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시어머님도 나쁜 분은 아니셨는데 저는 형님 복이 있나봐요.
시부모님이 계실 때는 두 분다 너무 연로하시고 또 무능하셔서...저희가 보살펴 드리는 일이 좀 버거웠어요.
말로 저를 상처 주는 일은 거의 안 하시는 분이었지만 모든 것을 아들 며느리에게 의존하시는 분..
만날 때마다 여기 저기 아프다고 아이처럼 그러시는 부모님들이 며느리인 제게는 좀 어려웠지요.
결혼 할 때, 단 한 푼도 도와주실 수 없을 만큼 가난하셨고..축의금 들어온 거 다 가져가셨고..거기다가 빚까지 남겨주셔셔 신혼 시절에 시댁에 용돈 외에도 시어머님 빚 갚으실 돈 매달 보내드리느라 늘 통장잔고 생각하며 불안해했을 때는 없어도 너무 없는 시댁을 원망한 적도 있었어요.
처음에 남편이 손 잡고 자기 집 보여주러 가는데..태어나 처음 보는 산동네 꼬불꼬불 올라서 판자집 같은 시댁을 보는 순간 앞이 캄캄했지요. 어두운 방에서 시어른들이 계시는데 태어나 처음 보는 연로하신 어른들..제 나이가 적지도 않은데 적잖이 충격이라서..남편 손만 그저 꼭 쥐었습니다.어찌어찌 식사 대접을 받고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5시간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남편이 안스럽고..이런 집에 시집을 가야 하나..자신 없고..
여기에 아마 글 올렸으면 다 헤어지라고 하셨을 그런 악조건이었습니다.
남편 하나 보고 결혼했어요. 사천 오백짜리 전세집 얻고 꼭 필요한 것만 준비해서..
그래도 역시 생활은 생활이라..시댁 생활비 대며 살아가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더군요. 하지만 더 힘든 것은 외아들에게 거는 정신적인 기대가 너무 큰 시어른들 보는 일이었습니다. 특히 어머님의 아들 사랑은 정말 지극한 것이었지요. 어머님 살아계실 때, 저는 늘 "이렇게 이쁜 아들 며느리에게 주셨으니..저런 마음 드실 만하다. 어쨌거나 지금은 이 남자가 나를 위해 살아주니 내가 그냥 눈 감고 넘어가자" 이렇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던 어머님이 떠나가신 지 이태가 지났네요. 그런데 제게는 새로운 시어머님이 생겼답니다. 우리 남편과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손위시누님께서 저를 며느리처럼 챙겨주시네요. 그전에는 서로 바빠서 잘 못 만났고 명절 때 작은 선물 좀 보내드리는 게 고작인데 시어머니 떠나가신 후부터 철철이 손수 만드신 김치랑 국거리랑 양념거리를 계속 보내주세요. 시어머니에게도 못 받아보던 일이라 처음에는 어찌해야 하나 당황스러웠는데..비록 미원 맛 나는 음식이긴 하지만 형님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제 생일 때에도 어김없이 전화 주시네요 "자네 시어머니 대신 나라도 챙겨야지" 그러시면서요.
오늘이 제 남편 생일인데 상차릴 때 쓰라고 새로 담근 부추김치랑 깍두기랑..제가 좋아하는 쑥국을 보내셨어요. 국은 1번 먹을 양 만큼 비닐에 넣어 냉동해 주셨네요. 사실 국이든 뭐든 너무 짜서 제 입에는 안 맞는데..전 무조건 맛있다고 전화드립니다. 사실 생일이라 미역국 많이 끓여놨기 때문에 국은 다 냉동실로 직행했네요.
누나로서 남동생 챙기는 마음도 감사하지만 저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으시니..고맙습니다. 사실 제가 형님 며느리도 아니고..제가 형님에게 귀염 받을 짓 하는 올케도 아닌데..(시어른을 제가 지극히 모신 것도 아니니..)
돈 없고 가난한 남편 만나 10년간 내 집도 없이 살지만..그래도 참 감사합니다. 돈 많은 시댁 이야기 재산 물려주는 시부모 이야기 들으면 부러운 것도 사실이지만..제 처지도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전생에 제가 형님 며느리였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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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형님 이야기에요.
감사 조회수 : 1,042
작성일 : 2009-04-12 21:55:47
IP : 211.109.xxx.212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우와...
'09.4.12 10:08 PM (203.100.xxx.74)국 한번 먹을만큼씩 싸서 보내주신다는 거
보통 정성 아닌 건데... 좋으시겠어요...
근데 좀 짜면 녹여서 다시 끓일 때,
우거지된장국이면 다른 야채(시금치 등등)를 더 넣어서 끓여보세요.
전 친정엄마가 갈무리해서 보내주셔서 잘 먹습니다.
행복해 보이세요 ^^2. ....
'09.4.13 3:30 AM (118.221.xxx.157)살아보니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은 사람이더라구요
사람에게 사랑 받는다는 느낌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을듯....
아마 원글님도 그 만큼 무던 하시니 형님도 마음을 쓰시겠지요....
보기 조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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