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시간이 많아 잔잔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어요.
저는 참으로 가난한 농사꾼의 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농사꾼의 집이었으나 땅뙤기 하나 없는 농사꾼. 그러니 하루 하루
쌀 벌어 먹기 위해서 남의 집 일을 해야 했던 부모님이셨지요.
천성이 순하고 착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아래 동생들까지 줄줄이
거기에 자식들까지 먹여 살리고 보살펴야 했던 부모님.
제가 막내이긴 했으나 부모님 손에서 크진 못했지요.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으니까. 그렇게 하루 하루 일하지 않으면
그 많은 식구들 입에 풀칠하기 힘드니까요.
대신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놀았지요.
아직도 생각나요. 할아버지 등에서 잠들었는지 잠에서 깨어보니
할아버지 등에 기대고 있던 제가요.
그렇게 어려운 형편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고
나아져봐야 별 차이는 없어겠지만 그래도 동생들 출가시키고
자식들 좀 커가니 그만큼의 부담은 사라진거지요.
없는 형편에 가르치는 것도 맘껏 못해주는 상황인지라 큰애들은
그리 커가고 그래도 막내는 나이터울도 많고 놀아줄 사람도 없어
안쓰러웠던지 없는 형편이지만 저렴한 초등학교 내에 운영하던
병설 유치원에 저를 보내셨어요.
꼬맹이들 소풍날.
항상 바쁘신 부모님이 어찌 따라오실 수 있을까요.
그날 저는 도시락도 없이 소풍을 갔지요. 어떤 큰 댐 근처였던가.
풀이 무성한 언덕에 옹기종기 앉아 엄마가 싸온 도시락을 펴들고
먹는 친구들.
한 친구 엄마가 저보고 김밥을 먹으라며 챙겨 주셨지만
그 틈에 끼어 아무렇지도 않게 먹기엔 저는 너무 어렸고 낯설었고
엄마가 보고싶었어요.
김밥 한 알을 먹고선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죠. 그 작은 꼬맹이가
마음이 허했어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허했던거 같아요.
삶은 달걀을 싸왔던지 달걀 껍질을 까고 그 하얀 달걀을 베어물던
친구 입이 너무 부러웠어요.
그렇지만 딱 그뿐이었지요. 아빠,엄마가 밉다거나 원망스럽다거나 그렇지 않았어요.
그때의 그 모습이 사진처럼 찰칵 마음에 담겨 있는데
다시 생각해도 부모님이 밉다거나 하지 않았네요.
그리고 그 쪼끄만 것이 뭘 안다고 집에 가설랑은 잼있게 놀고 맛있는 것도
많이 먹었다고 조잘거렸던거 같아요.
부모님 미안하지 않게.
조금더 커서 초등학교 소풍날.
소풍날 도시락에 김밥을 싸갔던게 한번 있었나 싶게 기억속엔 온통
꽁자반, 김치. 조금 머리가 크니까 그게 좀 섭섭하긴 했어도 우리집 상황이
그리 좋지 못하니 어쩔 수 없지. 하면서 위안을 삼았죠.
초등학교 소풍날이 되면 김밥은 못먹어도 좋으니 비만 오지 않게 해달라고
달보고 빌고. 그땐 뭐 그리 소풍이 좋았던지요.
아... 용돈 오백원 천원이 있어서 그랬나?
평소에 용돈이라곤 만져보지 못했지만 소풍날이면 거금 천원을 쥐어볼 수 있던
날이어서 그랬을까요.
아버지는 항상 천원정도를 쥐어 주셨지요.
소풍날이니 과자라도 사먹으라고.
저는 그 천원이 아까워 안쓰고 주머니에 꼭 넣어뒀다 잃어버린 적도 있었고,
사이다 하나랑 과자 두개 사서 가방속에 빵빵히 넣고는
먹지는 않고 아껴서 고스란히 집에와서 먹었던 적도 있었고요.
그걸 사고도 몇백원 남으면 꼬옥 아껴두기도 했었고요.
어느날. 소풍가는 날 여전히 쥐어주신 천원으로 과자 중에 웨하스를 하나 샀었어요.
백원인가? 이백원 하던거. 어김없이 아껴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치아가 좋지 않던 아버지는 웨하스가 스르륵 녹는 과자다 보니 잘 드시는거에요.
물론 제가 집에서 먹으려고 아껴 가져와서 아버지 앞에서 뜯었던 거고요.
당연히 아버지께 먼저 드렸더니 맛있게 잘 드시던 아버지.
그때부터 저는 소풍날 꼭 웨하스를 사서는 먹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
아버지를 드렸어요. 아버지 드시라고요.
그리고 어찌어찌 시간은 흘렀고 그렇게 고생하시던 아버지는 조금. 조금
편해지실 무렵 뜻하지 않은 병으로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어요.
참... 세상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 분할 수가 없더라구요.
평생 고생만 하신 분을 그렇게 허망하게 데려가시니...
막내 결혼하는 것도 못보고.
명절때나 제사때 가는 거야 물론이고
가끔 시골집에 일이 있어 가게 되면 슈퍼에 들러 소주하고 웨하스를 사요.
결혼 전엔 시골갈 때면 혼자서 아버지 산소 꼭 들러서 인사 드리고 왔는데
결혼하고 나니 자주 가는 일이 뜸해지네요.
올 추석엔 일이 있어 처음으로 명절때 못갔는데
다음 달 시골 갈 일이 있네요.
햇살 좋은 날 소주랑 웨하스 들고 또 아버지 산소 들러야죠.
그냥 아버지 생각나서 글 쓰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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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설유치원 소풍날.
기억 조회수 : 350
작성일 : 2008-09-17 16:42:46
IP : 211.195.xxx.10
2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1. 곶감
'08.9.17 5:19 PM (58.140.xxx.55)아버지가 많이 그리우신가봐요...
전 곶감을 보면 할아버지가 생각나는데....
님덕분에 저두 어릴적 저의 모습도 그려보았네요...ㅎㅎ2. 마음이
'08.9.18 12:44 PM (124.0.xxx.202)울컥해지네요. 지금은 행복하시길 바랄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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