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화는 지는데"
제 3부
나는 병원지하의 어떤 방으로 안내 받아 들어갔다. 거기에는 의사 두 명과 간호사 두 명 등 모두 네 명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병원)과 연락하여 그곳에서 나온 진찰 결과물을 갖고 있었다. 나는 아내를 치료했던 여 의사는 왜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그 의사는 이미 그곳을 그만두었다고 그들은 말했다.
간호사가 진료기록부를 한 의사에게 전달했다. 그것을 보면서 의사는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아내가 앓고 있는 암은 위암인데, 세계적으로 희귀한 암이라고 했다. 보통은 위 안 쪽에서 암이 시작하는데, 아내의 경우는 위 안 쪽과 바깥 쪽 사이의 벽 속에서 발생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위의 안에서도 보이지 않고, 밖에서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위장에서 시작한 이 암은 위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 이미 식도에까지 퍼져 있었다. 식도에 퍼진 후 식도를 막아서 음식물이 식도를 통과하기 힘들게 만든 상태였다. 그래서 항상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면 목에 무엇인가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을 때, 왜 그런 말을 무시했는지 나는 따져 물었다. 그 당시 상황으로 보아 간이 중요했기에 아마 의사가 그 쪽까지는 신경을 쓰지 못했을 것이라고 의사가 말했다. 그러면서 신문이나 방송 같은데 이런 사실을 알리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가 돈에 욕심이 있었다면, 좀 더 알아보고 어떤 조처를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내가 죽어가고 있는데, 그런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또한 그때 깨달은 것이 결정적인 순간에는 정말로 필요없는 것이 돈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생각하면 의사가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고, 의사의 입장으로 보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병원을 떠나 다시 **병원으로 왔다. **병원에 와서 의사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이런 경우에는 위장을 X-ray로 찍으면 나타난다고 **병원 의사가 말했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후, 아내는 한 동안 창밖을 내다보고 아무 말이 없었다. 원통하기도 하겠지만, 죽을 운명 앞에 과거를 따져서 무엇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드는 듯 했다. 하지만 아내는 자기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산다고 했다. 나와 아이를 두고 자기가 죽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런 경우 대부분 공식이 있다고 한다. 처음에는 "설마 암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 다음 암이라고 밝혀지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기는 죽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시기를 놓친 암 환자는 대부분의 경우 죽음을 맞이한다.
"어떤 사람이 암에 걸려서 얼마 동안 앓다가 죽었다."라는 말은 한 문장으로 대단히 간단한 문제다. 하지만, 그 환자와 그 가족 간에는 하루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 한 시간이 괴뇌와 번뇌의 시간이요, 피를 말리는 일 분 일 초다. 80이 된 노인도 죽는다는 것은 엄청난 두려움을 동반한 공포다. 하물며 그의 반밖에 안되는 40세의 내 아내에게 있어서야, 살고 싶은 욕망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아무도 대신 아파 줄 수도 없고, 대신 죽어줄 수 없는 것이 병이다. 길 위를 뛰어가는 아이는, 자동차에 치이지 않도록 쫓아가 부모가 구해올 수도 있고, 아이를 구하고 대신 죽어줄 수도 있지만, 모든 고통을 감수해야 하고 결국 죽어야 하는 것이 본인인 것이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의 서글픈 운명이다.
며칠 후부터 아내는 죽는 날까지 아무 것도 목구멍으로 넘길 수 없었다.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모든 것을 포도당과 링겔 그리고 특수한 영양제를 주사 맞고 살다가 죽었다. 목이 마르면 입에 물을 넣에 헹궜다가 뱉았다.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이 있다. 당장 내일 죽더라도 무엇인가 좀 실컷 먹어보고 죽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물조차도 식도를 통과할 수 없는 상황이니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아내 앞에서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될 수 있으면 이야기도 먹는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텔레비전에서는 먹는 이야기가 자주 나와 우리 모두에게 고통을 주었다. 그럴 때 아내는 복숭아를 사오라고 했다. 아내는 복숭아를 씹어서 혀와 입천장으로 맛을 느끼고 다시 뱉었다. 자두를 사와서 씹어서 혀로 맛을 보고는 다시 그것을 뱉았다. 그리고 울었다. 뱉은 복숭아와 자두를 화장실에 버리면서 나도 펑펑 울었다. 무슨 병이 이런 병이 있나? 무슨 운명이 이런 운명인가? 모든 병 중 최악의 병이 바로 먹을 수 없는 병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되자 여기저기서 암을 고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전화가 오거나, 전단지가 오거나, 이상한 사람들이 돌아다니면서 암환자들의 가족과 접촉했다. 전리품을 찾으려는 허기진 병사처럼, 먹다 남은 시체에서 고기를 찾으려는 하이에나처럼, 이 사람 저 사람이 병을 고치겠다고 환자와 가족을 현혹했다. 현대 의학으로는 고칠 수 없는 병은 자기들이 고치겠다고 했다. 뽕나무 버섯을 먹으면 낫는다고도 했고, 포도 요법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도 했다. 심지어는 벌침으로 치료해서 나은 사람도 있다고 했고, 어떤 목사는 찾아와 기도만이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했다. 그 목사는 기도를 해주고 어떤 약을 2백만원에 팔았다. 절박한 심정의 우리는 무엇이든지 해보려고 했다. 결국 2백만원 주고 산 그 약도, 반의 반도 사용하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렸다.
