공정한 일이 아닙니다.
나도 명색이 경제학자인데 무상급식에 비용이 따른다는 걸 모르겠습니까?
이 나라의 새싹들이 부당한 수치심을 느끼지 않고 해맑게 자랄 수 있다면 그 비용은 얼마든 정당화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무상급식에 찬성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것보다 한강에 분수 만들고 선착장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무상급식에 계속 반대하시면 됩니다.
정말 알기쉽고 똑 떨어지게 써주셨습니다.
개편이전의 자유게시판으로 열람만 가능합니다.
무상급식에 대한 좋은 견해.(펌)
음 조회수 : 325
작성일 : 2010-12-25 13:25:43
IP : 203.130.xxx.160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
'10.12.25 1:33 PM (125.187.xxx.175)항상 명료하게 글 써주시는 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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