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입어보고 처음 내복을 입어봤어요.
따뜻하고...뭐 좋네요^^
결혼한지 일년 남짓...결혼하자마자 외국으로 나왔어요.
평생 서울 한복판에서 살다가 시골에서 살아본 것도 처음이고
아파트에서만 살다가 주택에 살아보기도 처음이네요.
여기 날씨는 한겨울에는 한국만큼 온도가 내려가지 않지만
유럽 특유의 스산하고 바람이 옷 속으로 슬쩍 휘감겨 들어오는...
그닥 정직하지 않은 날씨랄까? 온도계와 체감온도가 확연히 다른...하여튼 그래요 ㅎㅎ
집에 있어도 한국처럼 바닥에서 열이 나지 않아 양말에 슬리퍼도 꼭 챙겨 신어야 하고
게다가 주택이다보니 난방을 해도 그 근처만 따뜻하고 열이 잘 퍼지지 않더라구요.
지난 겨울의 끝자락...생전 처음 느껴본 추위에 화들짝 놀라 전기 라디에이터를 구입했지요.
나름대로는 아껴 쓴다고 추울 때만 잠시잠시 틀고 했는데 몇 달 후 전기요금 고지서를 보니..ㅠㅠ
그래서 이번 겨울에는(여긴 벌써 겨울 분위기가 나요. 길에 나가면 다 코트에 목도리...)
라디에이터를 쓰지 않으려 했는데 점점 추워지니 버티기가 어려워지더군요.
워낙 물가가 비싼 데다 요즘 환율도 오르고 해서 가급적 난방비를 줄여보려고
옷도 최대한 많이 입고 잠옷도 두꺼운 것으로 바꿨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어요.
추워서 계속 움츠리고 있으니까 목이며 등도 아프고 부엌이 추우니 밥하러 가기도 싫고..
그러다가 예전에 내복을 입으면 실내온도를 몇 도 내릴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
한국에 계신 친정엄마한테 내복을 몇 벌 사서 보내달라고 했지요.
울엄마..."아니, 한겨울에도 코트 속에 반팔 입고 미니스커트 입던 네가 웬 내복을 찾냐?"
그 말을 들으니 참...결혼 전 내가 정말 철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겨울에도 실내온도는 늘 23~24도에 맞춰놓고 보일러를 줄창 틀고 반바지 반팔로 지내고
여름에는 전기세 걱정하시는 엄마와 싸워가며 에어컨 틀어놓고 잠들곤 했었는데...
유난히 더위에도 추위에도 약한 딸이라 아껴 써라 말도 못하고
아빠는 늘 애들 춥다는데 왜 그러냐, 그런 걸로 잔소리 말라 하시고
관리비 영수증 기다리면서 울엄마가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 생각하니...
지금은 20도에 맞춰놓고 하루에 2-3시간 보일러를 틀면서도 이걸 19도로 내릴까 말까 고민하고
두 개밖에 없는 방에서 움직일 때도 난방기 밸브를 꼭 잠갔다 풀었다 하고
전기 담요도 자기 전에만 잠깐 켜놓았다가 끄고 잠잘 때 수면 양말도 꼭 챙겨 신고
심지어는 집에서 내복까지 입고 있으니 이걸 철들었다고 해야 할라나요?
어제 엄마가 보내주신 소포를 받았어요.
내복 두어벌만 보내달라고 했는데 종류별로 내복 세 벌에(두꺼운 거, 얇은 거 등등..)
두툼한 수면 양말에, 책에, 온갖 먹을 거리까지 큼직한 상자가 도착했더군요.
아들 딸 다 나가 사는 요즘, 울 부모님은 난방이나 제대로 하고 사실런지..
이제 철이 들락말락하는데 부모님께 뭐라도 해드릴 능력이 없네요.
오래오래 사시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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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복과 엄마..
조금은 철든딸 조회수 : 333
작성일 : 2008-11-12 23:06:42
IP : 81.152.xxx.216
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우비소년
'08.11.13 1:51 AM (218.237.xxx.48)부모님 슬하를 벗어나봐야 부모님 사랑이 차고 넘쳤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구요.
자식 낳아보니 나도 내 부모님께 이렇게 귀여운 존재였구나 싶어서 더 마음이 아리구요.
원글님 글 읽고 나니 문득 저희 친정 엄마 따뜻한 슬리퍼라도 한 켤레 사드려야겠다 싶어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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