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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

못난딸 조회수 : 627
작성일 : 2008-10-07 15:54:25
어마어마한 댓글이 달린, 어느 친정엄마가 쓰신 글 보고..
우리 엄마가 하던 말 생각났어요.
내가 결혼 전에 엄마에게 섭섭한 마음을 토로하자(사실 대든 거죠)
"저렇게 하나 하나 다 기억하고 있을 수가 있냐, 부모는 자식이 그렇게 못되게 굴어도 다 잊어버리는데.."
이러셨거든요.
그 분도 자신의 글에 그런 말을 쓰셨기에..

전 그 말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냐면요.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해, 상처 받은 사람이 아프다고 말하는데
상처를 준 사람은 왜 너는 그걸 아프다고 기억하고 있느냐, 난 잊어버렸는데.. 하고 말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였어요.

전 아팠거든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화가 나면 이성을 읽고 따귀를 갈기던 엄마, 저는 뺨도 아팠고 수치스러웠어요.
훔쳐가지도 않은 돈을 나보고 훔쳐갔다고 싸늘하게 쳐다보던 엄마, 저는 정말 억울했어요.
초경을 했을 때 언니에게 해 주던 잔치를 나에겐 안 해주고..생리대 살 돈도 없어 화장실 휴지로 처리하던 내 모습..어디 가서 단 한 번도 말한 적 없구요.
동생이 제 저금통에 있는 돈 훔쳐가서 동생 야단치는데, 저금통을 그 자리에 둔 게 더 나쁘다며 동생을 감싸안고 안방으로 가던 엄마, 저 정말 서운했어요.
물론 엄마가 제게 잘 해주신 점도 기억해요. 그런데 그 때마다 저는 조금씩 의아했어요. 왜 갑자기 잘해주실까..하는 마음이 들면서 불안하기도 했구요.
대학 등록금 대 주시면서 너무 힘겨워하시던 엄마. 물론 절반은 제가 장학금으로 해결했지만 나머지 등록금을 엄마가 준비하실 때마다..너무 죄스러웠어요. 눈치밥이 그런 걸까요?

이밖에도 너무너무너무 많지만, 몇 가지만 엄마에게 말하며 나도 정말 속상했다..이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걸 아직도 일일이 기억하는 너는 정말 독종이다..이렇게 돌아오는 엄마 반응에 더더욱 상처를 입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해요.
시집 와서 남편에게 하나씩 둘씩 이야기하고, 남편은 그저 안아 주고..그러면서
저에게 엄마에 대한 보상으로 이런 좋은 남편을 보내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면서
엄마의 고단했고 힘든 삶을 같은 여자로서 이해하려고 해요.
저희 엄마 고생 정말 많이 하셨어요. 건강도 안 좋아서 죽을 고비 많이 넘기셨구요. 지금도 건강이 안 좋으세요.

무능력한 아버지 만나서, 여자 혼자 몸으로 자식들 대학까지 다 교육시키느라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그토록 힘든 시절, 엄마에게도 스트레스의 해소책이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저였나봐요.
오히려 살림 살랴, 나가서 돈 버시랴 하느라 힘드셨을 엄마..아침이라도 제가 해 드렸어야 하는데..잘 못 해드린 점 죄송해요. 초등학생 때부터는 집안일 도와 설거지 청소는 했는데..그러다보니 도와드리고 싶은 마음보다 하기 싫은 마음이 더 커서 꾀를 부린 적이 많았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나빴어요.

이제는 엄마 미워하지 않아요. 미움보다는 은혜에 고마워하는 마음이 더 크니까요.
가끔씩 아직도 엄마는 돈 문제로 저를 속상하게 하시지만..그 문제는 초월했어요. 자식을 고생해서 키워내면 그 자식이 경제적으로 부모를 공양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니..쉽게 바뀌지 않겠죠.

엄마는 저에게 이제 미안하다고 해요.늙으시니 마음이 약해지시나 봐요.
하지만 저는 그 말을 들어도..그리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아요. 오히려 그런 말 들으면 과거가 떠올라서 그냥 눈물만 흘리고 며칠을 괴로워요. 사냥꾼에게 사냥 당하는 짐승처럼..
그냥 옛날 일은, 힘들었던 시절 어쩔 수 없었던 일이라고 여기고 잊고 살고 싶어요.
저에게 상처를 많이 주셨어도, 저를 낳아서 키워주신 엄마니까. 그 덕에 공부도 하고..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서 제 남편과 제 딸을 만난 거니까. 힘들어도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끼고 키워 주셨으니까..그것만으로도 감사해요.지금 저는 행복하거든요. 엄마에게 살갑게는 못 하지만 그래도 자식으로서의 도리는 기꺼이 하게 되구요. 제 아이를 귀여워해주는 외할머니가 있어서 참 다행스러워요.

그런데..상처는 그대로 있네요. 덮어두고 살 수는 있는데..치유는 안 되나봐요.
그래도 괜찮아요. 엄마가 다시 그 상처를 꺼내지만 않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가능하다면 기억을 이식하는 수술이라도 받아서(겨울연가처럼요), 제게 잘 해주었던 엄마 기억만 남겨놓고 살고 싶네요..

그래도 엄마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IP : 211.109.xxx.157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아마도
    '08.10.7 4:00 PM (125.246.xxx.130)

    딸이라면.아니 자식들은 대부분 다..부모에게 양가감정이 있나봐요.
    서운하고 속상했던 부분들,,,상처받았던 부분들 분명히 존재하고
    때론 야속해서 욱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그 시절 험한 시절 살아오면서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고단하셨을까..먹고 살기 바빠 속속들이 신경 못써준 부모님 맘은 오죽하셨을까..
    하면 부모님 인생도 측은하고 가엾고 그렇죠.
    그 시절을 내가 부모로 살았다면 나는 더 못한 부모였을지도 모르니까요.
    부분적 서운함이야 남아 있지만 세월이 흐를 수록 이해의 폭도 넓어지더군요.

  • 2. 어쩜
    '08.10.7 4:31 PM (125.187.xxx.90)

    저랑 참 비슷하시네요.
    결혼하고 아이도 키우고 나이도 먹고 하니, 엄마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고해서,
    다행히, 어릴때부터 엄마에게서 받았던
    상처들이 많이 치유되기도 하고, 둔감해지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정말 이말은 맞는 말 같아요.
    부모자식간에도 궁합이란게 있다는 말.
    저는, 엄마랑 언니처럼 살갑진 않지만, 그래도 친한편이라고(표면적으로는)
    생각하지만, 문득문득 내뱉는 상처주는 말들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을 키워도,
    적응하기가 힘드네요.
    나중에, 엄마 돌아가시면 조금이라도 후회되지 않게 잘해드리자.. 싶다가도
    아직도 상처주는 말을 무심코 내뱉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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