담당 의사는 어떻든 수술을 해 보겠다고 했다. 위는 모두 잘라내고, 식도 중 암이 퍼져있는 부분을 잘라내고 성한 식도와 창자를 잇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 수술이 성공한다면 아내는 음식을 먹으면 식도에서 바로 창자로 음식물이 넘어가는 것이다. 우리 몸이 적응력이 있어서, 세월이 지나면 어느 정도 창자가 늘어나 위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자주 먹어 줘야 하고, 음식도 죽만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더 좋을래야 좋을 수 없는 것이었다. 죽을 사람이 산다고 하는데, 무엇을 더 바랄까? 병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죽는 병이요, 하나는 죽지 않는 병이다. 다리가 잘려 나가건, 팔이 잘려 나가건, 죽지 않는 병은 병이 아니다. 나을 병은 병이 아니다. 죽을 병만이 병이다!
드디어 수술 날짜가 잡혔다. 수술 담당 의사가 최선을 다해 성공적으로 수술을 하도록, 담당 의사에게 돈을 좀 갖다 주라고 아내가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의사를 찾아가 사실대로 말하고, 돈을 건네 주면서 최선을 다 해 달라고 말했다. 의사는 최선은 다 하겠으나 돈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아내에게 이런 사실을 말했더니, 아내는 시무룩해졌다. 아마도 자신이 없으니까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수술대로 들어가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아내는 덜덜 떨고 있었다. 눈동자는 겁에 질려있었으며, 입술은 창백했고 거북이 등처럼 여기저기 갈라져 있었다. 몇 시간이 걸릴지도 모르는 대 수술이다. 의사는 내가 원하면 같이 들어가서 수술 장면을 보아도 좋다고 말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병원 캐리어 위에 흰 천으로 덮여있는 아내가 저 멀리 수술실로 들어가더니 문이 닫혔다.
과연 수술이 성공할 것인가? 아니면 실패할 것인가? 성공이라고 해봐야 모든 위를 잘라내고, 식도의 삼분의 이를 잘라내는 수술이다. 잘못되면 사망이라는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이런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내의 마음은 어떨까? 이 모든 것은 신의 조화인가, 아니면 그저 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 우연히 우리에게 닥친 것인가? 아내는 누구이고 나는 누구인가? 누가 누구인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천당인가, 지옥인가? 아니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가? 나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고, 불교 신자도 아니다. 하지만 제발 성공적인 수술이 되게 해 달라고, 예수님에게도 기도했고, 부처님에게도 빌었다. 그러다가 예수님에게도 욕을 했고, 부처님에게도 욕을 했다.
나는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언제 폭발할지 모를 지뢰를 가슴에 안고, 계단을 오르고 내렸다. 타 들어 가는 가슴과 말라오는 목을 쥐어짜며,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몸을 맡기고 허깨비처럼 되는대로 걸었다. 나는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걸고 싶었고, 닥치는대로 무엇이든지 때려 부수고 싶었다. 검은 색으로 변한 하수구의 썩은 모래를 씹어 하늘에 뱉고 싶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태어나지 말 것을, 태어날 줄 알았다면 하루살이나 되어 태어날 것을.... 봄바람에 지붕 위의 눈이 녹아 고드름에서 물방울 떨어지듯, 고개 숙여 땅을 향한 나의 두 눈에서 방울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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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화는 지는데"(8-3)
... 조회수 : 324
작성일 : 2009-01-08 02:16:02
IP : 121.134.xxx.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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